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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1]
심은하 2003-04-25

" 우리 회사도 불타버렸으면 좋았을걸 "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1994년 8월 ~ 1997년 6월 고행의 제작일지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가 6년 만인 2003년 한국 극장가에 도착했다. 제작비 240억원, 제작기간 4년을 투자한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에서 만 1년 넘게 롱런하며 142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화제를 뿌려 당시 합법적인 경로로 작품을 접할 수 없었던 이웃나라 영화팬들까지 설레게 한 바 있다. 드디어 소문의 그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우리의 의문은 여전하다. 위대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진기한 기록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우린 지브리 스튜디오 선반 한구석에서 이제 제법 두터운 먼지를 둘러쓴 <모노노케 히메>의 제작기를 입수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를 주축으로 1985년 설립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 그대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 등의 화제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 작품들에 이어 ‘자연 친화’ 메시지의 결정판으로 만들어진 <모노노케 히메>는 조금 더 야심차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모노노케 히메>에 참여한 지브리 스튜디오 직원들이 함께 써내려간 ‘날적이’ 형식의 제작기에는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엄격한 관리자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존경과 애정, 두려움이 오롯이 녹아 있다. “애니메이션은 손으로”라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서 컴퓨터그래픽(CG)을 동원하게 된 배경과 과정, 할리우드에 협력하는 동시에 견제하는 지브리의 복잡한 심경 등도 엿볼 수 있다.

94년 8월부터 97년 6월까지,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지브리 스튜디오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담쟁이 덩굴과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업실. 외부자의 견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늦게나마 발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다. 편집 심은하

역사의 새장을 준비하며

94. 8 | 미야자키 감독은 혼자서 준비에 들어간다. 스토리 라인과 이미지 보드를 작성한다.

95. 4 | 작화감독 안도는 미야자키 감독이 만든 이미지 보드를 기초로 하여 캐릭터 설정에 들어간다. 미야자키 감독이 <모노노케 히메>의 기획서를 완성한다.

95. 5. 14 | 5박6일 일정으로, 야쿠시마에 현지 조사를 떠난다. 참가자는 미야자키 감독, 안도 작화감독, 미술부의 트리오라 불리는 야마모토·다나카·다케시게, 배경의 다나카·오오타·가스가이·이나·히라하라·후쿠토메, 작화의 후지하라·다테노, CG부의 모모세·간노, 제작부의 다나카로 총 16명.

우리는 백곡운수협의 험준한 하이킹 코스를 걷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에게서 굉장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 이번 현지조사의 하이라이트인 남서쪽 조엽수림대로 향한다. 야쿠스기 랜드에서 숲을 관찰한다. 마지막 날, 새벽 6시에 여관을 출발, 조몬스기로 향한다. 왕복에만 10시간이 걸렸는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30분. 하루종일 걸은 뒤 유람선에서 식사를 한다. 반딧불과 야광벌레의 불빛 속에서 활어튀김을 맛보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도쿄로 돌아온다.

95. 5. 22 | 지브리 2층 계단의 북쪽에 <모노노케 히메>의 메인 스탭실을 설치한다. 전 작화 스탭을 바에 모아놓고 작품 설명회를 가진다.

95. 6. 1 | CG부를 개설한다. 방송 편성국 미술개발부에서 활동하던 간노가 2년 예정으로 지브리에 투입된다. 애니메이터인 모모세가 디자이너로 참여한다.

95. 7. 10 | 그림 콘티가 134컷의 분량(11분30초)으로 완성된다. 최초의 작화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원화 14명이 작화 작업에 들어간다. CG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 134컷 중 11컷은 어떠한 형태로든 CG가 삽입될 것이다.

95. 9. 2 | 미야자키 감독이 급성심장결석 질환으로 구급차에 살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렇지만 곧 일에 복귀한다.

95. 12. 8 | 이전부터 미야자키 감독과 안면이 있던 <토이 스토리>의 존 래세터 감독이 지브리를 방문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열성팬임을 자처하는 그의 소원대로 <이웃집 토토로>의 그림 콘티 카피를 미국에 우송한다.

95. 12. 15 | 젊은 원화가 둘이 지나친 작업 부진을 보이자 미야자키 감독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다. 그러더니 그들에게 복잡하고도 괴이한 재앙신의 동화를 그리는 벌을 내렸다.

96. 1. 5 | 작업을 개시한다. 스즈키 프로듀서가 새해 인사를 건넨다. “올해 여름휴가는 없다”라고.

96. 1. 6 | 아무래도 작화감독을 보좌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원화가 가운데서 한명을 기용해야 하는데, 겨우 수소문해 만난 외부 원화가들을 우리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한다.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의 관리가 무척 엄격하다는 것이 이 업계의 전설이라면서(사실 그렇지 않다).

연말에 TV에서 <이웃집 토토로>와 함께 방영된 <모노노케 히메>의 TV용 광고를 본 니키 마키코(잠시 휴직하고 있었던)가 원화를 그리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3월1일부터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96. 1. 11 | “요즘 젊은이들은 20세기의 역사를 너무 몰라.” 미야자키 감독의 한마디에 <영상의 세기>의 상영회가 개최된다.

96. 1. 16 | 컷166과 168의 겸용컷 배경동화를 시험삼아 CG로 만들어본다. CG부에서 2시간 분량의 간단한 동작을 화면으로 만들어 보인다. 그것을 본 미야자키 감독은 애니메이터들을 교대로 데려와서는 “어때? 대단하지! CG의 새로운 시대가 온 거야” 하며 크게 흥분한다. 지금까지 미야자키 감독에게 “너무 속도가 늦어!”, “영 도움이 안 되는군!” 등의 타박만 들어왔던 CG부는 그제야 한시름 놓는다.

96. 1. 17 | 디지털페인트의 테스트 러시가 완성된다. 수작업물과 섞어서 스탭들에게 보여주자 아무도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96. 2. 7 | 그림 콘티의 컷680A에서 771까지 92컷의 분량을 완성한다. 총시간은 64분20초. 오늘부터 드디어 본편의 촬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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