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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2003,<갱스 오브 뉴욕>은 이렇게 태어났다 [1]

“오! 신이시여, 우리가 정녕 이 영화를 만드나이까”

마틴 스코시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갱스 오브 뉴욕> 13인의 가상 다중시점 제작기

<갱스 오브 뉴욕>의 제작을 놓고 마틴 스코시즈란 사람의 집념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70년에 아이디어를 내고, 77년에 광고를 게재하면서 제작에 박차를 가했던 이 ‘뉴욕창세기’는 ‘대작기피’의 80년대를 맞이하며 영원히 수면으로 가라앉는 듯보였지만 98년에 기적적으로 부활해 2003년 대한민국 땅까지 날아오게 되었다. 행여 색이 바랠까, 향기가 달아날까, 한 노인이 허리춤에 꼭꼭 밀봉해놓았던 이 세기의 프로젝트는 30년 만에 마침내 그 시절 색 그대로, 좀더 노련한 호흡으로 세상과 조우한 것이다.

평생의 숙제를 마친 감독 마틴 스코시즈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함께 이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가능으로 이끌었던 많은 스탭들, 그리고 이탈리아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보통 영화의 2배가 넘는 기간의 합숙촬영을 견뎌낸 배우들에게, <갱스 오브 뉴욕>은 쉽게 잊기 힘든 영화로 남을 것이다. 하여 이 영화의 구체적인 제작과정을, 그 지난했던 30여년간을 순서대로 집어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만들기란 작업이 어떤 집념의 산물인지, 어떻게 비로소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으리라.

글에 들어가기 앞서 이 제작기는 마틴 스코시즈와 배우, 스탭들에 의해 직접 쓰여진 것이 아니라 <갱스 오브 뉴욕>의 메이킹북을 비롯해 <가디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등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 편집자

1970년~98년 : "마티 혹시 평생 꿈꿔오던 프로젝트가 있나?"

1970년 1월 @ 친구집 서재

우연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서재에서 허버트 J. 애스버리의 <갱스 오브 뉴욕>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18세기 초부터 1927년까지의 뉴욕 거리갱들에 대한 연대기인 이 책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선 즉각적으로 애스버리의 책이 기술한 이 세계를 영화화하겠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일 거다. 나는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라면서 올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 다녔는데 교회 사람들은 종종 이 교회 앞에서 1844년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원주민간에 벌어졌던 최후의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뒤로도 오랫동안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었다. 결국 애스버리의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내가 이 야만스러웠던 시절의 뉴욕에 매혹돼 있음을 안 거다. 왜냐하면 이 시절은 미국 역사상 다시 맞기 힘든 혼란기였고 미국 민주주의의 원리가 시험에 든 가장 혹독한 시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뉴욕을 통해 미국이란 무엇인가를, 이 나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 마틴 스코시즈(감독)

Re_ 새해 벽두, 우연히 서점에서 <갱스 오브 뉴욕>이란 책을 읽었다. 내 오랜 친구이자 위대한 감독인 마티(마틴 스코지즈의 애칭)와 나는 각자 다른 곳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동시에 매료되어버린 것이다. 아! 찌찌뽕이다. - 찰떡궁합 제이

주 요 등 장 인 물

마티-마틴 스코시즈(감독), 평생 염원이었던 뉴욕의 창세기를 만들기 위해 30년을 기다려온 집념의 소유자.

제이-제이 콕스(시나리오 작가), 마티와 함께 이 길고 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든든한 조력자.

하비-하비 웨인스타인(제작자), 험한 가시밭길로 제 발로 뛰어들어와 ‘공공의 적’이 되어야 했던 사나이.

대니얼-대니얼 데이 루이스 (배우), 에미넴의 음악과 함께 칼을 휘두르며 19세기 ‘도살자 빌’이 된 남자.

레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배우), <타이타닉>의 환영을 벗고 <갱스…>와 함께 진정한 남자로 태어나다.

카메론-카메론 디아즈(배우), 30년 경력의 소매치기에게 특별 사사받은 솜씨로 모든 이의 마음을 훔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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