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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편집기사 김현의 영화인생 7막8장 [1]

감독을 꿈꾸는 영원한 가위손

김현이 1991년 <베를린 리포트> 후반작업으로 파리에 갔을 때, 한 프랑스 평론가가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는 왜 편집인이 김현밖에 없냐?”

김현을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배창호, 곽지균, 박철수, 정지영,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을 거쳐 최근의 이창동까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주목할 만한 감독들은 모두 김현과 작업했다. 예외가 있다면, 친형제처럼 아끼는 박순덕 기사와 편집을 해온 임권택 감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종상 등 그가 받은 각종 영화제 편집상이 15개이고, 어떤 해에는 영화진흥공사가 추천한 좋은 영화 12편 가운데 11편이 ‘편집 김현’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있었다. 전문편집인 1세대임과 동시에 아직도 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국 영화편집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김현과 영화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김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남에게 말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에는 필시 그만큼 기구한 사연이 따를 터. 한 사람의 55년 삶과 꿈을 통째로 장악해온 이런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몸서리쳐지는 가난, 중학교 중퇴의 학력, 허드렛일과 노숙과 허기를 그는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로 버텼다. 날씬한 몸매와 완벽한 자태를 과시하기만 할 뿐 그의 삶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영화가 그 순정에 답해온 건 아주 조금씩 긴 세월을 통해서였다. 과묵한 그가 말문을 열었다. 글 임범 isman@hani.co.kr·사진 이혜정·편집 권은주

“술 좋아하세요?” 혜화동의 편집실로 김현을 두 번째 찾아가 인터뷰 하던 중간에 그가 물었다. 그는 말수가 적을 뿐 아니라 말이 느리다. 이창동 감독과 고향이 가까워서인지(이 감독은 대구이고, 김현은 경주다) 말투가 비슷하면서 이 감독보다도 느리다. 한마디 하고 시간을 둘 때면 다음 얘기가 이어지는 건지 거기서 끝난 건지 감잡기 어렵다. 마침 인터뷰가 잘 안 풀리고 있을 때였다. “예”라고 답했더니, 그는 “저는 요새 술을 잘 못해요. 몸이 안 좋아서. 오른쪽 어깨하고 팔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된대나”라고 말한다. 성과가 썩 좋았다고 하기는 힘든 인터뷰를 한 시간 남짓 더하고 끝냈을 때 그가 다시 물었다. “한잔 하러 갈래요?” 편집실 근처의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아구찜이 나왔다. 맛이 좋았다. “괜찮죠? 입 까다로운 장선우도 이건 먹더라.” 감독들과 작업 끝나면 자주 오는 집이라고 했다. 주전자의 술이 줄어들면서 그가 말하는 사연이 점점 더 기구해졌다.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아무한테도 말 안한 건데. 옛날에 이장호한테 하소연할 때도 이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

김현이 꼽는 명편집“감정선이 잘 살아 있지”

김현은 자신이 편집한 영화 가운데 편집 베스트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전부 다 잘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보면 꼭 한두 군데씩 걸린다는 것이다. “비교적 잘된 게” 하면서 그는 박철수 감독의 <어미>를 맨 먼저 꼽았다. 지금 봐도 감정선이 잘 살아나 있다고 했다. 그뒤에는 특별한 순서나 두서없이 몇몇 편이 언급됐다. <그들도 우리처럼> <박하사탕> <오아시스>…. <오아시스>는 마지막에 설경구 잡혀가고 바로 문소리 집으로 이어지면서 설경구의 편지 읽는 소리가 나오는 그 연결이 좋다고 했다. “<오아시스> 편집 끝내고 이창동 감독에게 그랬다. 설경구, 문소리는 반드시 중요한 영화제에서 연기상 받는다. 영화도 3대 영화제에서 중요한 상 하나 받을 거다.”

<오아시스>

<비트>도 나왔다. “거칠지만 힘이 있다. 템포감도 빠르고. 김성수는 나중에 큰 감독이 될 거다.” 그는 김성수 감독과 특히 호흡이 잘 맞는 것 같았다. 편집할 때 잠을 두세 시간밖에 안 자고 일어나 또 하고, 그러면서 남의 말도 존중하고, 그래서 편집기사가 힘이 난다고.

#1.

(문무왕 해저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에서 남쪽으로 10리 떨어진 시골 마을의 밤. 동해 먼 바다에서 고래가 자맥질을 한다.)

7살 꼬마 현기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좇아 담장 높은 집으로 달려갔다. 과연 처음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담에 걸어놓은 하얀 천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였다. 영화! 현기는 반해버렸다. 가난에 찌든 지루한 현실 속에서 이야기, 그것도 진짜 사람들이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펼치는 그 이야기의 힘은 구원처럼 꼬마를 사로잡았다. 상영 중이던 영화 <두 남매>는 아쉽게도 끝날 무렵이었다. 황해가 잡혀가고, 이경희는 눈물을 흘린다. 변사가 울먹인다. “오빠!”

