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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1]

그리고 여성은 영화를 (재)창조했다

다섯돌 맞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만나는 새로운 여성영화들의 역동성, 그리고 다양성

새로운 여성영화들이 온다! 이론으로 시작하여, 육체의 탐구를 넘어, `오늘 · 이곳`의 도발적인 에너지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 펼쳐 보이는 영화사의 새로운 지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영화는 여성을 촬영한 남성의 역사다.” 좀 거칠기는 해도 여성주의적 자각을 거친 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표현이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카메라를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이런 문제의식과 호기심을 묶어 ‘여성영화’라는 범주를 만들어냈고, 한국에서도 서울여성영화제가 그 자취를 추적하고 한데 모아 보여주기 시작한 지 벌써 다섯 번째, 햇수로는 7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여성영화는 어떻게 요동치고 있었을까.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한마디로 무척 다양해졌다. 특히 한국의 여성영화와 서울여성영화제의 에너지가 한창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씨네21> 394호, 씨네인터뷰 참조). 다양성과 역동성, 이것은 영화와 페미니즘이 만나 이루어내는 여울목, 그러니까 시네-페미니즘의 현재를 대변하는 간판으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시네-페미니즘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감지된다. 일단 주제상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여성영화들은 차별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하고, 가정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여성의 존재를 끌어내서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주력했다. 국제적으로 ‘젠더’가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 1980년대 이후에는 서구를 중심으로 젠더와 성, 육체에 대한 탐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억과 내면 등 미시적인 세계로 도피하듯 파고들어가 섬세하게 다듬고 창조하는 것 또한 흔히 거대 서사에 치중하는 남성들의 영화와 구별되는 여성영화의 한 특징으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이후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영화는 그 주제가 복합적이고 도전적이며 개별적이다. 젠더를 계급, 인종 등 여타의 커다란 사회적 이슈들과 결부시키거나, 전통적인 페미니스트 이슈 대신 개인의 실존에 바탕을 둔 작고 개별적인 이야기나 그도 아니면 엉뚱한 상상력으로 각개약진하는 경향이 동시에 발견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성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여성이라는 하나의 보편성 대신 여성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폭발적으로 노출되는 차이의 문제는 여성 혹은 여성영화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에 난관을 초래하겠지만, 다원성을 수용하는 것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터이다. ‘하나’보다는 ‘여럿’이 더 해방적일 것이므로. 또한 다양성의 와중에서도 여성이라는 코드로 묶어낼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은 여전히 식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식과 기술 측면에서도 여성영화는 창조와 혼돈이 뒤섞인 카오스모스를 경험하는 중이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세기의 민속예술이 될 것이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놓여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컴퓨터는 내면성과 개별성이라는 여성영화의 특징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젊은 여성 영화인들은 더욱 자유롭고 힘있게 창의적인 영화언어들을 조형해내고 있다.

한국의 여성영화는 이같은 다양성과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우선 양적인 측면에서 성장세가 확연하다. 1970~80년대에는 여성감독이 10년에 한번꼴로 등장했지만 지금은 독립·단편영화를 기반으로 많은 수의 여성 인력이 한꺼번에 배출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visibility)은 시네-페미니즘의 첫 번째 디딤돌이다.”(시네마서비스 국제부 문혜주 이사) 서울여성영화제의 주유신 프로그래머는 한발 더 나아가 “여성영화가 1980년대의 이른바 코리안 뉴 웨이브를 진정으로 계승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시나리오와 연출면에서 전체적으로 여성들의 기량이 훌륭하고, 자신 혹은 주변에서 출발점을 찾는 진정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가장 오래된 주제와 형식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에 이르기까지 지역별, 개인별로 다양하게 전개되는 세계 여성영화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개괄해서 보여준다. 남인영 수석프로그래머는 올해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특징으로 성차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과감하게 뒤엎는 도발적인 에너지, 다양한 영화형식과 장르를 뒤섞고 갱신하여 자신만의 영화언어로 재탄생 시키기, 디지털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수용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영화의 윤곽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창조는 부족함에 의해 생겨난다”는 레아 풀 감독의 말처럼, 시네-페미니즘은 그 확정할 수 없는 윤곽 덕분에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여성영화제는 페미니스트 여성을 위한 정치적 공간이기에 앞서, 재미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라는 사실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열려 있는 진정으로 해방적인 공간, 이것은 시네-페미니즘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첫 번째 선물일지도 모른다.김소희 cwgo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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