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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뿐인 저 목소리! 윤여정 스토리 [4]

윤여정은‥ 사람 죽이는 여자

인정옥 / <네 멋대로 해라> 작가

그 여자가 이상하다.

난 그 여자가 신들린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무릇 중견배우의 연기는 신들린이란 표현이 자주 언급되는데도 말이다.

그 여자의 목소리엔 쇳소리가 갈린다. 그런데 입엔 장미냄새를 흘린다.

그 여자의 긴 목덜미엔 히스테리가 있다. 그런데 그 목 끝 치켜든 턱 위엔 앙증맞은 귀여움이 서린다.

그 여자의 찌푸린 미간은 세상에 욕설을 퍼부어대는데, 눈동자는 한 가득 겁을 집어먹으며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 여자는 상대의 등짝에 들러붙어 징글맞게 떨어지지 않는 가늘고 억센 팔이 있다.

그런데 그 팔을 풀어젖히고 거칠게 내동댕이라도 치면, 너무나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내리는 가늘고 가녀린 어깨가 있다.

이 모습이 연기로 사람 죽이는 윤여정이다.

이 여자는 연기자가 아니다.

인간도 아니다.

윤여정은 여자다. 윤여정은 여자로 사람 죽인다.

여자 냄새가 이렇게 진한 배우를 난 본 적이 없다.

윤여정은‥ 눈빛 하나로 삶을 보듬는 사람

노희경 / <거짓말> <내가 사는 이유> 작가

“드라마 참 못 썼다, 어쩜 그리 못 썼냐!, 죽어라 못 쓰더만.” 몇년 전 내가 집필했던 모작품에 대한 윤여정, 그녀의 평가다. 죽어라 글이 안 될 때 내가 나에 대한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을 때 자타가 인정하는 독설가인 그녀는 여지없다. 대놓고 욕을 한다. 천성이 유순하지 않은 나는 그녀의 독설에 발끈하며 같이 맞장을 뜬다. “선생님은 언제나 잘하냐, 선생님도 못할 때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스무살 터울이 지는 관계에서 이 정도 감정적인 말이 오가면 당연한 수순처럼 결별을 할 테지만, 서로를 잃을 마음이 전혀 없는 그녀와 나는 지금껏 가끔은 안부를 묻고 만나기를 소원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입에 칼날을 물고 서로를 찌를 태세로. 그러나 서로가 뱉은 칼날에 누구도 다치진 않는다. 아니, 되레 칼날 물고 말하길 즐겨한다. 마치 독설의 강도가 우리의 우정을 가늠하는 척도나 되는 양 말이다. 가끔 어린 내가 그녀의 독설이 아프다고 딴죽을 걸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엄살일 뿐 진정한 속내는 아니다. 그녀의 독설에는 고단하고 심심한 세상을 무마하고 위안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을 청탁받고 참으로 간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째 목소리가 그래요? 이상하네.” 내가 정중히 안부를 물으니, 그녀가 대뜸 말한다. “남 말하네, 니 목소리가 더 이상해.” 한수도 편히 받는 법이 없다. 그런데 즐거웠다. 그녀가 여전히 그녀답게 말하는 것이, 그녀가 안녕하다는 증거 같아서.

나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을 ‘무척’ 사랑한다. 한때 나는 내 연정을 나만 알고 있기가 버거워 그녀에게 고백한 적도 있었다(그녀가 그 일을 기억 못한다고 잡아떼면 서운할 일이다). 배우 윤여정의 어디가 그리 좋으냐 물으면 할말이 없다. 너무 많다. 나는 아직도 <내가 사는 이유>에서 그녀가 손언니로 분해, 인생이 아프다고 울며 부는 주인공 애숙에게 말 한마디 없이 담배만 피우며 위로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녀가 피워내던 담배연기는 뭉게구름처럼 포근하게 애숙을 덮었었다. 게다가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가락은 또 얼마나 멋졌던가. 뿐만이 아니다. <거짓말>에서 지나간 첫사랑에게 과부임을 숨기다 들키고 휘청거리며 버스에 오르던 그녀의 뒷모습은 삶의 허망함을 숨김없이 드러내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미친년, 지랄하네, 염병, 이 자식아, 저 자식아’ 하는 막말조차도 그녀의 입을 통해 뱉어지면 정이 뚝뚝 묻어나는 아픈 위안이 되거나 쓸쓸한 인생에 대한 정의가 된다. 지문하나 없이 ‘…’만 있어도 그녀는 미치게 연기를 해낸다. 대체 그게 어떤 연기술에 의해 나오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편히 말하면, 그게 연륜이지 단순히 정의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연륜이 있는 연기자는 모두 그녀처럼 연기할 수 있을까, 막말과 쌍말을 철학처럼? 분명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분명 그녀만의 깊은 연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때 섣불리 그녀의 연기술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연기는 곧 배우의 인생이라는데, 그렇다면 그녀의 연기를 분석키 이전에 그녀의 인생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로서는 그럴 능력이 없다. 젊은 나이에 남자도 남편도 없는 혼자 몸으로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그것도 정말 훌륭하게), 정말이지 예쁘지도 않은 얼굴과 좋지도 않은 목소리로, 게다가 아첨할 줄도 모르는 성격으로 그녀가 오늘의 자리에 오기까지 그녀의 숭고한 노력과 극(그녀에게는 삶일 것)에 대한 애정을 어찌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목만 메일 뿐이다.

이즈음의 드라마는 모두 어린애들 사랑얘기 일색이다. 때문에 그녀처럼 눈빛 하나로 대사 한마디로 삶을 위안하고 농락했다가 다시 보듬는 연기를 하는 진짜 배우들의 진정한 연기를 볼 장이 없어지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발 윤여정,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더 늙기 전에 진정한 인생을 논하는 드라마 세상이 왔으면 한다. 그녀가 젊은 주인공들의 사랑이나 반대하고, 밥상이나 차리지 말고, 살아보니 제 자신이 사랑에 목매고 싶어지더라 하며 울며 부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세상말이다. 반드시 늙어가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그녀처럼 늙은 배우가 아니면 어찌 ‘반듯’이 표현해낼 수 있겠는가. 간사한 시정차여, 부디 늙은 배우를 홀대하지 말지어다. 그대들도 늙는다.

아주 오랜만에 그녀가 영화를 찍었다 한다. 이 기회에 그녀가 드라마를 등지고 영화로 가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부디 부탁하건대 영화제작자, 감독들이여, 그녀의 진가를 알지 마라. 그녀를 드라마 난장에 그대로 두어라. 이 글을 읽고 그녀가 어찌 말할지 짐작이 간다. ‘아주 사람 밥줄을 끊으려 작정을 했구만.’ 귀여운 노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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