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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무간도> [7]

죽음의 시대,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비장한 위로

<무간도>와 내 영혼의 홍콩누아르, 80년대에 바친다

----------<무간도>의 시사가 있다는 말에 극장으로 향했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아, 홍콩에서 <영웅>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정도는 있었다. 자리에 앉아 <무간도> 예고편을 먼저 보여줄 때까지 사전 지식이란 그것뿐이었다. 별다른 기대나 호기심도 없었다. 홍콩영화에 대한 설렘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왕가위, 서극, 주성치 같은 이름이 결부되지 않는 한 별 관심도 없다. 익숙한 습관처럼 홍콩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홍콩영화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씁쓸하다.

----------담담하게 <무간도>를 봤다. 경찰학교에 입학한 젊은 날의 유건명과 진영인이 등장한다. 양조위와 유덕화가 아니다. 이제 그들도, 젊은 날의 모습에 대역을 투입해야 할 나이가 된 모양이다. 그들을 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15년 가까이 흘렀다. <지하정>과 <첩혈가두>의 양조위를, <열혈남아>와 <지존무상>의 유덕화를. 10년이 흐른 뒤의 유건명과 진영인이 처음 만나는 곳은, 액션영화답지 않게 AV전문점이다. 서로의 공간이 아닌, 잠시 들른 가게에서 그들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가벼운 농담과 진지한 조언들. 그렇게 헤어지고 그들은 살벌한 현장에서 맞선다.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상대방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서.

무간 지옥에서 살아가기

----------그러니까 <무간도>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고독한 운명의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진영인은 거리에서 옛 애인을 만난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다. 그녀는 물론, 결혼도 했다. 안부를 물어보고, 진영인은 돌아선다. 혹시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그녀의 딸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그렇게 진영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범죄조직에 들어간 경찰 스파이. 신상정보는 단 한 사람 황지성 국장에게만 있고, 그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한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빌딩 옥상에서 황지성을 만나고, 이젠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기약없는 부탁을 하고는, 빌딩 숲 사이의 쇠락한 범죄소굴로 돌아간다. 유건명에게는 적어도 일상의 행복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을 앞둔 애인이 있고, 경찰 상부에서는 그를 신뢰한다. 출세가도가 쭉 뻗어 있다. 하지만 유건명이 진짜 지시를 받는 것은 조직의 보스인 한침이다. 그게 우선이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쩌면 유건명은 신기루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 역시 자신의 정체를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단 한 사람이 있다. 반대편에서, 그와 똑같이 살아가는 진영인. <무간도>는 <첩혈쌍웅>처럼, 적이지만 본능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두 남자를 그린다. 그들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프로페셔널이다. 그들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정도를 걸어가려는, 시대에서 낙오된 공룡 같은 존재다. 여전히 강력하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전혀 걸맞지 않아 도태되어야 하는 영웅들. 여느 사람들처럼 진영인은 폭력의 쾌감에 빠지지 않고, 유건명은 권력의 달콤함에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그렇다. 하지만 연인의 말처럼, 유건명이 정말 좋은 사람일까? 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속여야만 한다. 그들은 무간 지옥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영원히 고통받는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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