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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리로디드> 스포일러 [4]

|||||||||||||||||||||||| 에반겔리온 <매트릭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대한 헌사이다. 1편과 2편의 시작장면은 애니메이션의 영화적 전개라고 할 만했으며, <매트릭스>의 기본 구성 또한 <공각기동대>와 흡사하다. 그러나 이번 2편에서는 또 다른, 숨어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에반겔리온>에 담겨 있는 그 처절한 종말론이다. 네오에 앞서 다섯 명의 메시아를 맞았던 인간도시 시온은 그때마다 종말을 거듭했으며, 네오에 이르러 다시 한번 종말을 앞두고 있다. 그 원인은 시스템 설계자가 네오에게 설명한 것처럼 인간의 불완전성, 컴퓨터로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불예측성 때문이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는 결국 오류가 발생하고 모든 것을 지우고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 마치 윈도 시스템처럼 말이다. 이건 <에반겔리온>에 나오는 ‘인류보완계획’의 새로운 버전으로 보인다. 신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기존 인류를 완전히 숙청하려는 계획. 선택받은 극소수만 남고 나머지는 전멸한다.김장호

|||||||||||||||||||||||| 아니메 <매트릭스>의 오프닝에 떠오르는 문자를 잘 살펴보면 뒤집힌 영문과 숫자, 그리고 일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니터에 흐르는 무수한 문자를 보여주었던 애니메이션으로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있다.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흐르긴 했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워쇼스키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의 하나이고, <매트릭스> 곳곳에서 <공각기동대>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뇌공간’이 주요 무대로 쓰이고 여성의 캐릭터가 중성화된 전사의 이미지라는 점도 비슷하다.

워쇼스키 형제는 오시이 마모루를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열광적인 마니아다. <매트릭스> 스토리의 구석구석을 메워주는 <애니매트릭스>에는 가와지리 요시아키를 비롯한 일본 감독들을 대거 초빙하여 연출을 맡겼고, <매트릭스>에서도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표현 기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매트릭스>의 전매특허로 굳혀진 불릿 타임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널리 쓰이던 것이란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네오가 예언자 오라클을 찾아갔을 때 방 안의 꼬마들이 이상한 능력을 보여주는 광경은, 초능력을 쓰는 아이들이 등장했던 오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 스미스 요원은 네오의 코드 일부를 복제하여 자신을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스미스는 인해전술로 어느 정도 동등하게 네오와 싸울 수 있지만, 단 하나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에는 대항할 수가 없다. 100명의 스미스가 하늘로 날아올라간 네오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썰렁한 풍경은 일본 만화의 클리셰다.

|||||||||||||||||||||||| 인용 취미 <매트릭스>의 주제는 <공각기동대>에 상통하는 한편 <터미네이터>에도 젖줄을 놓고 있다. 기계가 인간에게 반기를 들어 공격하고 이미 지상은 모두 기계의 지배에 놓이게 되는 미래세계는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것이었고, <매트릭스>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인간을 배터리 취급하여 에너지를 끌어내지는 않지만, <터미네이터>에서도 저항군과 기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지상에 나온 저항군을 날아다니는 기계가 공격하는 모습도 이미 <터미네이터>에서 확인한 것이다.

오라클의 집에 갔을 때 TV에서 나오는 영화는 72년작인 <Night of the Lepus>. 황당무계하게도, 토끼가 거대해져 인간을 공격하는 영화다. 거대 토끼를 보면서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웃을 수밖에 없다. 한편 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요 인물이기도 하고, 1편에서 네오는 여인의 팔에 문신으로 새겨진 흰토끼를 따라가다가 트리니티를 만나게 된다.

일본 만화의 팬이자 만화의 스토리 작가이기도 했던 워쇼스키 형제는 미국 만화에도 일가견이 있다. 한쪽 팔을 앞으로 뻗지는 않지만 공중을 날아다니는 네오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슈퍼맨을 연상할 것이다. 트리니티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달려오는 네오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네오의 모습은 슈퍼맨 못지않게 <드래곤 볼>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손오공, 샤이아인과도 무척 닮았다. 김봉석

|||||||||||||||||||||||| 외국어 외국어는 매트릭스를 읽는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미국영화이니 영어는 여기서 외국어가 아니며 두 가지 언어가 등장한다. 먼저 일본어인데 매트릭스의 모든 컴퓨터 언어를 구성한다. 번개와 같이 세로로 넘어가는 일본어 컴퓨터 용어를 읽는 서양인의 모습은 몹시 낯설다. 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이 점을 노렸다. 어느 시대이건 정보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정보를 읽고 전달하는 방식도 훈련받은 소수만이 알 수 있었다. 한자의 원류인 갑골문자도 신과 제사장만이 아는 특수한 언어였고, 중세의 라틴어도 그러했다. 현대에 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일반인들과 비전공자들에게 과학공식과 용어는 해독불가능한 코드이다. 일본어 컴퓨터 용어를 읽고 해석하는 서양인 오퍼레이터라는 비현실적 설정이 가상현실 매트릭스의 세계를 구성한다.

