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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1]

인간은 어떻게, 인간, 그 아름답지 않은 종족이 되는가

욕망의 생태학, 그 유머적인 정신상태에 대한 사생(寫生)의 힘- <질투는 나의 힘>論

지난해 우리는 이상한 영화 한편을 접했다. 박찬옥 감독이 만든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에로 버전으로 패러디한 것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입들은, 부산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를 거치는 동안 몰려오는 소문 앞에서 무염해졌다. 가장 뛰어난 데뷔작 가운데 하나이고 감독의 연출력이 빚어낸 결정체라는 평판을 받는 이 영화가 조만간 관객을 찾는다. 모호한 듯 단호한 시선, 조용한 듯 격렬한 심리, 미미한 듯 뚜렷한 행동, 간절한 듯 허무한 사랑. 박찬옥이라는 신예 여성감독은 이런 인간의 조건을 괴력에 가까운 집요함과 정묘함으로 펼쳐놓는다. <질투는 나의 힘>이 제안하는 슬프고도 즐거운 담소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 편집자

어딘지 모르게 슬슬 가려운 곳을 콕 집어서 손톱 끝으로 꼭꼭 누르는 듯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웃음이 터질 구석이 많다. 반면 난데없는 상상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윤곽선이 희미한 가운데 질감이 풍부한 인상파 그림 한폭과, 부드럽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명확한 기운을 포함한 옛 플랑드르 미술을 동시에 연상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기이한 콘서트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원상(박해일)의 독주가 윤식(문성근), 성연(배종옥), 혜옥(서영희)과 함께하는 현악 사중주로, 다시 협주곡으로 확장되는 듯이 여겨지는 것이다.

정처없는 상상은 다시 서울의 거리로 옮아간다. 거기에는 시인 기형도가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사랑을 찾아, 사랑없는 얼굴로 헤매고 있다. 이건 영화의 제목과 정서를 기형도의 동명의 시에서 빌려왔다는 정보가 주는 피할 수 없는 상상이다. 죽은 기형도는 가끔씩 이렇게 자극적으로 귀환한다.

영화가 끝났을 때 상상이 멈춰 선 곳은 어떤 숲속의 늪이다. 검정빛 도는 청록색의 늪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원상의 얼굴이 보인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윤식의 딸 미림(김꽃비)이 열려진 방문 사이로 바라보았던 그 얼굴처럼, 원상은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늪에서는 더운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숲은 이미 습기로 자욱했고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지독한 시선, 집요한 영화

이 풍경 속에서 박찬옥은 어디에 있는 걸까. 감독은 늪 가장자리에 바짝 다가가 신발 코에 진흙을 묻힌 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원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늪에 함께 빠져들거나 빠지는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원상이 윤식을 평한 것처럼, 그는 절대로 자기를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토록 지독한 인간만이 이처럼 집요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돌발적으로 여겨지는 이런 괴력은 <셔터맨>(1994)으로 시작되는 단편 필모그래피 속에서 이미 단면들을 드러낸 바 있다. (1995)은 빌딩 옥상, 자동차 밑바닥 등 도시의 모서리에서, 잠행하는 도둑고양이처럼 소리없이 도발적으로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수상작인 <있다>(1996)는 러시아워의 지하철 안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극소의 움직임만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끌어내는 실험을 했다.

<느린 여름>(1998)은 고등학교 남학생의 사소한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느리고 지루한 리듬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감독 스스로 <질투는 나의 힘>이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내레이션에 가까운 배우 연기로 드라마를 구성한 <공연한 사실>(1999)을 끝으로 단편영화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섭렵한 그는 <오! 수정>의 조감독을 거쳐 장편 <질투는 나의 힘>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강렬한 데뷔작인 동시에 가장 뛰어난 연출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로테르담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내처 받았다.

보도자료에 적힌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한 젊은 남자가 자기 애인으로부터 유부남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남자의 주변을 서성댄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상의 여인이 새로 나타나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하는 와중에, 똑같은 남자에게 다시 한번 선수를 뺏기는 거다. 이래서 나온 대사가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꼭 자야 된다면 나랑 자요. 나도 잘해요”다.

이런 식으로 발전해가는 단선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질투는 나의 힘>은 대중적이고 익숙한 영화 형식을 어느 정도 따른다. 이야기꾼의 재간과 감독으로서의 연출력이 갈리는 지점은 그 다음부터다. 박찬옥은 이 갈림길에서 확실한 승부수를 던졌다(실은 자신의 체질을 따른 것일 테지만).

감독은 마치 노련하게 붓질하는 화가처럼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세밀하게 차곡차곡 채워넣는다. 멀뚱하고 한가롭게 찍힌 듯한 점들이 캐릭터의 뉘앙스를 형성하고, 산란하는 빛을 따라 풍경과 타인에게로 번지듯 연결된다. 감독의 관심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다. 인물들은 주로 대사 아닌 것들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예컨대 바람 피우다 들킨 사위를 담배 대접해가며 어르고 달래던 장인에게 윤식은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장인의 당혹과 실망은, 긴장으로 올라가 있던 어깨의 높이를 톡 떨어뜨리듯 낮추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물며 주요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언어 못지않게 격렬하고, 어떤 언어보다 솔직하며 정확하다.

이건 몹시 사실적이다. 우리의 실생활이 아마도 이런 식일 것이다. 풍경을 사생(寫生)하듯이 인간의 육체적 표면을 묘사하는 사생문의 문체를 따라 심리와 의미들이 죽 엮어져 나온다. 그러니 이 영화의 줄거리를 묻지말라. 그건 러닝타임보다 더 길어진다.

갖고싶다… 고로 질투한다

문성근, 배종옥, 박해일은 그 나이 때의 그런 캐릭터를 제일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들이다. 아마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런 애매한 표현이 딱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조용한 성격의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의 강렬한 연기는 사소한 아이러니와 진실들이 넘치는 대사와 어우러져 이 영화를 가장 주목할 만한 새로운 한국영화로 만들어냈다.”(<버라이어티>의 데릭 엘리)

세 인물의 캐릭터는 단독으로 묘사되지 않고 관계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원상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윤식과 연결되어 있을 때의 원상은 분노와 흠모라는 모순된 감정에 사로잡힌 청년이다. 반면 하숙집 딸 혜옥과 함께 있을 때의 원상은 자신이 가진 어떤 여유들을 베푸는 성숙한 사람의 입장에 선다. 연상의 사진작가 성연과 나란히 놓인 원상은 자신을 앞서가는 원숙함과 도덕적 자유로움 앞에서 칭얼거리는 설익은 소년이 된다.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다면체적이고 분열되어 있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원상을 통합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질투다. 말 그대로 ‘질투는 나의 힘’이다. 내 질투의 표면적인 대상은 윤식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여러 가지 결핍으로부터 생겨난 욕망이 날아가 꽂히는 것들이다. 윤식은 나의 애인을 빼앗아갔다. 그는 나보다 부유하다. 그는 문화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나를 앞선다. 이것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어떤 향취가 나를 매혹시킨다.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갖고 있지 못한가를 깨닫는다. 나는 그것을 갖고 싶다. 이런 욕망이 원상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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