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감독 · 평론가 8명이 추천하는 단편감독 8인 [2]
2003-05-09

추천자 : 정성일/ 영화평론가

기괴하고 종잡을 수 없는 묘기의 나라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의 신재인 감독

나는 처음에 그냥 막 가자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신재인의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입에선 오로지 진실만이 콸콸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모두가 내 진실에 빠져 죽으리라”는 자막이 떠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냥 무방비상태로 쳐다볼 것이다. 물속에 떨어진 십자가를 들어올리는 손을 보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어디선가 물이 뚝뚝 떨어진다. 천장이 새고 있으며, 아마도 세상은 울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신재인은 타르코프스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병원 수술실에서도 물이 떨어지고, 법정에서도 물이 떨어진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막 수술을 마쳤으며,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말해준다. 수술 잘되었구요, 그렇지만 경과를 지켜봅시다. 환자의 머릿속에는 제 진실을 넣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당신은 곧 망연자실해질 것이다. 간호사가 뛰어나와 선생님 큰일났어요, 라고 외치는데도 의사선생님은 담담하게 걸어가면서 중얼거린다. 진실을 알지 못하느니 목숨을 잃는 편이 낫지요. 그는 법정에 서서도 진실에 대해서 판사와 맞선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도 설교하는 목사 앞에서 그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말씀에 대해서 목사님과 맞선다. 네 입을 넓게 열라,(시편 81편 10절) 그렇게 입을 크게 열면 말씀하시길 진실이 콸콸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입을 넓게 열자 정말 물이 쏟아져 나와 교회에 홍수를 일으키고, 사람들은 그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 홍수에 잠긴 채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그동안 네 이야기 재미있었다. 나는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말씀은 은유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행해진다. 우리가 비유라고 알던 것이, 상징이라고 생각한 것이, 예언이라 말씀한 것이, 실재로부터 대답이 올 때, 갑자기 환상은 무너지고 우습다고 생각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져든다. 그래서 이제 영화 안에서 나는 이것을 요구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서 버티던 그 공백이 채워질 때, 갑자기 그 자리를 실재의 대답이 차지할 때, 어디서 어디까지를 환상 안에 매장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신재인은 그 순간 불현듯 자기의 영화를 발명한 것이다. 아, 이 이상한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것은 찬사가 아니라 탄식이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정말 어쩌자고 이 지경까지 밀어붙여서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런 시네마토그래픽한 아비규환을 만들었는지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 신재인은 기적처럼 이 모든 혼란을 일시에 정리해낸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또는 아무도 더이상 웃지 못한다. 그것은 결코 당신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이제 정말 죽은 줄 알았던 기억이 거기 그렇게 유령처럼 돌아온다. 우리가 제대로 매장하지 않았던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래서 어느 쪽이 어느 쪽의 반영이며, 유령이며, 비유이며, 거울이며, 상징이며, 히스테리이며, 기억인지, 누가 누구를 뒤쫓는 것인지, 하여튼 최악의 내기를 걸게 만든다.

이 기괴한 순환. 또는 술래를 알 수 없는 숨바꼭질. 그래서 번번이 불려가야 하는 지옥의 영겁회귀. 여기에 이 도착증에 빠진 채 물구나무를 선 신재인의 종잡을 수 없는 묘기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과 루이스 브뉘엘이, 혹은 스즈키 세이준과 마리오 바바가 뒤죽박죽으로 앞서거나 뒤서면서 등을 떠밀거나 발을 걸어 시종일관 휘청거리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상징적 법의 인과성을 교란시킨다. 말 그대로 그것이 담론의 목에 꽂혀서 삼켜질 수 없는 형상-원인이 되어 결국 토해내게 만든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환원되지 않는다. 익사할 만큼 넘쳐나는 담론의 토사물. 이 영화 안에 들어서는 것은 말 그대로 신재인 월드에로 다이빙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영화 안에서 수영하는 법을 익힐 생각은 하지 마라. 그녀도 그래서 마지막에 충고한다. “네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진실뿐이니, 그것이 너를 구원할 무엇이겠느냐. 너는 소란 떨 필요가 없다.” 누구보다도 신재인은, 또는 적어도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그 안에서 우리가 죄의식에 몸을 떨며 구원없는 저 하드보일드의 담론 속에 빠져 죽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기꺼이 죽기를 원하는 자, 죄 없다고 우기는 자,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자, 이곳으로 오라. 너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구원을 즐기면 되는 것을. 그렇게 그녀의 진실은 전진할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