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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

“대충 서류를 꾸며 일본 하드코어 포르노를 대충 편집해 내놓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요. 요즘처럼 내 돈으로 작품 제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가라 서류’ 만들어 값싸게 수입해 팔아먹고 싶은 생각이 나라고 왜 들지 않겠어요.”

한 제작자의 하소연이다.

하소연과 클릭이 맺은 전속 계약은 3년. 1년 뒤에 계약이 끝난다. 이 대표는 “소연이를 더 데리고 있고 싶지만 그건 그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며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나은 기획사에서 그를 키워주기 바란다”고 했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이 대표는 에로배우를 보는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험악한지 터무니없는 사례가 한두 가지 아니라며 분개해했다. 그는 “소연이만큼 한눈 안 팔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배우는 이제껏 없었는데 방송쪽도, 영화쪽도 워낙 이쪽을 이상하게 보니까 배우에게 기회를 쥐어주기 어렵다”며 “국내가 영 여의치 않으면 일본쪽으로 건너간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고 했다. 공자관 감독도 “하소연 정도의 네임밸류에 전문 매니지먼트가 붙어주면 하리수 정도의 인기는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느냐”고 한다.

에로비디오 시장의 여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그 안에서 하소연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갈림길에 선 하소연, 그 자신도 그걸 잘 아는 듯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하겠다는 게 공식적인, 솔직한 희망이죠. 자연인으로든 공인으로든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예요. 2∼3년 지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어쨌든 제 이름을 다시 듣게 해드릴게요. 꼭.”

E p i l o g u e

도대체 어느 선까지 써야 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그들은 솔직했다. 하소연이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건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이라면 다 안다. “전 물만 먹어도 살찌는 스타일이에요. 어깨도 많이 벌어진 서구 체형이죠. 제니퍼 로페즈를 보니 미국에서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될 것 같던데.” “소연이가 60㎞ 마라톤을 끝내고 몸무게가 고작 200g 빠지는 거 보고 아찔했어요.” 하소연의 연기력에 대해 본인도, 감독도, 소속사 대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목소리톤도 낮고 발음도 고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연기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게 사실이에요.”

솔직히, 영화 안에서 예쁘게 꾸며진 캐릭터보다 영화 밖에서 무덤덤하게 구는 그의 실제가 더 매력적이었다. 그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타가 된다는 건 본인의 노력 이외에 사회의 이중적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변수가 필요해 보인다. ‘달라져야 한다’니? 이건 주문한다고 뚝딱 되는 게 아니다. 2∼3년 뒤의 미래에 대한 그의 단언이 꼭 실현되길 그저 바랄밖에. 꼭. 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에로영화 입문기

나는 어떻게 명작과의 씨름을 멈추고 에로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김형기/ 작가·시나리오 공작실 황금 물고기 공동 대표

내가 에로비디오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두울, 유치한 대사와 어설픈 연기. 셋, 한국영화의 흥행코드를 읽을 수 있다.

아니, 도대체 그 따위 우스운(?) 비디오물을 손쉽게 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유치한 대사와 어설픈 연기에 감흥을 받는다고? 거기다 한국영화의 시장까지 파악할 수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도, 믿고 싶지도 않은 횡설수설쯤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잠시 삼천포로 빠져보자. 한창의 열정과 영화로의 광기가 활화산마냥 솟구쳐오르던 20대 청춘 시절. 랭보인 줄 알았더니 뚱보일세라며 얼마간의 천재성과 오랜 동안의 평범함으로 글발을 날리던 때. 날마다 영화와 씨름을 하고 토론과 분석으로 밤을 홀딱 지새우길 밥 먹듯 하던 그때. 그 시절 보던 영화들은 시대가 꼽아내던 불후의 명작 아니면 오 컬트. 완벽한 미장센과 독특한 화면구성, 명쾌한 연출과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최고의 연기들. 그것이 내 영화란 씨앗의 자양분과 볕이 되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게 높을 대로 높아진 시선과 양식은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까맣게 잊고 만다. 어찌하다 보니 잊은 것이 아니라 기필코 잊어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버텨낼 수 있었다. 음으로 양으로야 나를 살찌우고 웃음짓게 했지만, 실제로 내 곯은 배를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장은 교과서나 익히 보아왔던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꿈과 낭만보다는 날마다 전투였다.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 요리조리 살피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낮은 포복을 실시하였으며, 전우를 방패삼아 적군의 눈을 속였다. 적의 정보를 깨내기 위해 첩보전에도 투입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서른을 맞고 보니 잔치는 이미 끝나 있었다. 내 생각한 방향은 상실하였고, 속도는 무뎌져 있었다. 뽀얗게 피어나는 전장의 연기 속에서 사람들은 승리의 나팔을 불었지만, 난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난 죽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 이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말인가….

