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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3인방이 온다 [1]
문석 2003-03-1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슈퍼히어로 <데어데블> <헐크> <엑스맨> 그들은 왜 우리를 흥분시킬까

“환상적이다. 이 이상 크게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 앨런 립슨의 이야기는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리라. 2000년 <엑스맨>과 지난해 <스파이더 맨>에 이어 최근 자사 캐릭터인 <데어데블>이 엄청난 관객몰이에 성공했지만, 마블엔 앞으로도 더 ‘좋아질’ 일이 많다. <엑스맨2>와 <헐크>가 올 초여름 시즌 출정을 위해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올해 <맨-씽>, 2004년 <판타스틱 포> <고스트 라이더> 등 마블의 또 다른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스크린 위로 차례로 올라갈 예정이며, 앞으로도 많은 마블의 영웅들이 만화책의 사각틀을 벗어나 영사기의 빛 속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마블이 보유하고 있는 4700개의 캐릭터 중 새로 영화계 ‘데뷔’를 모색 중인 슈퍼히어로는 1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주인공은 장기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시리즈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때때로 하위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 새로운 프랜차이즈(<미이라>에서 <스콜피온 킹>이 탄생했듯)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이중성에 끌리는 이유

이처럼 할리우드에서 마블의 지위가 급상승한 것은 1939년 창립 이후 끊임없이 캐릭터와 이야기를 개발한 덕이기도 하지만 분명 이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마블의 만화책에서 묘사된 영웅들은 기존 만화와 영화 속 영웅과 달리, 선과 악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 서 있고 인간적인 결함 또한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진짜 해답은 할리우드가, 관객이 원하는 영웅상이 변화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41년 만화를 원작 삼은 최초의 실사영화 <캡틴 마블의 모험> 이후 할리우드는 꾸준히 만화 속 슈퍼히어로를 스크린 위에 투사해왔다. 하늘을 날고 물을 가르며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만화 속 영웅이야말로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었다. 관객은 만화 속 상황과 이야기가 배우의 몸을 빌려 ‘육화’되는 것을 보기 원했고, 이중 상당수는 성공을 거뒀다. 1978년 1억달러 넘는 수익을 올린 <슈퍼맨>이 대표적인 경우다. <슈퍼맨> <헐크> <원더우먼> 또한 TV브라운관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관객은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한 캐릭터를 보는 데 짜증을 냈고, 레이건의 유산 또한 바닥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들 영웅은 너무 ‘영웅적’이었다.

비록 DC코믹스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은 이런 갑갑함을 뚫어준 영화였다. 슈퍼히어로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어두운 구석이 많았던 배트맨은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존재였으며, 대중은 그의 이중적인 측면에 몸과 마음을 맡기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 만화 속 영웅은 성인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유치하지 않았으며, 현실의 비루함과 화려한 영웅의 면모 사이에서 자신을 위치짓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 닮았다

이같은 흐름은 98년 <블레이드>의 슬리퍼 히트로 이어졌고, <엑스맨>과 <스파이더 맨>은 마블의 자식들이 할리우드 차세대 영웅의 계보를 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마블의 기업소개서는 자신의 캐릭터가 영화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이미 박스오피스에서 증명됐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시리즈물을 필요로 한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는 DVD화하기 좋다. 많은 재능들이 마블과 함께 작업하기 원한다. 컴퓨터그래픽 덕분에 영화와 TV 등에서 이들을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마블의 자신감처럼 <데어데블>은 2주 연속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곧 모습을 드러낼 <엑스맨2>와 <헐크> 또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어쩌면 마블의 영웅들이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결함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관객이 이들 슈퍼영웅들을 반기는 이유가 <언브레이커블>의 새뮤얼 L. 잭슨이 그랬듯, 스스로의 지독한 ‘불구성’에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거대하고 꽉 짜여진 조직사회와 대안 이데올로기의 부재 속에서 누군가 치켜든 커다란 깃발을 보고 싶다는 욕구의 표출은 아닐까. 마블의 너무도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를 맞는 우리의 감정이 즐거움과 쓸쓸함 사이를 오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글 문석 ssoony@hani.co.kr / 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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