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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홍상수 편애 이유 [2]

불가해한 인간본성을 관찰하다

프랑스 평단이 홍상수 감독을 발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샤를 테송을 통해 왜 프랑스 평단의 지지가 홍상수 감독으로 집중되는지에 대한 좀더 미학적인 답을 구할 수 있다. 테송은 서슴없이 홍상수 감독을 최근 등장한 감독 중 가장 중요한 감독의 하나로 꼽는다. 왜일까? 테송은 그 이유로 “홍상수는 유니크하다”고 말한다. 한국영화에서도, 아시아의 거장감독의 영화들과 비교해도 나아가 전세계의 다른 주요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해도 홍상수의 영화는 유니크하다는 것이다. 테송은 99년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돼지…>에 대한 평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주목을 끄는 것은 점차 이미지와 스타일을 믿는(즉 기타노 다케시나 왕가위 하면 바로 그들만의 스타일이 떠올려지는 것과 같은) 아시아영화들의 경향에 정반대되게 거의 곤충학자에 가까운 태도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해 인간 본성의 모호함과 불투명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간 본성의 탐구는 사실 홍상수 감독만의 것이 아니다. 어떤 영화가 인간을 얘기하지 않겠는가? 테송은 불어 표현으로 ‘jusqu’al’os’ 즉 뼈속까지 파헤치는 이라는 표현을 빌려 홍상수 감독의 인간탐구를 다른 영화와 구별짓는다. 테송은 홍상수 감독을 유니크하게 만드는 것, 특히 최근의 아시아영화들에서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은 이중구조나 원형구조, 시간의 교차 등 정교한 형식적인 실험 등이 모두 등장인물들의 탐구에 복무하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형식적인 장치들을 감독이 꿰뚫고 있음에도 홍상수 감독이 형식주의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집요한 인간 본성에 대한 궁금함이라는 점이다. 이번 세 작품의 동시개봉을 통해 주요 언론에 발표된 영화평들도 이러한 테송의 지적에 맞닿아 있다.

‘실험적인 이야기 구축’, ‘인간 본성의 불투명함’이란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홍상수 감독을 구별짓는 또 다른 예로 테송은 흔히 작가영화의 구성요소로 여겨지는 ‘죽은 시간’들로 불리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장면들이 홍상수 영화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아장커의 <소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테송은,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점점 일관되게 나타나는 죽은 시간들, 즉 인물들이 길을 걷는 것을 카메라가 멀찍이 잡은 것과 같은 장면들이 불편하다.(문장확인???) 이런 죽은 시간의 나열이 인물성격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보다 감독이 이런 종류의 이미지를 그저 좋아하나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의미없어 보이는 디테일들과 죽은 시간들은 그것이 겹쳐지면서 인물의 설명할 수 없는 본성을 불쑥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테송은 홍상수 감독의 유니크함을 들어 그 영화에서 시네필적인 계보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굳이 찾자면 영화매체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성찰하면서 동시에 사랑 이야기 속에서 감정적인 진정성을 고심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감독 장 외슈타슈를 유일하게 홍상수 감독과 비교할 수 있는 감독으로 꼽는다. 또 인간 본성을 곤충학자의 집요함으로 관찰한다는 점에서는 브뉘엘과의 비교도 가능하리라 본다.

관객과의 대화는 이제 시작이다

다른 한국감독들에 비해 홍상수 감독이 프랑스 평론가나 시네필들에게 좀더 가깝게 느껴지는 점으로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는 태도를 지적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 출신들이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희귀한 예를 남긴 누벨바그 이후 프랑스 감독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설명하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자신의 영화건 남의 영화건 영화 얘기를 하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으로 여겼던 누벨바그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상수 감독의 프랑스 관객과의 대화시간에는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지고 예정된 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지만 진정한 관객과의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제까지 소규모의 영화제를 찾아온 프랑스 관객이 열성적인 시네필들이었다면 일반 관객과의 만남은 이번 개봉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개봉 첫주 동안 파리에서 6천명의 관객을 모은 것에 만족감을 보이면서도 프랑스 배급자는 일반 관객에게 홍상수 영화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비평가들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일들이 비단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홍상수 영화의 ‘보편성’을 강조했는데 일반 관객들이 이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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