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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X-ray 6 - 영화진흥위원회 [1]

제작지원 중심 탈피, 유통 · 배급 · 공적영역 지원으로 나아가야

한국영화산업 진단시리즈 6편 영화진흥위원회, 어떻게 진흥할 것인가

1999년에 출범한 영화진흥위원회는 시장과 정책의 연결 지점에 서서 한국 영화계와 함께 움직여왔다. 그러나 영화산업이 빠른 속도로 변화함에 따라 영진위는 정책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청에 직면해 있다. 주류 산업에 치이던 공공영역을 정책의 중심으로 불러들이고, 제작지원이 아닌 대안배급 환경을 정비하는 쪽으로 나가되, 현재의 패러다임을 넘어설 만큼 과감하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영진위와 영화계가 함께 고민하며 비판하는 목소리를 여기 싣는다. 편집자

01. 왜 지금 영진위인가?

엉뚱한 이야기지만, 영화진흥위원회라는 이슈는 철학과 맞닿는다. 그것은 곧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조형하는 철학이 구체적인 삶의 지침으로 빚어지고 실천되는 정치와 만나는 모습.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최종적으로 사유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등장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하나의 사건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 정책과 영화는 기본적으로 늘 적대적인 갈등관계에 있었다. 100여년의 영화역사 대부분이 식민지와 군사독재 기간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를 천명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1999년 5월28일 합의제 민간 행정기구로서 영진위가 출범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대전환이 이루어진 셈이다.

외적인 변화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계 내부의 역동성이다. 주지하듯이 영화계는 자력으로 시장을 회복하고 대중의 시야와 담론의 중심에 진입했다. 또한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서 보듯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맞서는 전선을 펼치기도 했다. 과거의 정권과 차별화하고자 했던 김대중 정부가 영화산업에 주목한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영진위를 주도해온 핵심 주체들의 헌신성과 도덕성, 정치적 역량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보인다. 갈등과 싸움, 심지어 소송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란들을 몰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근본 방향에서는 옛날 제도가 남긴 무거운 흔적들을 하나하나 떨쳐나가는 한편으로, 사안들을 정책화하고 제도화해온 공로는 기록될 만한 것이다. 특히 돈과 사업 관리가 따라다니는 일임에도 진행상의 논란은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부패의 흔적이 없다는 것도 지적해둠직하다. 산업과 정책이 원활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영화계 전체를 끌어올리는 모습, 이것이 지난 4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왜 영진위를 이야기하는가? 영화현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지럽고 흥미로운 한국사회가 만들어내는 속도의 차이로 인해 새로운 숙제들이 이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영화계와 영진위 스스로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단지 발빠른 대응을 넘어서서 장기적이고 큰 비전을 그리는 문제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논의할 때”(김홍준 영진위 위원)라는 뜻이다.

02. 영화는 찍게만 하면 장땡?

2000년 3월에 발표된 ‘영화산업진흥종합계획’은 2004년에 달성할 한국영화의 목표를 연간 150편 이상의 상업영화 제작,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50% 이상 확보, 2003년까지 영화진흥금고를 1700억원 이상으로 확충하는 것 등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11월에 영진위 정책연구실(실장 김혜준)이 주관한 ‘2002 영화정책 수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는 “산업과 문화의 공존 전략”을 강조한다. 그 결과 영진위가 실행하는 구체적인 정책 목표는 투자조합 출자나 극영화 제작지원 등을 골간으로 하는 영화‘산업’ 부양책과 아울러 저예산 예술영화나 독립 단편영화에 대한 지원, 시네마테크, 미디어센터의 활성화 방안 등 이른바 영화‘문화’에 대한 육성책이 두축을 이루는 구도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사례가 왕성하게 벤치마킹되었다.

전체 사업을 가로지르는 진흥정책의 패러다임에는 두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하나는 문화의 관점보다 산업의 관점을 훨씬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당시 영화산업의 시장 규모가 4천억원 미만으로 추산되던 상황에서 1천억 단위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은 흥분되는 소식임에 틀림없었고, 문화‘산업’을 키워야 문화 자체가 발전한다는 논리도 당시로서는 신선한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가 어떻게 산업으로 연결되는가에 대한 특수한 접근법이 발달하지 않은 채 공장에서 물건 찍는 산업을 키우는 식으로 영화산업을 상상했고, 더욱이 개별 산업의 시장 경쟁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상 또한 깊숙이 스며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박정희 정권의 영화정책 역시 물량 위주의 성장주의를 지향했었다는 점이다. 이는 영진위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시스템 설계 문제이고, 기획예산처-문화관광부의 지휘 체계에 놓여 있는 영진위는 좋고 싫음을 떠나서 그 방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이슈가 바로 ‘투자조합’이다. 투자조합은 예컨대 공적자금 20억원을 종잣돈으로 민간 자금과 중소기업청 자금 등 영화계 외부의 돈 80억원을 추가로 모아서 100억원 규모의 재원을 형성하는 식의 실험적인 자금 조달 방식으로, 현재 영진위 자금이 출자된 조합의 개수가 11개에 이른다. 이 제도는 영진위 자체뿐만 아니라 현장 영화인, 연구자, 문화관광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일단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영화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직전에 자본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단계에서 일정 정도의 유인책이자 안전판으로 기능했다는 것이 그 요지다.

