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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6]
박은영 2003-04-04

내 인생의 영화를 찾아서매진예감! 서울여성영화제 화제작 9편

영화제는 관객의 잔치다. 이 영화제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해마다 90%가 넘는 좌석점유율을 자랑한다. 의미도 좋지만, 재미난 작품을, 안전한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이여! 그대들을 위한 일급 정보가 있다. 조기 매진이 예상되는, 그래서 예매를 서둘러야 할 작품들을, 여기 은밀히 소개한다. 소문내지 말 것!

개막작 <미소>는 시력을 잃어가는 여류 사진작가가 극단적인 불안과 고통에 직면해, 초월과 비상을 꿈꾸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에서 착안했다는, 그 영화 <미소>를 수식하는 말은 참 많다. 박경희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자, 임순례 감독의 프로듀서 데뷔작이자, 송일곤 감독의 배우 데뷔작. 이번 여성영화제 개막 상영이 ’월드 프리미어’라는 점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소>의 제작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도 주목하자. 그들은 <미소>가 제작 공정의 일선에 선 한국 여성 영화인들의 성가이자, 자본과 시스템의 한계를 넘은 대안적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시사회조차 열리지 않은 <미소>의 면면이 그 모든 기대에 화답할지는, 영화제 첫날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소>

<벌거숭이 게임>

이 밖에 ’해외 스타’ 감독들의 신작도 눈길을 모은다. 지난 3회 여성영화제에서 사색적인 다큐멘터리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선보였던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는 그 작품의 후기격인 <2년 후>를 들고 돌아왔다. 소비사회의 상징물인 쓰레기 속에서 숨겨진 가치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다양한 수집 편력을 선보였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에 이어, 는 ‘그때 그 사람들’의 변하거나 또는 변하지 않은 오늘을 따라잡는다. 2년 전 불합격 판정을 받은 감자더미에서 찾아낸 하트 모양의 감자는 마르고 썩었지만 푸르스름한 싹이 돋아 땅에 뿌려지려 한다. 버려지고 죽은 것들이 그렇게 되살아 땅으로 돌아간다. 생에 대한 아녜스 바르다의 찬미는 그렇게 쭈욱 이어져오고 있다.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여성공동체의 이상향을 선보였던 마린 고리스 감독은 로맨틱코미디 <캐롤라이나>를 만들었다. 배신? 변절? 천만에다. 남인영 프로그래머의 말마따나 마린 고리스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를 만들어도 여성 파워를 담아” 낸다. 유랑 노동자인 아버지가 배가 다른 세딸만을 떨구고 사라지면, 이들 세 자매를 거두는 건 남부 여걸인 할머니의 몫. 장녀인 캐롤라이나는 간섭이 심한 할머니에게서 벗어나 TV 짝찟기 프로그램의 스탭으로 독립하고, 이상적인 남자 출연자와 오랜 친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셜리 매클레인이 괴짜 할머니로, 신성 줄리아 스타일스가 주인공으로 출연, 앙상블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적잖은 여성들이 ‘내 인생의 영화’로 간직하고 있는 <파니 핑크>의 도리스 되리 감독은, <벌거숭이 게임>에서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한 ‘파니 핑크(들)’의 딜레마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막이 올라 행복한 연인들의 모습이 CF의 한 장면처럼 흘러지나가지만, 그건 그저 ‘한때’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거 중인 커플, 결혼을 망설이는 커플, 애정 결핍으로 곪아가는 부부는 “위대한 러브 스토리는 모두 짧다”는 진리를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벌거벗고 눈을 가린 채 파트너를 찾는 게임을 벌인 뒤로, 이들의 애정사는 크게 달라진다. 사람과 사랑, 세상에 대한 따뜻한 희망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

<캐롤라이나>

<개>

이 밖에 개봉관에서 만나기 힘든 ‘미지의’ 또는 ‘변방의’ 영화들과 조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영화제를 찾는 기쁨 중 하나다. 올 아시아 특별전이 주목하는 필리핀의 여성영화들이 그런 작품들. 이 부문 상영작 중 가장 최근작인 <미국식 아도보>는 필리핀영화 고유의 개성과 에너지는 덜한 대신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한 작품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미국식 아도보>는 이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전통 음식인 아도보를 먹으며 달래는 필리핀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다. 뉴욕에 정착한 5명의 필리핀 동창생들이 전통적 가치관과 미국적 가치관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어른들의 성장영화.

