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섹스 & 시티>, 세계 여성을 사로잡은 초특급 ‘음담패설’의 비밀
김현정 2003-03-14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입고 밤거리 사냥에 나서는 네 여자 이야기, <섹스 & 시티> 다섯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됐다. 케이블 채널 캐치온에서 금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섹스 & 시티>는 원하는 건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는 뉴욕에서의 삶을 향한 동경과 함께 여자도 섹스와 담배와 술을 좋아할 수 있다는 마음의 위안을 몰고 전세계 여성을 강타했다. 정면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정면으로 욕망을 과시하는 여자들, 무리수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섹스 행각을 질리지도 않는 수다로 들려주는 이 여자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서봤다. - 편집자

400달러짜리 하이힐을 신는다 해도 흐르는 시간을 밟아 뭉갤 수는 없다. 이십대를 불안하고 나약한 시절이라 비웃었던 삼십대의 독신여성들, <섹스 & 시티>의 캐리와 미란다, 사만다, 샬롯도 “뉴욕에서 결코 결혼할 수 없는 나이”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3월7일부터 케이블 채널 캐치온에서 방영을 시작한 <섹스 & 시티> 다섯 번째 시즌은 샬롯을 마지막으로 모두 서른여섯을 넘긴 우울한 싱글들의 방황과 넋두리에 골몰하고 있다.

1998년 방영을 시작해 수많은 남성 저널리스트들이 “과연 여자들의 대화란 이런 것이었나”라는 의문을 갖게 한 <섹스 & 시티>. 이 시리즈는 첫 번째 시즌의 에너지를 끝까지 유지하기 힘든 TV시리즈의 약점을 극복하고 “캐릭터들과 함께 진정한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고, “원작보다 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풍성하고 깊이있다”는 칭송을 얻어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 시리즈를 보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섹스 & 시티>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정확하게 그리기 때문”이라는 현실성까지 달성했다. 2002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부문 감독상 트로피 외에도 이 시리즈가 얻어낸 것은 <섹스 & 시티>를 모방하는 수많은 여성들이다. 한밤의 뉴욕 웨스트 첼시 지역을 찾은 <뉴욕타임스>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독신여성들이 너도나도 마티니와 코스모폴리탄을 주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이 만난 28살의 패션 홍보담당자는 “뉴욕의 패션은 언제나 재미있고 종잡을 수 없고 펑키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섹스 & 시티> 스타일만 따라한다”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현실과 드라마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된 것이다.

<섹스 & 시티>는 캔디스 부시넬의 노골적인 칼럼 모음 <섹스 & 시티>를 각색한 시리즈. 이 드라마는 제각기 아파트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커리어우먼들이 섹스와 진정한 관계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스스로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경쾌한 리듬의 변주곡이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변함없는 오프닝 화면에서 세계무역센터를 지워버렸듯, 어쩔 수 없는 세월은 이들로부터 한밤중 뉴욕의 불빛처럼 반짝이던 전성기를 빼앗아갔다. <섹스 & 시티> 시즌5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마음의 짐과 이별과 아기가 우리 것이기 이전의 날들은 사라져버린 걸까? 우리 안엔 아직도 모험심이 존재하는 걸까?”

뉴욕의 길거리에서 태어나다

<섹스 & 시티> 첫 번째 시즌에는 성공한 칼럼니스트 캐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십대 추종자가 등장한다. 풋내기 작가지망생인 그녀는 캐리처럼 유명해질 수 있을까, 캐리처럼 파티에서 몇 마디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돈많고 잘생긴 의사를 낚을 수 있을까,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무작정 캐리를 닮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것은 <섹스 & 시티>에 중독된 많은 여성들이 공유하는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캐리는 명품 중에 명품이 틀림없는 남자를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걸려 있으니까 일단 한번 입어보는 DKNY 드레스처럼” 무심하게 만날 수 있는, 경제력과 명성, 괜찮은 외모를 모두 가진 여자다. 캐리와 비슷하게 훌륭한 세 친구들이 내뱉는 쿨한 대사, 그들을 휘감은 디자이너 의상과 100만명의 매력적인 뉴욕 독신남성들, 그들이 즐기는 새벽 무렵의 나이트클럽과 칵테일 코스모폴리탄. <섹스 & 시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으나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을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면서 시청자들을 매혹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채울 수 없는 갈망에 약오른 여성이라 하더라도 친한 친구들과 밥상 앞에 모여앉아 털어놓는 지난밤 이야기에는 동참할 수 있다. 누구라도 팔(arm)이 큰 남자는 무기(arm)도 크다더라는 속설에 고개를 끄덕이고, 키스 못하는 남자는 상종할 종자가 못된다는 험담에 거리낌없는 동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섹스 & 시티>는 대단히 화려한 TV시리즈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전략은 <프렌즈> <윌 & 그레이스>처럼 성공한 90년대 시트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저건 바로 내 이야기야, 저건 바로 나를 비참하게 만든 그 자식 이야기야!”라고 외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대의 첨단을 걷던 클럽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감각을 갈고 닦은 원작자 캔디스 부시넬은 “나는 처음부터 같은 작업을 해왔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 이 거대한 도시에 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잔을 찾아서>의 감독 수잔 세이들먼도 참여한 <섹스 & 시티> 첫 번째 시즌은 이 시리즈가 생생한 뉴욕 길거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듯 인터뷰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섹스 & 시티>를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는 칼럼 소재를 찾고 리서치를 하기 위해 잘 나가는 뉴욕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 사이사이 시리즈의 중요한 캐릭터들도 모습을 보인다. 점심을 먹으면서 미성년자 접근불가의 대화를 나누는 <섹스 & 시티>의 네 주인공은 모두 삼십대 초반의 성공한 여성들. 캐리는 지미 츄와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위해서라면 몇번이라도 카드 한도액에 도전할 수 있는 칼럼니스트다. 그녀는 지적이고 유머감각이 넘치지만, 가난했던 시절 가벼운 지갑으로 양식 대신 <보그>를 살 만큼 패션을 신봉한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기로는 캐리와 맞먹을 친구는 변호사인 미란다 홉스다. 십대 때부터 이미 냉소에선 일가를 이뤘던 미란다는 결혼도 동거도 원하지 않으면서, “이 많은 남자와 놀아나고서 어떻게 내가 변호사가 됐는가” 자문할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진다. 미란다가 귀여운 바텐더와 일만 아는 변호사, 로맨스를 꿈꾸는 디자이너 등등을 피렌체 복숭아빛 침실로 끌어들였다고는 해도,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파트너가 바뀌는 사만다 존스에게는 필적할 수 없다. 홍보회사를 운영하는 사만다는 다소 감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거의 완벽한 남성형으로 진화한, 뉴욕 여성의 자랑거리다. 그리고 홀로 샬롯이 있다. 큐레이터 샬롯 요크는 긴 갈색의 생머리가 정리해주는 것처럼 “단 한번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이혼한 뒤에는 “인생엔 딱 두번의 위대한 사랑이 찾아온다”고 믿는 로맨티스트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