영화산업진흥종합계획의 두 번째 특징은 제작 중심의 패러다임이다. 산업이든 문화든 양쪽 모두 제작부문을 지원하는 데 정책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진흥책에 있어서 주류 상업영화 제작 지원이 메이저 이슈로 되고 비주류-저예산-예술영화 혹은 관객운동, 교육 등의 영역이 마이너 이슈로 편성되는 논리도 불완전하거니와 양쪽 모두 제작 위주로만 바라본 것은 비단 국가 정책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진위 자체가 가지고 있던 편향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곧바로 닥친 배급-상영의 위기에 대해 영진위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사실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화산업을 제작 중심으로 사고하는 한국 영화계의 뿌리깊은 고정관념”과 관련이 있다. 투자나 배급, 마케팅, 상영 등의 영역이 뚜렷하게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 결정 단계에 제작 영역 종사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고 그 결과 메이저 상업영화 100편, 독립영화 1천편 등 제작상의 목표치는 제시되었지만 이 영화들이 어떻게 소화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별달리 보이지 않았다(조준형 영화인회의 정책실장,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진흥사업 평가 및 제언>, 2002년 3월).

“1999년에 그런 결정이 가능했겠는가? 그건 아니다. 불과 2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불과 2년’ 만에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은 영진위가 새로운 환경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급한 불을 꺼나가면서 대증요법을 마련”(김홍준)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와라나고 살리기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2001년이 되자 벌써 예술영화의 배급-상영문제가 현안으로 폭발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드러낸다. 주류 산업에 속하는 제작자들이야말로 ‘예술영화’를 만들 용의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그럼에도 예술영화에 손댈 수가 없는 것은 배급-상영의 위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분적인 제작 지원을 계속 해봐야 문제를 반복할 뿐이다.

이른바 ‘문화’를 대표하는 비주류쪽을 살펴보면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현재 영진위는 매년 50여편의 독립-단편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쪽에서 연간 만들어지는 영화는 500여편에 이른다. 반면 정상적인 상영기회를 갖는 영화는 거의 없다. 지원을 받지 않아도 450여편을 만들 수 있는 나라에서 배급망은 전혀 개척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영진위의 방향은 “제작, 배급, 상영, 관객 운동을 포함하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지원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밖에 없고, 시장의 역기능을 치유하거나 현재 한국영화 시장 규모로 감당하지 못하는 공적 사업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조준형, 앞의 글). 이것은 문화다양성 혹은 문화적 공공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면서 영화계의 이슈가 되었다.

03. 정책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지난해 발족한 제2기 영진위는 문화다양성과 공공영역 문제를 새로운 정책 방향으로 수용했다. “영화산업쪽에서는 영진위가 없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한 상황에서 이제 남는 것은 좁은 의미의 공공 영역과 문화적 영역”(김혜준)이라는 인식이 영진위 내부에서도 주요 기류인 것이다. 라는 자료는 이같은 정책 선회를 명시하면서 유통환경(TV방송과의 통합성, 예술영화 제작과 유통), 공공영역(독립영화, 퍼블릭 액세스 등 비주류 창작활동 지원, 미디어센터, 영상미디어 교육 지원), 제작기술과 해외 마케팅의 국제경쟁력, 지방자치단체 진흥사업과 연계 등을 사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지의 변화에 비해 현실의 변화 폭은 미미하다. 우선 영진위를 거쳐 나가는 예산의 대부분이 여전히 투자조합과 융자에 몰려 있다.

투자조합은 지금 큰 폭의 검토를 필요로 하는 궁지에 몰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에서는 문제의 원인으로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점, 투자에 대한 판단과 관리의 전문성 부재, 제작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을 꼽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우선손실충당’인데 쉽게 말해 투자된 여러 갈래의 돈 중에 영진위쪽 돈을 제일 먼저 회수함으로써 무슨 일이 있어도 원금을 까먹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것은 다른 투자자로 하여금 영진위 펀드를 꺼리게 하는 “창피한 일”(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여겨진다.

또한 영화계가 자체적으로 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을 만큼 산업화 단계에 도달했다는 인식도 영진위 펀드의 위상을 낮추는 요소다. 실제로 CJ엔터테인먼트는 80억원짜리 펀드를 2개 만들면서 영진위 펀드를 참여시키지 않았는데, “영진위가 펀드의 태동에는 기여했으나 이제는 크게 빛이 바랬다”(석동준 CJ엔터테인먼트 부장)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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