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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를 가다 [3]

김기덕 감독 인터뷰"불교를 신앙이 아닌 전통문화로 접근"

어떻게 주산지를 촬영장소로 택하게 됐나.

→ <섬>을 찍기 위해 헌팅을 하던 98년 여름에 이곳에 와봤다. 그때는 물을 빼서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는데 마음에 들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당장 촬영허가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섬>을 찍을 때는 이곳을 포기하고 고삼저수지를 택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처음에 산속에 있는 암자에서 찍을 생각이었다. 부석사, 청량사 등 경치좋은 고찰을 여러 군데 찾아다녔는데 그런 큰 절의 부속 암자들이 막상 촬영하기엔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대웅전이 지나치게 크거나 시멘트 공사를 해서 보기 흉하거나 절 안에 불상 근처를 철골로 보호해놓고 있어서 절을 임대해서 찍는다 해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양수리 세트장에 작은 암자를 하나 지을까 생각하던 차에 물 위에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 때 못 찍었던 주산지가 떠올랐고 주산지에 절을 띄우자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세트만 30t이 넘는데 물에 뜰 수 있는지였다. 견적을 내보니까 3억5천만원 정도 들 것 같았는데 다행히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산지 사찰 세트를 지으면서 신경을 많은 쓴 점은 어떤 것인가.

→ 작지만 한국의 사찰 이미지는 모두 내포돼야 한다는 거였다. 빌린 소품만 1억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불상이 대체로 금동으로 만든 건데 목조로 300년된 불상을 구했다. 옛날 암자에서만 가능한 토속적이고 가정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뒀고 그래서 일반 사찰과는 다른 컨셉이 있다. 절 내부의 탱화를 불교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그렸고 절을 짓는 전문가들이 건축을 맡았다.

평소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건가.

→ 사실 내 신앙의 바탕은 개신교지만 이 영화는 종교적 개념을 떠나 있다. 한국의 불교를 전통적인 신앙 차원이 아니라 문화 차원에서 해석해보자고 생각했다. 한국의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전통문화가 아닐까 하는. 원래 이 영화의 엔딩은 스님이 도를 터득해서 손을 내밀면 새가 날아와 모이를 먹는 식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수양을 한다고 축지법을 쓰거나 하는 식은 아닐 거다. 그냥 늙으면 늙은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에필로그에 있던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은 나중에 다 없애버렸다.

이번 영화에선 직접 연기도 했는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

→ 극중 ‘겨울’장면에 나오는데 원래 이 배역은 안성기 선배에게 맡기고 싶었다. 제안을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하실 수 없다고 했고 도올 김용옥 선생한테도 섭외를 했는데 잘 안 됐다. 캐스팅은 안 되고 겨울장면을 찍을 시간이 다 됐고 해서 내가 하면 어떨까 제안하게 됐다. 영화사에서 투표를 했는데 7:3으로 내가 출연하는 걸 좋다고 해서 찍게 됐다.

시나리오로 보면 대사가 별로 없는 영화인데 <나쁜 남자>도 그렇지만 대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 이번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고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하다. 대사를 한번 안 하기 시작하니까 습관적으로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계속 영화를 만들면서 말이 다 해결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영화가 점점 액션이나 이미지가 대변하는 쪽으로 가는 느낌이 든다.

촬영 전에 불교계의 조언을 구한 적이 있나.

→ 가장 고민했던 부분인데 큰스님 몇분을 만나서 조언을 구할까 말까 망설였다. 결론적으로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관련된 책도 안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불교가 아니라 불교학으로 들어가면 함정에 빠질 것 같았다. 그냥 내가 느끼는 걸 풀어보자고 결심했다. 원칙은 ‘모른다’였다. 이번에 방한한 틱낫한 스님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모른다’라고 하던데 ‘모른다’로 시작하고 싶었다. 불교를 대표하거나 불교에 정통한 영화는 전혀 아니다. 불교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내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이번엔 국내개봉할 때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을 생각이다. 포괄적으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싶다.

사계절 가운데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가.

→ 겨울을 좋아한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계절이나 차이가 없다. 색깔도 그렇고. 계절, 색,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자고 생각한다. 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도 대체로 편견을 짚어보자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살인하고 감옥을 가는 젊은이가 나오는데 그것도 삶의 한 과정으로 봤으면 싶다. 법이다 죄다 구별하지만 그것도 모두 인간이 만드는 편견의 결과가 아닌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도(道)는 제자리에서 1m 공중부양을 하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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