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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3]
박은영 2003-04-25

콘티 변경

담쟁이 덩굴과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업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산고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를 내놓았다

97. 1. 6일 | 어젯밤 11시30분, 드디어 <모노노케 히메>의 그림 콘티가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룻밤 더 생각해 일부를 수정한다. 정말로 완성이다. 어제 1월5일은 미야자키 감독의 56살 생일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스탭들의 축하 인사에 “55살 안에 완성하고 싶었다”며 약간 시무룩해진다.

아침부터 그림 콘티의 카피를 시작하려 했으나 카피기의 상태가 안 좋다. 점심시간 직전 드디어 카피기가 고장난다. 수리 기사를 불렀다. 이것은 ‘모모노케(원령)’의 저주가 아닐까. 완성한 그림 콘티를 베이스로 러닝타임을 계산해본 결과 130분을 넘어버렸다. 엔딩도 넣지 않았는데 말이다. 으아…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뭐라고 말하나.

97. 1. 8 | “콘티, 이대로 괜찮을까?”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캐릭터마다 공격을 시작한다. 생각에 잠겨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좀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이 생각났다”며 콘티 변경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97. 1. 10 | 미야자키 감독의 콘티 변경에 오히려 러닝타임과 컷 수가 늘어났다. “프로듀서가 컨펌을 냈기 때문에 괜찮다” 말하고 있지만, 이 이상 늘어나면 스케줄이 문제다. 미야자키 감독이 “늘어난 부분의 레이아웃을 그려야 한다”며, 15컷 정도 그려낼 수 있는 에니메이터를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이전에 지브리의 작품을 도와줬던 I씨에게 연락을 한다. “그게… 좀… 시간이 없어서….” “다른 작품을 그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다. 해당 콘티를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하기에 미야자키 감독을 재촉해 러프한 콘티를 완성한다. 내일 그와 만나는 자리에 미야자키 감독이 동행하기로 했다.

97. 2. 14 | 이대로는 도저히 동화가 완성될 것 같지 않다. 우선 한 사람이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끌어올리면 될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만든다. 최근 ‘인생에 지친 사람들’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는 캐릭터 상품부를 미야자키 감독이 급습한다. “이제 좀 방을 정리해!” 당황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만화책을 버렸지만 누군가 숨기고 있던 자동차 책이 걸렸다. “이것은 일의 성격상 필요한데….” 그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97. 2. 16 | 두 시간 반 거리를 늘 걸어다니는 미야자키 감독도 오늘은 비 때문에 차로 출근했다. “<에반게리온> 극장판 2부 제작에 들어가다….” 신문 기사를 본 미야자키 감독은 “괴롭겠구나…”라는 말로, 그들이 짊어지게 될 창작의 고통을 예감한다. 바깥에서 도와주고 있는 원화맨이 잇따라 원화를 갖다주는데, 레이아웃 작업이 따라가지 못해 미야자키 감독이 괴로워하고 있다.

97. 3. 1 | 러시 체크가 있다. 작화 추가, 특수효과 수정 등등 리테이크해야 할 것이 제법 많다. 지난해부터 매주 토요일에 신체 교정 및 지압사가 방문해 하루 대여섯명씩 치료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탭 대부분은 치료 직후엔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금방 피곤한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97. 3. 7 | 지각 상습범 E씨가 1시가 돼도 출근하지 않자, 동료 K씨가 E씨의 책상 위에 “정신차려! 회사도 그만둬!”라고 쓴 메모를 붙여놓았다. 미야자키 감독을 흉내내서 한 일이었다. 메모를 본 E씨의 얼굴이 유령처럼 창백해졌다가 K씨의 장난임을 알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C파트의 커팅을 두고, 구로다가 마지막 배경장면에 고전하고 있다. 일단 동화 촬영은 했지만 어떻게든 기한에 맞추도록 하고 싶은데…. 예상보다 매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창고에 여유분으로 있던 셀을 가지러 간다. 많이 사놓길 잘했다.