반면 악질 정보브로커인 메로비니언은, 네오와 대화 도중에 난데없이 “욕설하는 데 프랑스어가 최고지”라며 갑자기 프랑스어를 지껄인다. 한때는 외교언어로서 서양의 여러 언어 중 가장 세련된 언어로서 대접받던 프랑스어가 욕하기에만 좋은 천박한 언어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이는 말할 나위도 없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국인들의 반불감정 때문이다. 속에 나오는 한국어도 프랑스어와 매한가지이리라.김장호

작명법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이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름 대부분을 차용했는데 신화 속 인물을 알고 나면 매트릭스에서 그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한다. 워쇼스키 형제는 신화가 가진 중요성, 사회와 문화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매트릭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언어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 네오(키아누 리브스) 전편에서 세상의 진실에 눈뜬 토머스 앤더슨은 새로운 존재, ‘neo’가 되며 인류를 해방시킬 구세주로 떠오른다. ‘네오’는 ‘새롭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차용했다. 또한 네오의 철자 순서를 바꾸면 구세주라는 뜻의 ’ONE’이 된다. 그의 이름과 1편에서 네오를 배신한 사이퍼(컴퓨터 용어로 0을 뜻함)의 이름은 이진법을 구성하는 숫자다. 2편에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한글2002를 한글97에서 구현 못하듯이 기존의 모든 걸 뒤엎고 새롭게 등장하는 구세주의 새로운 버전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간을 넘은 존재라는 강조가 너무 지나쳤던 탓인지 네오는 날아다니는 슈퍼맨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각성 전 네오의 이름 토마스 앤더슨은 예수의 의심많은 제자 토마스에게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Morpheus)에서 이름을 따왔다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압제의 땅을 탈출하여 구원의 땅으로 향하는 모세를 떠올리게 한다. 질 것이 뻔한데도 ‘그’가 우리를 구원하리란 신념만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독려하는 저항군의 심벌 모피어스는, 분명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모르핀(Morphine) 주사와 같은 존재다. 오비드의 <변신>에는 그리스 신화와 무관한 ’형상을 주조하는 자’ 모피어스가 등장한다. 한편 모피어스의 이름 뒷 부분은 지옥으로 내려가 유리디케를 구명하려고 한 오르페우스를 연상시킨다.

||||||||||||||||||||||||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이름이며 전형적인 팜므파탈 캐릭터다. 네오를 애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보는 앞에서 유혹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장르가 SF임을 잊게 할 정도로 농염하다. 지상으로 나올 때마다 계절을 바꾸는 신화 속 페르세포네처럼 네오 일행의 모험에 전환점을 제공한다. 따뜻한 태양 아래서 푸른 대지를 마음껏 활보하던 처녀 시절이 그리운 페르세포네가 원했던 것은 맑은 공기와 자연보다는 진정한 사랑이었던가? 네오와 짙은 키스를 나눈 뒤 “바로, 이것이었어”라고 내뱉으며 트리니티를 쳐다보며 “당신이 부럽소”란 말을 던진다. 영화 속 그녀의 뇌쇄적인 뒷모습은 숱한 남성 관객을 질식사시켜 저승으로 무수히 보내리라.

||||||||||||||||||||||||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삼위일체를 뜻한다. 네오와 모피어스와 함께 말 그대로 일체가 되어 인류를 구원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연인 네오를 사랑과 믿음으로 완성시킨다는 작명원리이다. 그녀는 진짜 세상 속으로 네오를 내보내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트리니티는 모피어스와 함께, 악기 소리를 모방하거나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하는 신서사이저의 기종명이기도 하다고 마니아들은 전한다.

||||||||||||||||||||||||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의 딸로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였던 니오베.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두었고, 이를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라는 두 남매밖에 없는 여신 레토 앞에서 뽐냈다. 여신의 분노를 산 그녀는 자식을 모두 잃게 되며 결국 밤낮 울며 탄식하다가 돌이 되고 만다. 모피어스와 한때 연인관계였던 그녀는 그 이름처럼 교만하지만 모피어스를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되어준다.

|||||||||||||||||||||||| 메로빈지언(람베르 윌슨)

영화 속에서 뜬금없이 프랑스어를 지껄이는 악질 정보브로커 메로비니언란 이름은, 481년에서 751년까지 프랑스에서 존재했던 ‘메로빙거’ 왕조를 뜻한다. 메로빙거 왕조는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잔존해 있던 로마 세력을 물리쳐 오늘날의 프랑스가 있게 했다. 한때는 메로빙거 왕조가 예수의 후손이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결국 메로빈지언은 프랑스의 또 다른 이름이며, 워쇼스키 형제는 비굴하고 추악한 캐릭터 설정을 통하여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을 비꼰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가상된 현실이란 없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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