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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영화,세편의 에세이 - <8 마일> [4]

삶의 정글에는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힙합 카우보이가 산다

<8마일>, 어느 경계선의 이름 또는 세상의 법칙을 읊는 랩

----------어디서 어떻게 깃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미넴의 형형한 푸른 눈에는 적의가 품어져 있다. 그 눈은 그가 8마일 저쪽의 다운타운 출신이 아니라 8마일 이쪽의 슬럼가 출신임을 말해준다. 그는 결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한다. 나는 꺾이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그 눈이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을 남들로부터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의 눈이다. 그의 눈은 그가 부끄러움 없는 시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결백하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가 부끄러움 없고 떳떳한 것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두눈 똑바로 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온 것이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한다.

----------백인 힙합 스타에 대한 수많은 냉소와 소문에도 불구하고 에미넴은 틀림없이 그렇게 적의가 길러진, 8마일 저쪽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의 그의 태도는 철저하게 연기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보면 그는 백인이긴 하지만 진정한 힙합 뮤지션에 가깝다. 그말고도 힙합 스타들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LA의 악명높은 흑인 게토 ‘콤튼 스트리트’에서 바로 나온(Straight outta Compton) 듯한 이미지의 아이스 큐브는 요새는 영화배우로 더 바쁜 것 같다. 힙합 스타들이 영화 속에서도 멋지게 비치는 것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대신 그들은 영화 속에서도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개 그들에게 맡겨지는 역할 자체가 그런 식이다. 감독은 힙합스러운 느낌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역할을 힙합 스타들에게 맡기고 힙합 스타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기 거들먹거림을 영화 속에서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힙합은 음악 장르가 아니라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모든 흑인 음악이 그렇듯이 힙합의 음악적인 측면은 삶과 어우러져 있다. 힙합은 콘서트홀의 음악이 아니라 삶의 현장의 음악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능하는 음악, ‘말하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활에 녹아 있는 음악이다. 힙합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토의 생활 속에서 본능적으로 출현한 삶의 양식이다. 어떤 사람은 그게 멋있어서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다. 힙합스럽게 살기로 말이다. 남한 땅에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서울 ‘강남’에 살면서도 힙합스럽게 살기를 택한 아이들도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지만 힙합은 이런 아이러니를 가능하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역설이 가능한 것일까? 이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미넴, 할리우드 힙합 카이보이

----------‘8마일’은 영화 속의 그들이 이쪽과 저쪽을 가를 때 쓰는 경계선의 이름이다. 8마일 저쪽에는 다운타운이 있고 주류 시스템이 있다. 거기서부터 8마일을 빠져 나오면 집들이 허물어져 있고 거주용 트레일러들이 있는 황폐한 교외가 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사회를 둘로 가르는 이 경계선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영화 속의 그들은 한마디로 8마일 바깥의 거기 산다. 그곳은 미국의 번영과 발전의 그늘이라 할 수 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대개 흑인이지만 백인도 간혹 있다. 그중의 하나가 에미넴이 주연을 맡은 ‘지미 더 래빗’이다.

----------<8마일>은 한마디로 괜찮은 영화다. 삶을 어떤 ‘선의’를 품은 관점 속에서 포착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다. 에미넴? 백인이지만 진정한 힙합 스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어떤 흑인들에게는 놀림감이지만 에미넴은 적어도 놀림감은 아니다. 짜식, 꽤 하는데! 하는 정도의 평가는 받는다. 그를 픽업한 것이 하드코어 랩의 진수를 들려주던 닥터 드레라는 점도 이러한 평가를 확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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