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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3]
최수임 2003-02-28

스파이크 리, 상복 없었다

이변과 화제2 - 최소한 감독상 예상했지만 수상 못한 <25시>

스파이크 리의 <25시>가 상영되었을 때, 이 영화가 황금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감독상은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퍼졌다. <25시>는 경쟁부문에서 가장 높은 객석 점유율(계단 점유율이 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데)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엔딩 타이틀을 올린 영화들 중 하나였고, <타게스슈피겔>의 독일 기자들이 주는 별점에서도 1위를 달리는 ‘전도 유망’한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떤 상도 받아내지 못하는 ‘이변’을 낳았다. 열렬했던 반응과 차가운 평가. 스파이크 리는 왜 베를린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봐야 했을까.

답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스파이크 리가 옥을 다 갉아먹을 만큼 치명적인 티를 범했거나, 아니면 베를린이 너무 몸을 사리고 그를 오해했거나. ‘티’ 혹은 ‘오해의 대상’이 될 <25시>의 민감한 부분은 바로 주인공의 인종차별적 독백 시퀀스이다. 소파 속에서 1kg 이상의 마약이 적발돼 내일 아침이면 감옥에 자진입소해야 하는 주인공 ‘몬티’(에드워드 노튼)로 하여금, 미국 내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들과 유색인종(흑인까지 포함하여)을 향하여 ‘퍽큐’를 내뱉게 하는 것. 랩처럼 흐르는 그 독백에서 한국인, 히스패닉, 이탈리아인, 흑인 등이 차례로 가차없는 인종차별적 언설에 직격타를 맞는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이기에 이 장면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이런 의심을 굳히게 하는 다른 요소도 있다. <25시>에서 스파이크 리는 고급 고층아파트에 사는

뉴욕 백인주류의 시선으로 상처입은 뉴욕의 잔해를 매우 감성적으로 어루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가 내다보이는 고층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몬티의 다른 한 친구는 “이사를 안 갈거냐?”고 묻는다. 그는 “옆집에 오사마 빈 라덴이 이사를 와도 나는 여기에 살 거다”라고 말한다). 스파이크 리는 그 스스로 “뉴요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기자회견 내내 강조하기도 했다.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흑인감독이자 안정된 주류 뉴요커? 이러한 양상으로 <25시>의 스파이크 리가 불안스럽게 자기분열돼 있다, 라고 결론을 내리면 이 영화가 영화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상을 받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그 장면에서 백인 남성인 주인공 몬티가 독백을 할 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채라는 점, 그리고 그 독백의 첫 시작이 “이 도시의 모든 것에 퍽큐”라는 점 등을 생각한다면, <25시>라는 영화는 상당히 ‘반어적’인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감독상을 받은 파트리스 셰로의 <그의 형제>나 알프레드 바우어 상을 받은 <영웅>이 사실상 올해 베를린의 가장 큰 이슈였던 정치성과 별 관계가 없으면서도 상을 받은데 비해 보기 나름으로는 상당히 고도의 프리즘을 통한 ‘스파이크 리’특유의 영화일 수도 있는 <25시>가 아무 상도 못 받은 것은, 어찌됐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로 스파이크 리의 칼날이 고약하게 비뚤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의 진심이 불행히도 이해받지 못한 것일까.

영화제 이모조모

1. “독일하면 맥주다”배낭여행 안내책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말은, 베를린영화제에도 들어맞았다. 밤시간 일반극장 상영관에서는 팝콘 대신(팝콘은 킨더필름 상영관에서나 볼 수 있었고,) 병맥주를 손에 들고 홀짝이며 영화를 즐기는 독일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조금 클래식한 취향의 사람들은 맥주 대신 와인을 글라스까지 챙겨와 따라 마시기도. 외지인들은 그 극장 안 음주 문화에 영 어색함을 느끼고는 했다. 베를린영화제 기간에 베를린에 가는 이들은 앞으로 필히 영화표와 함께 맥주도 마련하시길.

2. “우리 도시에 스타들이 왔다”촌스럽기 그지없는 이 문구는 베를린영화제가 시작할 즈음 다름 아닌 주요 베를린 일간지들 문화면의 헤드카피였다. 음악, 건축, 미술, 무용 등 다른 문화장르에서는 가장 세련된 앞줄을 걷는 독일이지만 엔터테인먼트 분야 스타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듯. 밤마다 열린 경쟁작 레드카펫 쇼에서는 극장 정문뿐만 아니라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건물 뒷문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신문에는 친절히도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약도 위의 붉은 점으로 안내돼 있기도 했다.

3. 한·중·일 3국의 취재스타일 한국은 영화 작품과 감독 기자회견에 집중하는 ‘학구파’라면, 중국은 영화제 기자회견뿐만 아니라 프레스센터 자원봉사자, 매표소 직원까지 일일이 인터뷰하는 ‘열혈파’였고, 일본은 야마다 요지 등 자국 감독 영화 기자회견장에는 여러 명이 몰리지만 그 밖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얌체파’였다. 한국에서는 <씨네21>을 포함 6명의 기자가 영화제 취재차 베를린에 머물었는데, 처음에는 한글이 설치되어 있지 않던 프레스센터 컴퓨터 40여대에 이틀도 못 되어 거의 전체에 한글입력 시스템이 깔리는 이변 아닌 이변을 낳기도 했다. 한국 기자들이 컴퓨터에 강했다면, 중국은 CCTV의 무비채널 취재진들이 서양인에 비해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기자회견 의자 위에까지 올라가 두팔을 높이 치켜들고 동영상을 찍는 등 당당한 행동으로 눈길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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