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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
최수임 2003-02-28

반미 영웅 올리버 스톤를 환대하라

이변과 화제1 - 카스트로 다룬 스톤의 다큐 <코만단테>에 열광

올리버 스톤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그러나 가장 뜨겁게 추앙된 영화제 최고의 스타 감독이었다. 이제까지의 카스트로를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까발리는 영화 <코만단테>를 후광처럼 등에 업은 그의 카리스마는 반미 분위기가 뜨거운 베를린에서 아주 순수하고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만단테>는 폐막을 하루 앞둔 2월14일, 일정에도 없던 특별 기자시사에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는데, 그러자마자 기자들은 걸출한 이 반미 미국 작가의 다큐 ‘에지테이션’에 흥분하고 말았다. 꽤 많은 외신기자들이 귀국한 뒤 썰렁해졌던 기자회견장은 일거에 다시 많은 카메라로 붐벼 스톤 감독에게 니콜 키드먼 못지않은 플래시 세례를 선사했고, “카스트로를 동정적으로 다루었는데 후세인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어느 미국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그가 “사담 후세인? 그가 누군지 정말로 누가 아는가?”라고 답했을 때, 기자회견장은 숙연해지고 말았다.

<코만단테>(Comandante)는 올리버 스톤이 “피델 카스트로? 그는 누구인가?” 이 물음 하나로 만든 장편다큐멘터리영화다. “2002년 2월 우리는 쿠바 아바나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사흘간 인터뷰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30시간의 인터뷰라는 기본재료만으로 만들어진 99분짜리 영화이지만 격렬한 리듬의 편집과 불꽃 튀는 대화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하기는커녕 숨돌릴 새가 거의 없다. 영화는 마치 MTV 영상처럼 스타일리시하게 촬영된 인터뷰 화면과 내용에서 ‘자유연상’될 만한 참고자료 기록화면들의 기가 막힌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만단테>

<코만단테>

예를 들면 만보계를 차고 집무실을 걸어다니는 카스트로의 발을 찍은 화면과 농촌 순방길에 올랐던 젊은 시절 카스트로의 발을 찍은 옛 뉴스화면이 연이어 보여진다거나, 게바라의 죽음을 돌이키는 카스트로의 눈매를 비춘 화면을 혁명 당시의 게바라 ‘동영상(!)’으로 연결시킨다거나 하는 식.

<JFK> 영화 얘기를 하며 카스트로가 ‘왜 움직이는 차를 대상으로 한 단발 암살이 불가능한가’를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케네디 암살 기록화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체 게바라에서 에바 페론, J. F. 케네디까지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자료화면들이 “사람도 거북이처럼 200년을 살면 좋겠다”며 웃는 건장한 노부 카스트로의 현재 화면과 춤추듯 교대하며 등장하는 동안, 영화는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노래와 아프로 큐반 재즈 음악을 곁들이며 보는 이를 올리버 스톤 특유의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몽롱히 빠져들게 만든다.

카스트로에 대한 영화이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카스트로의 이미지를 부정하는 영화이지만, <코만단테>는 그 이상이다. ‘카스트로가 진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스톤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그렇다. 내가 독재자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독재자라는 게 무엇이냐?”라고 자문하는 카스트로와 그가 전하는 야사들, 아버지이자 할아버지로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로서의 그의 면모, 아직도 무한한 환호를 보내는 쿠바 시민들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스톤은 ‘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가 반드시 진실일까?’라는 물음을 던질 뿐이다. 어떤 평가도 판단도 자제한 채, 단지 접근이 금기시돼 있던 어떤 정치적 인물의 방에 들어가 그곳을 구경시켜줄 뿐인 이 영화는, 그 질문 하나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온라인 사이트는 영화 상영에 하루 앞서 조금 이색적인 뉴스를 내보냈다. 영화 소개가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가 ‘세계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베를린영화제 방문을 거절했다”는 소식에 초점을 두어 보도를 한 것이다. 영화에서 카스트로는 부시의 정책에 대해 “미국인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카스트로가 영화제에 게스트로 왔다면 아마도 올리버 스톤을 제치고 베를린 최고의 카리스마에 등극하지 않았을까. 올리버 스톤만으로도 베를린은 충분히 뜨거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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