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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화제작1 <어댑테이션>[2]
최수임 2003-02-21

뛰는 뫼비우스 위에 나는 뫼비우스?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adaptation)은 ‘adaption’이라는 단어가 가진 다양한 의미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유희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수잔 올린이라는 저술가가 난 재배가 존 라로시에 대해 쓴 책 <난 도둑>을 영화로 ‘각색’하는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이야기이자, 야생에서 채취한 난을 인공의 화원에 ‘적응’시키는 것에 대한, 수잔 올린의 ‘뉴욕 스타일’의 에세이이고, 찰리 카우프만, 수잔 올린, 그리고 존 라로시가 한데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이 정신적 배경으로 등장한다(실제로 흰 수염을 단 다윈이 실험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매우 이질적인 담론과 이야기들이건만, 이 영화에서는 각 이야기의 줄기들이 아주 자연스럽고도 흥미롭게 서로 연관을 맺으며 흘러간다.

영화는 몇년 전, <존 말코비치 되기>의 촬영현장에서 시작한다. 그 유명한 ‘1/2 층’ 세트에서 스탭들이 다 제각기 바삐 일을 하고 있는 한쪽에 그만의 ‘1/2 층’에서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이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이고 있다. 카우프만은, 픽션을 주무르는 데에는 재능있는 시나리오 작가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한명의 초라한 ‘고스트’다.

‘고스트 오키드’는 <뉴요커>의 기자 수잔 올린이 존 라로시를 만나 취재하던 중 그로부터 듣게 되는 신비의 난이다. “고스트 오키드를 만나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 식물은, 영화에서 마약의 효과를 내는 녹색 난 가루의 형태로 나타난다. “야생의 난을 사람이 재배하는 환경에 적응시키는 건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사람보다는 낫겠죠. 난들은 기억이란 게 없잖아요.” 취재원 존 라로시와 이런 쓸쓸한 대화를 나누던 수잔 올린은 그 난 가루를 얻어 흡입한 뒤 환각을 즐기게 된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어댑테이션>에서 <난 도둑>이라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더 쓰리>라는 시나리오를 쓰는 그의 쌍둥이 형제 도널드 카우프만의 1인2역을 한다. 도널드는 모든 면에서 찰리의 반대되는 인물. 시나리오에 문외한이며 늘 찰리를 천재라고 부르던 그는 미국에서 어느 교수의 ‘시나리오작법 10대 원칙’ 강의를 듣고 온 뒤, <더 쓰리>라는 해체주의 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토막살인’을 해서 사람을 ‘해체’시킨다는 괴상한 스릴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시킨다. 그 반면 <존 말코비치 되기>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제작사로부터 <난 도둑>이라는 소설 한권을 건네받은 찰리는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없는 그 책을 어떻게 각색할지 몰라 슬럼프에 빠지고, 이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에 가서 수잔 올린을 만나려 한다. 이 길에는 도넝드도 동행을 해, 존 라로시의 한적한 집에서 네 인물이 한데 모인다. 이때부터 영화는 액션스릴러의 섹션으로 들어간다.

스파이크 존즈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차림으로 등장한 감독. ‘시나리오 창작’에 관한 영화 <어댑테이션>의 감독으로서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나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나리오”라고 대답했다. <어댑테이션>은 아닌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괴짜의 일기장 같은 영화이다.

니콜라스 케이지

“찰리와 도널드, 쌍둥이를 연기하면서, 나는 찰리에서 도널드로, 도널드에서 찰리로, ‘변신’해야 했어요. ‘이번에는 무슨 역이죠?’ 촬영을 할 때 스파이크 존즈에게 묻곤 했죠.”

수잔 올린이 존 라로시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무엇인가에 열정을 가지는 법”을 그에게서 배워보고자 해서였다. 그것처럼,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어댑테이션>은 “무엇인가에 열정을 가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찰리 카우프만은 시나리오를 쓰는 대상에 열정을 가져야만 하는 시나리오 작가이고, 수잔 올린은 취재원에게 열정을 가져야만 하는 저술가. 그러나 두 인물의 행로는 다르다. 수잔 올린은 취재원에게 ‘투항’해 은밀한 환각을 즐기는 한편, 찰리 카우프만은 액션극 끝에 수잔 올린과 존 라로시라는 그의 취재원에서 벗어나 그만의 이야기, 그 자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쓴다. <어댑테이션>은 바로 그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이자 그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끝없이 이어진 거울의 방 같은 영화다.

현실을 픽션의 세계에 옮겨 적응시키는 것, 혹은 현실의 인물에 관해 쓰여진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것은, <어댑테이션>에서 여러 개의 ‘층위’를 낳고 있다. “맞아, 존 라로시와 수잔 올린, 그리고 나, 모두 하나의 기원에서 뻗어져나온 가지인 거야. 그 이야기를 하는 거야.” 슬럼프에 빠져 있던 찰리 카우프만이 갑자기 영감을 얻어 녹음기에 녹음하는 아이디어처럼, 이 영화는 각색의 과정들에 들어 있는 여러 인물의 층위들, 여러 시간의 층위들, 여러 사건의 층위, 여러 관심의 층위들을 하나의 줄에 엮어 보기좋게 나부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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