삼천포로 가다가 전국 일주하겠다. 다시 돌아와서. 해서 난 지금 홀수처럼 산다. 또 뭔 소리야 하시는 분? 기다려봐~. 난 짝수처럼 살았다. 네개의 사과를 보면 하나둘셋넷 정확하게 헤아려 냉장 보관했다면 이제는 얼추 서너개하고는 옷섶으로 쓱쓱 닦아 먹는다. 누구는 대충대충 얼렁뚱땅 설렁설렁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으나, 한두개 차이난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라면야 그러고 말 일이다.

요는 이렇다. 하나, 인터넷을 통해 무방비로 살포되는 각종 에로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먹고 자고 사는 방이라도 한번쯤 훑어보게 된다.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을 거야 하고. 훔쳐보기의 욕망. 그것이 영화의 시초이며 근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취하는 방법은 온당해야 하며 합법적이어야 한다. 성인에 한해 보는 것으로써 합당한 절차와 심의를 거친 에로비디오는 그래서 정직하다.

두울, 한국영화에서의 입맞춤은 여전히 어색하다. 타액이 묻어나지도 않고, 혀를 돌리지도 않으며, 쩝쩝 소리도 미약하다. 키스 문화가 우리의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치라면 할말이야 없지만, 유명 배우나 스타급 연기자들은 도무지 그런 행위를 용납 못한다는 태도로 스크린에서 당당하다. 그러나 에로비디오의 배우들은 어설프고 유치하지만 적어도 내숭을 까지 않는다. 터진 살과 처진 배, 수북한 겨드랑이의 털, 야한 속옷과 허름한 여관방에서조차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또한, 유려한 문체의 미사여구들로 젓무덤을 핥는 대신 대사를 읊조리는 꽃미남들이나, 남자의 성기를 무는 대신 소극적인 자세로 아미를 찡그리던 여배우들만 보다가 에로배우들을 만나면 청량감마저 들곤 한다. 훈련된 연기자들의 정통드라마 속 연기보다 재연 프로그램의 재연전문 배우들이 더 리얼하고 살가운 때가 있는 것처럼 나름의 열악한 시스템 속에서 열심히 벗고 맹렬히 허리를 움직이며 신음을 토해내지 않던가.

셋, 이루고픈 꿈이 있다. 내 작품으로 비디오가게의 한면을 장식하는 동시에 에로비디오의 제목으로 패러디되는 것이다. 비디오 가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신작 에로비디오 제목을 보는 것인데, 그것은 고단한 일상의 유쾌한 풍자이며, 동시에 히트 작품의 판도를 읽는 열쇠이다. 성공하지 못한 작품은 패러디의 대상이 될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극장의 간판이 걸리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경배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에로비디오 제목의 퍼레이드를 즐겨보시라.

우리는 여전히 에로비디오 배우들과 감독들을 싸잡아 삼류 취급한다. 그것을 보는 이들 또한 저급하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은 인터넷의 여과없는 몰카들에 열중한다. 또한 여성성의 상품화니 양식없는 음란물이라며 수위의 조절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갈굼을 당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말이 아니다. 난 에로비디오의 옹호론자가 아니라 단순한 마니아일 뿐이다. 생각없는 현대인의 이중성일 뿐이라고? 죄 없으면 돌 던져라.

한번쯤 홀수 같은 시간을 갖고 싶다면 에로비디오 두어편을 빌리자. 단, 한손엔 비디오 리모컨을 쥐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라. 왜냐면, 에로비디오 러닝타임 90분을 다 보는 것은 여전히 미련 맞은 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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