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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영화 코드 분석 [4]

제 3 라 운 드

"멜로! 너 코미디한테 딱 찍혔어"<동갑내기 과외하기><오! 해피데이>

<가문의 영광>을 통해 예고되었고, <색즉시공>을 통해 강화되었던 감상적인 멜로 코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오! 해피데이>를 통해 깔끔한 ‘스크루볼(로맨틱)코미디’로 변신한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로맨틱코미디의 귀환. 그러나 그 귀환은 주인공들의 낮아진 연령만큼이나 낮아진 정신연령을 통해 이루어졌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영화들은 모두 12살 관람가 등급이다). 90년대의 그것이 성인남녀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의 성을 경쾌하고 신선한 화법으로 그려내고 있다면, 21세기의 그것들은 감상적이고 순정만화적인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 전환은 한국영화 시장의 주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10대와 20대 초반에 대한 소구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들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적당한 엽기 코드를 갖추고 있는 것이나 그들의 취향이 형성되는 주요 훈련 공간인 대중문화(특히 TV)와 적극 연대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뒤를 이어 출발부터 인기있는 인터넷 소설로부터 그 상상력을 수혈받은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러나 이 영화는 상업성에 대한 고려 탓인지 원작의 진짜 재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제대로 보고 못한 채 그저 순간순간의 엽기성과 감상적인 멜로 코드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원작의 유머는 집안 형편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말썽꾸러기 동갑내기를 과외 지도해야 하는 작가의 역설적인 자기 긍정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의 엽기적인 대결과 그들의 주변인물들(특히 그 부모들)의 한층 더 엽기적인 개그와 행동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이르면 마치 공식을 준수하듯 감상적인 멜로 코드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선배격인 <엽기적인 그녀>에 비해 여러 가지 점에서 영화적 빈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그 허술한 빈틈을 다양한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을 대중문화적 코드를 차용함으로써 메워나간다. 그 단적인 예 중 하나. 수완의 짝사랑 상대이자 지훈의 연적이 된 그 오빠는 ‘이름만 성시경’임으로 해서 관객을 한번 웃기고, 지훈에게 무참히 짓밟히며 망가짐으로 해서 다시 한번 가학적인 웃음의 쾌감을 선사한다. 또 하나의 징후적인 예. 자신의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이 권태와 일탈의 유일한 이유인 듯했던 지훈은 수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행글라이더를 태운다(그 행글라이더신의 등장이 얼마나 갑작스럽던지 나는 잠시 중간 CF인가 착각했을 정도였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너무도 뻔뻔스럽게 80년대 에로영화에서나 어울렸을 법한 상투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오! 해피데이>

뒤를 잇는 <오! 해피데이>는 기대만큼 큰 흥행 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장르적 완성도를 보여주며 새로운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에 도달한 듯하다. 이 영화는 장나라의 영화일 뿐만 아니라 공희지의 영화이기도 하다. 공희지는 사랑의 쟁취를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적극적이고 당찬 신세대 여성이며, 이유야 어찌됐던 환경보호운동과 불우이웃돕기에 나설 만큼 정의롭기도 하다. 장나라는 공희지를 통해 할리우드의 줄리아 로버츠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서야 이루어냈던 ‘프리티 우먼’과 ‘에린 브로코비치’를 동시적으로 구현하는 쾌거를 이루는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보여주는 결혼을 통한 계층 상승 욕구는 너무나 뻔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적어도 <가문의 영광>이 보여준 그것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다). 단, 그들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해피 엔딩은 상대 남자 김현준이 <가문의 영광>의 박대서만큼이나 예외적으로 순진한 킹카임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뮤지컬신은 그 해피 엔딩이 단지 영화적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자기반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영화 사이에는 <선생 김봉두>가 있다. 세련된 수사법으로 웃움과 감동의 결합을 이루어냈던 이 영화도 역시 근본적으로는 멜로영화의 귀환에 불과하다. 단지 그와 그녀가 도시(어른)와 시골(아이)들로 바뀌어 있을 뿐, 이 영화의 감동 역시 고전적인 감상성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감상성은 현실을 덮고 가린다. 영화 속에는 폐교된 뒤 산내분교의 운명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있을 것임이 암시된다. 서바이벌 게임장을 만들려고 하는 레저 산업체의 도시적 욕망과 그곳을 여전히 아이들이 찾아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지키고자 하는 소사 춘식 아저씨의 소박한 시골적 욕망. 현실적으로 그 두 욕망의 충돌과 갈등이 어떤 결과에 이를 것인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 현실을 과거의 빛바랜 사진적 이미지로 덮어버린다. 그렇게 현실을 덮어버림으로써 우리는 잠시나마 따뜻한 감동의 여운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 코미디영화의 변신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일정한 장르적 완성도를 보여준 <오! 해피데이>의 흥행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중은 이제 단순한 엽기적 웃음의 코드와 감상적인 감동의 코드의 결합에 싫증내기 시작한 것일까?(그렇다면 이 영화는 너무 늦게 도착한 셈이다) 아니면 이 영화가 이미 검증된 흥행의 안전 장치인 가학적 폭력과 질펀한 성적 농담(언어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이루어지는)을 무모하게도 버렸기 때문일까?(그렇다면 이 영화는 너무 일찍 도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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