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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4]
최수임 2003-02-28

독일영화 100편 상영, 물량공세 성공

이변과 화제3 - 독일영화의 부흥?

독일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감히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독일영화는 전체 299편 상영작 중 무려 100편이라는 엄청난 비율을 차지했다. 경쟁부문에 3편이 포함된 것을 필두로 파노라마, 포럼, 단편영화, 킨더필름 등 부문마다 대략 ‘다섯 중 하나’는 독일영화였고, 여기에 신인들의 영화를 소개하는 ‘독일영화의 전망’ 섹션, ‘저먼 시네마’ 섹션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회고전까지. 독일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부문도 3개나 됐다.

<늙은 원숭이의 불안>

<크누트가 잡혔다>

<데보트>

이들 독일영화들은 상영시간대도 비교적 좋은 시간에 배치돼 영화 상영 시간표를 보며 볼 영화를 고르고 있자면 싫어도 볼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았다(하지만 독일영화들은 빨리 매진돼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제쪽에서는 친절하게도 영화제의 모든 독일영화들을 모아 소개한, 상당한 두께의 ‘베를리날레 저먼 필름스’ 카탈로그를 메인 카탈로그와 별도로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 독일에서 만들어진 웬만한 영화는 다 모아놓은 듯한 물량공세 때문에 일각에서는 영화들의 질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영화제 날짜가 지날수록 “독일영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시간이 맞아서 몇개 봤는데 보는 것마다 다 괜찮더라”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비교적 후반부에 경쟁부문의 독일영화들이 상영되면서 그 소문은 ‘공식’ 인정을 받아 나가기에 이르렀다.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의 <불빛>(Lichter),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오스카 뢸러의 <늙은 원숭이의 불안>(Der Alte Affe Angst) 등 경쟁부문의 독일영화들은 매우 독일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들이었다. <늙은 원숭이의 불안>은 베를린에 사는 우울증과 발기부전 환자가 주인공으로 암 말기에 걸린 그의 소설가 아버지, 우발적인 자살시도에 시달리는 그의 간호사 애인, 그녀가 간호하는 소아 에이즈 환자, 핍쇼 걸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 등 도시의 그늘진 캐릭터들을 엮어낸 드라마. <불빛>은 독일과 폴란드 국경지방에 사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다중시점으로 그린 작품이었고, <굿바이, 레닌!>은 통독 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관계를 동베를린 출신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코믹하게 그려낸 흥미로운 영화였다. <불빛>은 공식 심사위원이 주는 상은 못 받았지만 국제 영화비평가 연합이 주는 FIPRESCI의 경쟁부문 최고 작품상을 받았다.

이 밖에 ‘독일영화의 전망’ 부문의 <크누트가 잡혔다>(슈테판 크로머), 포럼부문의 <사막의 고프>(하인츠 에믹홀츠), 파노라마 부문의 <기민당의 비히만> (안드레아스 드레젠), <데보트>(이고르 차리츠키), <볼프스부르크>(크리스티앙 페촐트)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크누트가 잡혔다>는 독일판 80년대 운동권 후일담을 단정한 남자와 바람기 있는 여자를 등장시킨 연애 이야기로 녹여낸 드라마. 운동권에 대한 풍자와 성개방 얘기 등이 특히 독일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막의 고프>는 감독이 두달 동안 미국을 여행하면서 건축가 브루스 고프(1904∼82)가 설계한 건축물 62개를 모두 찾아 연대기순으로 보여주는 작품. 관객이 마치 영화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영화는, 한 건축가의 전기일 뿐만 아니라 지난 20세기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독특한 다큐다. 역시 다큐멘터리인 <기민당의 비히만>은 보수적이면서 출세욕 강한 기민당 소속의 젊은 정치가 비히만에 관한 작품으로, 감독은 한달 동안 연방 총선거에서 우커마르크-바르님 지역의 기민당 후보로 출마한 후보의 유세에 동행해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독일을 생각한다>의 한편인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데보트>는 하드고어 멜로드라마. 물에 빠져 자살하려는 젊은 여자를 우연히 본 남자가 그녀에게 몸값을 물은 뒤 집으로 데리고 가며 시작해 계속해서 오해와 거짓말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볼프스부르크>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어느 슈퍼마켓 냉동식품부 점원 여자가 사고의 가해자와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 스토리만으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 가깝지만 페촐트 감독은 멜로라는 장르를 라우라가 일하는 냉동식품부 냉동고에서 막 꺼낸 듯한 느낌으로 신선하게 재단장해 선보인다. <볼프스부르크>는 FIPRESCI의 파노라마 최고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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