그뒤로 영화를 튼다고 하면 십리 밖 감포까지도 쫓아갔다. 백사장에 쳐놓은 스크린이 바닷바람에 휘날릴 때, 꼬마의 마음도 휘날렸다. 뉴스, 문화영화에 이어 영화가 끝나면 새벽 1∼2시. 밤바람에 요동치는 소나무 밭이 무서워, 여름이면 백사장에서 그냥 잤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그렇듯, 그걸 사랑이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현기는 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잘했다. 줄곧 1등하다가 5학년을 건너뛰고 6학년으로 월반했다. 그림도 잘 그려서 사생대회 나가면 큰 상을 받았다. 6학년 때 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친구들한테 “난 영화감독이 될 거다”라고 말하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 스스로 생각했던 공식적인 희망은 화가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 가서 만지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다.

장학생으로 학비를 면제받고 중학교에 들어갔지만, 너무 가난해서 계속 다니기가 힘들었다. 중퇴한 뒤에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할 수 있을까 암중모색해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19살 때 공장에 들어갔다. 지금의 한국비료로, 당시에 삼성이 지었다가 나중에 삼백사건에 휘말렸던 그 공장이었다. 월급 타면 모았다가 한두달에 한번씩은 꼭 부산에 가서 영화를 봤다.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현실은 더욱더 영화와 멀어져갔지만, 그럴수록 사랑은 더 절실해졌다. 영화계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영화에 대한 책 한줄 읽은 것 없이 결심을 했다. 공장 집어치우고 달랑 차비만 갖고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때가 20살이었다. 어머니가 서울로 찾으러 올까봐 이름을 ‘김현기’에서 ‘김현’으로 줄였다. “난 영화를 만들 거야.”

자신은 조금만 마시겠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한병만 더 할까요?”가 세번 이어졌다. 하지만 술 들어가는 속도와 무관하게 말하는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수식어가 조금 늘었을 뿐, 억양이 높아지는 일도 없다.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렸던, 처참한 기억을 돌이키고는 되레 웃는다. “다시 태어나도 영화를 할 거냐구요? 후회는 없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그런 인생을 또 산다면 태어나고 싶지 않죠. 뭐하러 태어나. 안 그래요?”

김현이 말하는 "편집"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편집에 대해 얘기할 때, 김현은 푸도프킨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영화예술의 기본은 편집이다.” 편집은 정말 기본인 만큼 감독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완성된 뒤 모든 공과도, 감독에게 돌아간다. 저 유연한 흐름은 누구의 솜씨인지, 저 후진 장면이 안 잘리고 들어 있는 건 누구의 고집인지, 관객은 감독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편집기사는 말하자면 ‘거기에 없는 사람’이다.

김현에 따르면, 영화를 위해선 이 ‘거기에 없는 사람’의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 “감독이 뭐라고 해도 편집자는 자기 생각을 가져야 한다. 편집자가 감독에 좌지우지되면 중구난방이 되고, 영화도 나빠진다. 이 컷에는 내 의도가 있으니 길게 해주세요, 감독이 아무리 그래도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야 한다. 또 감독의 의도에는 배우에 대한 예우나 자기 개인 사연 등 작품 외적인 것들이 개입될 때도 많다. 그럴 때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절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편집기사가 감독 위에서 감독이 못 보는 걸 봐야 한다고 덧붙인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흐름을 봐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보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물결처럼 흘러야 한다. 또 작품의 성격에 맞게 찍혔느냐를 따져야 한다.”

김현이 자르자고 했을 때 보였던 감독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신중하게 듣고 존중해주는 이가 더러 있고, 더러는 기겁을 한다. 곽재용 감독 같으면 “자고 나서 생각해보죠” 해놓고는 다음날 와서 “자르자고 했던가요? 잊어버렸는데”라며 딴청을 부린다. 김현 왈, “<엽기적인 그녀>도 10분은 더 자를 수 있었는데….” <경마장 가는 길>은 김현이 자르자고 한 부분을 그냥 뒀다가, 개봉한 뒤 다시 필름을 가져와 잘라서 걸기도 했다. 김현 왈, “그럴 땐 좀 서운하죠.” <초록물고기> 때 이창동 감독은 한석규가 죽은 뒤, 그의 형제들이 복수하는 장면을 찍어왔다. 이걸 붙일까 말까 고민할 때 김현은 “영화의 성격에 안 맞는다”며 빼자고 했다. 김현 왈, “결국 빠졌지만 이 감독은 못내 안타까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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