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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실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다 [2]
이다혜 2003-03-28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했나.

→ 실은 고민 끝에 박광수 감독한테 전화를 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박 감독이 그러더라. “두려워해도 소용없다. 사람은 어차피 변한다. 변한다면 변한 지점에서 출발하면 된다.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와 정치가는 다르다. 예술가는 타협하는 순간에도 타협을 자책하며 결국 그걸 숨기지 못한다. 정치인은 그가 혁명가가 아니라면 타협이 본업이다. 장관이 정치인은 아니라 해도, 정부의 정치적 선택에 공동책임을 져야 하며 정부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한다. 정부의 어떤 정치적 선택을 내면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 이 정부가 내가 내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했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 않았을 거다. 만에 하나, 그런 선택을 하려 한다면 그걸 저지하는 것도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드는 게 좋겠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대이라크전 지지발언을 했다. 부시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했다. 이건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민의 여론을 부인하는 거래다. 이 거래를 받아들이는 게 가능한가.

→ 여기서 길게 말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거래를 결국 받아들이는 쪽이다. 그건 정치적 훼절이 결코 아니다. 그걸 부당하다고 판단할 때 근거가 되는 가치보다 더 큰 가치와 현실적인 위기가 있다.

노사모 회원들 중에서도 그걸 부도덕한 거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어려운 문제다. 정보의 양과 질의 차이도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떤 결정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특정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정부가 이 나라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길이라는 점이다.

(이 문제를 더 이야기하다보면 그와 논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도 없고 자리도 적절하지 않다. 이쯤에서 넘어갈 도리밖에 없다.)

영화적 상상력은 항상 현실 뛰어넘는다

------이창동 감독이 장관이 된 걸 두고, 문화예술계의 권력 진입 혹은 확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많았다. 그런데 다른 반응도 있다. 사람을 뺏겼다고 보고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 시각의 바탕엔 이런 게 있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 르네상스엔 정치혐오증과 현실도피주의가 한몫했다. 현실에 피로를 느끼거나 실망한 사람들이 영화인으로 혹은 영화관객으로 진입해온 것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지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루한 현실이 주지 못하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장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역동적일 수 있다는 걸 2002년을 거치며 실감한 것이다. 때맞춰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으로 동요하고 있다. 이제 현실을 말하고 현실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가 청년문화의 화두로 재등장할 만한 때다. 이창동 감독의 장관 취임은 그런 점에서 이제 관심이 영화에서 현실로 역이동하는 데 동반되는 인력의 역이동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문엔 충무로의 단기적인 투자 위축도 가담하고 있지만, 그보다 대중적 관심이 영화에서 현실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감독 한 사람도 정치에 뺏겼고….

→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관심이 이동한 게 아니라 확장했다고 보는 편이다. 나는 현실이 아무리 누추해도 결국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믿음은 보통 배반당하게 마련인데, 그게 실현되는 감격을 겪었다. 그 감격을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실존적 순간이 내게 있었다.

(아마 이 대답이 그가 결국 장관직을 수락한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의 진담은 종종 한 호흡 뒤에 나온다.)

현실이 감격적이라면 영화는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 정치혐오증과 현실도피주의가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운 면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예측가능해지고 있고,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이 정부가, 내가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늘 현실을 뛰어넘는다. 영화세상은 점점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상력에서나 현실을 다루는 능력에서나 한국영화가 발전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그렇다. 나는 한국영화가 현실을 잘 다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력은 더 빠르게 풍부해져왔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조폭코미디 몇편이 흥행에 성공했고, 충무로의 제작열기가 다소 주춤해졌다고 하더라도,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아직 세부적인 영화정책은 물어볼 때는 아니지만, 기본방향은 잡았을 것 같다.

→ 첫 인사말에 밝혀두었다. 문화관광부 사이트에 들어와 누구나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민간 자율로 간다는 것이다. 권한과 책임을 모두 이양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릴 거고, 비용도 들 거고 곡절도 많겠지만, 그 방향으로 간다는 건 변함없다. 나는 문화는 성과가 아니라 과정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 예컨대 해외에서 큰 상을 몇 작품 받았는가, 혹은 얼마를 벌어들였느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과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과정의 자율성, 창의성에 문화적 가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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