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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10]
이다혜 2003-06-07

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칸에서 본’ 2003년 10편의 영화

이 순위는 내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며, 이것은 영화제 수상결과와 아무 상관이 없다(나는 혹시나 영향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뽑았다). 이 명단에서 복원판 상영과 회고전은 모두 제외시켰다. 그러니 아쉽지만 펠리니와 파졸리니, <불타버린 시간의 연대기>, 리처드 브룩스, 사뮈엘 풀러를 모두 제외시켜야 한다. 한 가지 더. 나는 2003년 칸에서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 명단은 내가 본 61편의 목록에서 선정한 것이다.

01. <오고, 가며>(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비경쟁 공식초대작

영화 괴인(怪人)의 레퀴엠. 죽어가는 육체를 이끌고 몬테이로는 다시 한번 우리를 음란한 상상과 피곤한 육신 사이의 논쟁으로 끌고 들어온다. 삶의 마지막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멈추어선 카메라의 무한정한 시간, 그 안에서 원을 그리면서 마을버스를 타고 거듭 집으로 돌아오는 기상천외의 동네 로드무비.

02. <엘리펀트> (구스 반 산트) 경쟁부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선율. 그날 오후 두 소년은 총을 들고 학교에 등교해서 친구들을 보이는 대로 죽인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것이다. 구스 반 산트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찍어낸 참살극. 그 안에서 ‘장님(들) 코끼리 만지듯이’ 미국의 하루가 담긴다. 시간은 반복되고, 그 반복의 시간은 입체적인 공간이 된다. 새로운 경지. 한 마디로 쇼크!

03. <아버지와 아들>(알렉산더 소쿠로프) 경쟁부문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아버지와 아들처럼 그들은 결국 헤어져야 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드는 제스처들 안에서 에로틱한 부자간의 사랑이 담긴다. 때로 명상적이며, 때로 신화적이고, 대부분 유령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 듯한 주술적인 환영의 출현, 기억의 귀환, 영혼의 육화, 일시적인 머무름과 영원한 현재, 그 모든 것의 명령과 맹세.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 소쿠로프의 가족 삼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

04. <도그빌>(라스 폰 트리에) 경쟁부문

더 지독해진 라스 폰 트리에. 연극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한 마을의 흥망성쇠의 이야기, 혹은 1930년대 미국을 무대로 한 소돔과 고모라의 재현. 마을을 찾아온 여인은 개목걸이에 끌려다니고, 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착취하고 윤간한다. 이제 남은 일은 그녀의 복수뿐이다. 브레히트적인 무대 위에서 칼 드레이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자비한 나라 미국에 관한 USA 삼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 정말 앞날이 걱정되는 삼부작.

05. <샤라소쥬>(가와세 나오미) 경쟁부문

가와세 나오미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영화(私映畵)의 세계에로의 초대. 그녀는 DV캠을 들고 자기가 태어난 고장에 찾아가 그 인물들의 일상의 리듬 안으로 들어가서 삶의 환희를 보고 싶어한다. 한여름 낮 여우비가 쏟아지는 오후 축제의 눈물을 자아낼 듯한 격렬함, 그 안에서 형제를 잃고 혼자 남은 쌍둥이 소년과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소녀는 비로소 세상 속의 자기의 의미를 깨닫는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홈비디오.

06. <‘남자들의 무리 속에서’를 연출하면서>(아르노 데플레생) 주목할 만한 시선

다시 연극의 세계에로 돌아온 아르노 데플레생은 연극과 필름누아르를 기묘하게 리믹스 시킨다. 또는 셰익스피어와 대실 해밋을, 혹은 ‘햄릿’을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서로 교차시킨다. 영화와 연극 경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 사이에서 고전주의와 펄프 픽션의 긴장을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숭고함을 되찾으려는 경주가 벌어진다. 위험한 내기. 혹은 데플레생의 또 다른 리허설.

07. <늑대의 시간>(미카엘 하네케) 비경쟁 공식초대작

갑자기 일가족은 위기에 빠진다. 남편은 총에 맞아 죽고,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 시간과 장소가 사라지고, 숲속 한복판에서 불현듯 위기에 빠진다. 비역사적인 알레고리의 시간으로의 추락,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해석되지 않은 채 위기가 계속된다. 미카엘 하네케의 또 다른 부조리극, 혹은 인형극. 부분적으로 베케트를 끌어들이고, 고도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열차는 오지 않는다.

08. <미스틱 리버>(클린트 이스트우드) 경쟁부문

어린 시절 세 친구는 이상한 사건에 말려든다. 한 친구는 유괴되고, 나중에 돌아온다.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 이 이상한 사건은 그들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려내는 유장한 드라마의 세계. 혹은 숀 펜과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의 연기가 빚어내는 황홀한 세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가답게 드라마 안에서 인과관계를 버리고 세 친구의 어두운 심리적 충격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간다. 위대한 비극, 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소품.

09. <밝은 미래>(구로사와 기요시) 경쟁부문

해파리들은 도쿄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황당무계한 상상력의 도쿄 신세대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의 환상극. 해파리를 키우는 청년은 죽고, 그의 친구가 해파리를 키워야 한다. 그런데 이 해파리는 동경에 사는 모든 이들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구 사이의 새로운 부자관계가 성립하고, 젊은이들은 ‘해파리처럼’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영화는 묻는다. 갈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DV캠으로 찍은 더할 나위 없이 ‘라이브’한 동경의 풍경.

10. <털스 루퍼 여행가방, 제1장 모아브 이야기>(피터 그리너웨이) 경쟁부문

…그리고 미래의 영화, 혹은 인터넷과의 위험한 불장난. 하지만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부작보다, 혹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삼부작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삼부작의 그 첫 번째 에피소드. 말하자면 피터 그리너웨이의 총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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