97. 3. 25 | 아침 9시경 지브리의 북쪽에 있는 집에서 불이 났다. 지붕까지 불길이 올라오는 걸 보니 굉장한 화재다. 소방차가 달려온 지 15분쯤 뒤엔 거의 진화가 된다. 작업에 뚜렷한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미야자키 감독이 중얼거린다. “지브리도 같이 타버렸으면 좋았을걸.”

원화 체크 완료

97. 4. 25 | 미야자키 감독의 원화 체크가 완전히 끝난다. 할 일이 갑자기 없어져버린 미야자키 감독은 선촬영의 준비를 위한 채색을 시작한다. 즐거워 보인다. 바쁜 작업 사이사이에 취재에 응하고 있다.

97. 5. 13 | 0일분 정도 쌓였던 제작 실적표를 한번에 채웠다. 외주에 부탁한 완성품의 남은 매수가 아직 5천장 정도 있다. 단, 1컷에 평균매수가 130매를 넘기 때문에 컷 수로 하면 40컷도 안 된다. 금방이다.

97. 5. 31 | 11시부터 러시 체크. 미야자키 감독은 텔레센에 가기 전에 체크를 끝냄.완성된 러시를 다시 교체. 키리 스튜디오의 이세쓰가 인사차 회사에 옴.CG실의 작업이 전부 종료. CG룸에서 스페셜 건배!!!

97. 6. 7 | 몇몇 스탭들이 음악이 깔린 러시를 함께 감상한다. 디지털6채널의 음향은 굉장히 박력이 있다. 음악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깔리는 등 멋있기까지 했다.한편, 장기간의 텔레센을 한 것 때문에 예상대로 미야자키 감독, 스즈키 프로듀서, 와카바야시 등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스탭들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과자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하는 모습들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롤3, 4의 최종 믹스 종료.

97. 6. 12 | 아침 9시에 세야마 편집실에 들러서 음향의 네거를 맞추는 데 필요한 기자재를 차에 싣고 이마지카를 향해 간다. 10시 좀 넘어서 도착했으나 전체적인 작업이 약간 늦어져서 11시 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최종 원판 짜맞추기를 새벽 3시까지 했던 세야마는 “30분 더 잘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마지카에서도 11시부터 컷1, 2의 옵티컬의 재체크. 이번에는 확실하다!

97. 6. 14 | 한숨을 돌린 탓일까, 미야자키 감독은 방에서 원고를 쓰기도 하고, 소파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있다. 미술팀의 쫑파티가 있었다.

97. 6. 17 |

<모노노케 히메>의 완성 쫑파티가 기치조지에서 행해졌다. 이 작품의 관계자 300여명이 몰려들었지만, 준비한 선물도 부족하지 않았고, 스즈키 프로듀서의 행사 진행도 완벽했다. 쫑파티까지 무사히 종료.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97. 6. 20(금) |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는 작품 홍보를 위하여 오늘 출발. 스튜디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지브리에도 태풍이 상륙해서, 나무가 쓰러지고 있다. 안전을 생각해서 동네 소방서, 인근 주민들의 협력으로 위험한 나무를 잘랐다. 결국 톱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역시 살아 있는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옳지 않은 일….

7. 6. 25(수)

CG실에 기자재를 반입하다. 모노리스 같은 거대한 장치가 설치되었다. 이것은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기록하고 각 컴퓨터를 백업하는 장비다. 마감 때 모습과는 딴판. 마치 사무실처럼 컴퓨터가 배치된 풍경이 낯설다. 유락초 마리온 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미야자키 감독을 비롯해 스탭과 목소리 연기자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진제공 웍스튜디오

* 이 제작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공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원고지 300매 분량의 원문은 지브리 스탭들이 함께 썼으며, 제작실 스탭인 다나카 가즈요시가 정리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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