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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실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나다 [1]
이다혜 2003-03-28

현실의 감격을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여기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막식에 참석하는 게스트들에게 정장 차림을 요청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 요청을 무시했는데, 이창동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개막일 밤 남포동 포장마차에서 이창동 감독은 이렇게 불평했다. “영화 하는 사람들한테 정장 입으라는 건 무리다. 자유롭고 싶어서 영화를 택한 사람들인데, 그런 격식이 맞겠나.”

감독에서 장관으로 직책이 중대하게 바뀐 뒤에도 그는 격식을 무시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자기 차를 직접 운전했으며, 장관에게 90도 각도로 절하는 관료 문화를 ‘조폭문화’와 유사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그의 행동거지는 뉴스거리가 됐다. 화제만 제공한 건 물론 아니다. 기자실 폐쇄 등의 조치는 언론으로부터 공격받았고, 특히 <조선일보>는 문성근, 명계남씨와 그를 묶어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 시절의 자유를 누리진 못하겠지만, 그는 어쨌든 자신의 방식대로 장관 노릇 3주를 보냈다.

이창동 장관에게 아직 세부적인 영화정책을 물어볼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장관실 속의 이창동이 궁금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인사동에서 술 마시다보면 마주치는 사람이었고, 새벽까지 느리지만 집요하게 영화와 세상을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촬영현장에서 구긴 얼굴로 그리고 피로에 지친 말투로 “경구야, 이거 다시 찍어야겠다”고 중얼거리던 ‘영화쟁이’였다. 혹시 그는 엄숙한 장관실 안에서 격식과의 싸움에 벌써부터 피로를 느끼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감독 때와는 다르게 전투적이고 씩씩한 표정으로 개혁의지를 불태우고 있을까. 아니면 영화 만들 때처럼 느리고 의뭉스럽게 한 발자국씩 전진하고 있을까.

“ 변질될까봐 두려웠다 ”

------지난 3월17일 오후에 문화관광부 장관실을 찾았다. 책상 위에 있는 몇 가지 서류의 제목이 얼핏 눈에 띠었는데, 그중 하나는 ‘관광업소에서 공연하는 외국여성’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맞다.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이며, 스포츠까지 관장하는 사람이다. 이 막중하고도 번잡한 변화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그러고보니 책상 한편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싸인 재떨이가 놓여 있다.

여기 금연 아닌가.

→ 정부청사에선 금연이다. 그런데, 나는 담배 피우지 않고는 일을 도저히 못하겠더라. 이것만은 양해해달라고 직원들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나중에 확인해보니, 노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회의할 때 비서관들과 맞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금연건물로 지정된 정부청사 여기저기서 대통령과 장관이 눈치봐가며 담배 피우는 모습은, 아름답진 않지만 재미있는 얼룩이다.)

취임 초기인데 벌써 언론의 비난을 많이 들은 편이다. 불편하지 않은가. 아님 재미있나.

→ 우리야 영화할 때부터 욕먹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욕먹는 일이 재미야 있겠냐마는, 그게 아주 고통스럽지는 않다. 욕먹으면 혹시 내가 허위의식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이 일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니까, 나쁘게만 작용하진 않는다. 아, 그리고, 약간의 고통을 느껴야 편해지는 체질 탓도 있다. (웃음) 아, 이건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비난받기를 의도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만, 각오는 늘 하고 있다.

지금까진 일부 신문으로부터의 공격이었지만, 자신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하는 쪽으로부터의 비난이 올 수도 있다.

→ 글쎄, 나를 이해하는 쪽과 이해하지 않는 쪽이 그렇게 명료하게 갈리진 않을 거다. 어느쪽이든 충분히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처음에 장관직을 완강하게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그는 장관보다 감독 노릇을 휠씬 더 재미었어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다. 장관 취임 직전에 가진 짧은 전화 통화에서 그는 그 수락의 이유에 대해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고 둘러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하지만 아마 물어도 그는 곧바로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장관직을 수락할 리 없다”고 어떤 영화인이 말했다는데.

→ 내가 바보인 거지. (웃음) 굳이 말하자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 있었다면 해야 될 이유가 101가지 있었다는 정도다.

(역시 돌려 말한다. 그래도 좀더 물어본다. 언젠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지만, 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너무 커서 결심한 것으로 짐작했다.

→ 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순간에 이건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 그게 답이 아니지만, 그걸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인생에는 있다. 그런 순간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았는가.

(힘들다) 음, 그건 모르겠다. 분위기가 홍콩누아르 같다.

→ 아, 그건 아니다. 난 습관적으로 본능에 몸을 맡기는 편은 아니니까. 결국 내가 판단한 거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이다. 한 가지만 부탁하자. 내가 일단 장관직을 맡은 이상 고사를 했던 사실에 대해서 길게 얘기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딱 한 가지만은 묻고 싶다. 고사했던 건 뭐가 제일 두려워서였나.

→ 내가 변할까봐, 변질될까봐 두려웠다.

50년을 살아도 그런 두려움이 생기는가.

→ 물론이다. 죽기 전까진 계속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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