각종 영화제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여성 영화인들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는 것과 시기가 맞아, 여성영화제도 ’애니메이션 모음’ 상영을 기획했다. 탈옥 이후 40년째 실종인 여성 범법자의 전설을 인터뷰 형식으로 코믹하게 소개한 클레이메이션 <전설의 여성 무법자>, 어머니의 의문사를 두고 부자간에 형성된 불안과 공포의 공기를 포착한 퍼핏애니메이션 <개>, 재봉사의 평온하던 일상에 인어가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몽환적으로 그린 클래이메이션 <씽 씽 씽>,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오려서 만든 드로잉애니메이션 <제이크와 놀다>를 비롯, 소재와 장르, 형식이 다양한 단편 애니 19편과 만날 수 있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아시아 단편경선 작품들그녀들의 노래를 들었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고추 말리기>의 장희선 감독,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이 거쳐간 아시아 단편경선 부문은 여성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이자, ’미래의 영화’ ’미래의 여성작가’들과 만날 수 있는 진귀한 자리다. 해마다 응모 편수가 크게 늘고 있는 이 부문엔 올해 157편의 아시아 여성단편이 몰려 들었고, 그중 국내외 작품 18편이 “여성주의적 시각, 단편영화가 갖는 참신성과 독창성, 영화의 완성도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선발돼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소재의 다양함과 형식의 신선함이 배가돼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더했다”는 것이 올 응모작 전반에 대한 예심 위원들의 중평이다. 이중에서도 올해 작품들의 눈에 띄는 경향은 바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약진. 특히 애니메이션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옷 입기 싫어하는 아이를 통해 인간을 옥죄고 있는 수많은 규칙과 제약을 돌아보게 하는 <이상한 나라>, 사회의 억압과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담은 <트라일레마>, 소통이 없는 어느 가족의 저녁 식탁 풍경을 그린 <가족 만찬>, 불행한 어린 시절과의 화해를 시도한 <내 이름은> 등이 그런 작품들.

귀농 처녀와 시골 총각의 결혼생활을 담은 <발 만져주는 여자>, 일본에 사는 대만 여인들의 삶을 따라간 <표류하는 여인들>, 모계 가족을 통해 여성의 사랑과 결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할머니의 노래>는 여성다큐멘터리의 오늘과 내일을 보여주는 작품들. 이 밖에 뮤지컬과 실험영화도 등장했다. <Oh! 뷰리풀 라이프>는 면접시험장에 간 여성 취업준비생의 내면에서 펼쳐지는 현실과 이상에 관한 힙합 뮤지컬. 똑같이 한 사람을 사랑하고 배신당한 남녀의 공모를 그린 <동침>은 독특한 화법의 실험영화다,

극영화들에선 여성의 현실, 관계, 성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이 두드러진다. 가사 노동에 얽매인 주부의 일상을 그린 <먼지>, 일상과 내면을 넘나드는 중년 여인의 고단한 하루를 그린 <이효종씨 가족의 저녁 식사>는 일상의 억압을 그린 작품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삐딱한 친구를 중심축으로 해 돌아가는 한 여고생의 일상을 그린 <I’m Ok>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가족관계에 대한 조망도 빠지지 않는다. 가출한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이의 시점에서 풀어간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네>는 지난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대만영화 <엄마가 잠든 사이에>도 엄마의 건강문제로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 아이의 자각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성의 몸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도 주된 메뉴다. <날개>는 초경을 맞은 소녀가 엄마의 남자와 화장실에서 마주친 아침을 그리며, <하교길>은 몇년째 의식이 없는 상태로 초경을 맞은 소녀를 통해 ‘성장’의 의미를 묻는다.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을 다룬 작품으로는 여성의 독립을 권장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보고서 <저 멀리 여름 숲은>이 있다. 싱가포르영화 <천국의 비밀>은 여자아이들간의 은밀한 유대를 그린 귀여운 소품이다.

[제 5회 서울여성영화제 상영일정표]

티켓예매 인터넷 www.wffis.or.kr/www.ticketpark.com 전화: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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