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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의 공포,김지운 vs 윤종찬 [2]
김혜리 2003-06-20

이 영화에서 귀신의 역할은?

■ 윤종찬: 호러영화를 염두에 둔 감독 열 중에 여덟, 아홉은 제한된 공간을 생각할 거다. <소름>과 <장화, 홍련>은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닮았고 그것이 하나는 길거리의 아파트이고 하나는 인공적인 세트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개인이 처한 맥락 탓이다. 미국에 갔을 때 처음에는 건물이 옛날 양식에 사람들도 이목구비가 수려해서 아무 데나 카메라만 대면 영화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3년쯤 찍고 나니 내가 누군지, 왜 영어로 찍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고 서울 어딘가에서 내가 가장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다. 만약 지금껏 계속 거칠고 사실적인 공간에서만 찍었다면 반대가 됐을지도 모른다. <장화, 홍련>은 왜 하필 일본식 가옥 구조를 설정했나?

● 김지운: 뭔가 다른 사람, 다른 존재가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공포영화의 관습인 삐걱이는 소리도 살리고 싶었다. 또, 무엇인가 깨끗이 청산되지 않는 잔재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본식 목조건물의 내부를 서양식 가구로 채웠는데, 이것은 일본의 잔재와 미군정에서 이식된 문화가 어지럽게 섞인 우리 근현대사의 정신상태와 비슷하다.

■ 윤종찬: 우리나라 식당에서 돈가스를 시키면 김치가 곁들여져 나올 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웃음) 조화가 이상한데 맛은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이게 우리의 현재 상태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 김지운: 이질적 요소를 혼합할 때 충돌에서 발생하는 기괴한 효과도 염두에 두었다. 가구 하나 들여올 때마다 식탁의 결, 다리의 곡선, 카메라가 식탁 뒤로 갈 때 나오는 의자의 골을 생각하면서 텍스추어에 대해 꼼꼼히 접근했다. 설령 영화에 드러나지 않아도 아우라를 전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 윤종찬: 그래서 도입부에 두 자매가 저수지에 갈 때까지는 괜찮은데, 계모가 마중 나오고 집의 실내가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매우 불안했다. 엄마도 이상하고 집도 밸런스가 흐트러져 있는데, 그 불균형이 시종일관 흘러가니까 불안했다. 음악도 언급하고 싶다. 몹시 무서운 장면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멜로드라마에 나올 법한 음악이 흐른다. 흔히 공포영화에서는 무서울 때는 무서운 음악, 문열 때는 여는 소리, 닫을 때는 닫는 소리를 넣으며 음악을 사운드로 구사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음악은 심리적으로 사용해야 진가가 나온다. <장화, 홍련>의 현과 신시사이저는 이율배반적으로 사용됐지만 제구실을 한 것 같다. 이병우씨 음악을 들으며 부럽더라. <소름>할 때 시나리오를 들고 피아니스트 김광민씨를 만난 적이 있다. 참 점잖고 서정적인 분인데,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은 다음 시나리오를 주니까 제목 ‘소름’을 보고 ‘이걸 왜 내게?’ 하는 몹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라.

● 김지운: <장화, 홍련>의 연기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 윤종찬: 계모 역의 염정아가 뭔가에 사로잡혀서 쉴새없이 떠들어대고 동생의 아내가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주의 깊게 봤다. 어렵게 찍지 않았을까.

● 김지운: 날짜를 달리해서 세번 촬영을 했다. 그렇다고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고 첫번에 듣고 감이 안 오면 촬영을 아예 안 했다. 결국은 처음 것을 썼다. 그 장면에는 흐름이 틀어지는 몇번의 마디가 있다. 혼자 떠드는 부분의 긴장감이 기괴한 유머로 넘어가고, 냉랭해졌다가 발작으로 폭발한다. 그렇게 ‘공’을 받아서 상대에게 넘기는 대목을 염정아씨가 힘들어했다.

■ 윤종찬: 염정아라는 배우가 시종 분위기를 끌어가는데, 어울리는 역을 마침내 만난 것 같다. 앵글에 따라 달라 보이는 히스테리컬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극대화했으니까. 자매 임수정, 문근영의 연기도 좋았다. 다만 아버지는 편집에서 생략된 장면이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 김지운: 사실 아버지는 네명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역이다. 은수, 수미, 수연을 대할 때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지 곤혹스러운 인물이니까. 아버지의 정체는 뒷부분의 회상신에서 설명될 거라고 봤다. 자매의 생모는 병이 악화돼 집안 골방에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데 아버지는 젊은 여자 간병인과 연애하는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장을 보고 들어온다. 가벼워지고 싶은 건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며 시종일관 떠안은 무거움을 내심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경쾌하게 시장을 보고 들어올 때 그네를 타던 두딸과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 아버지라는 인물의 요체가 다 들어 있다. 내가 너무 가벼운 모습을 보였나? 상처를 줬을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만감이 교차되지만 결국 그냥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러나 이 집안의 죄는 모두가 나눠가지고 있다. 누구 때문에 잘못됐는지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면, 모든 가족이 얽혀 있는 것이다.

■ 윤종찬: 원작 <장화홍련전>에서는 계모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는데, 영화에서는 초반에 계모에게 따가운 시선이 몰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도 심상치 않고 언니도 뭔가 잘못이 있는 것 같다. 계모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도 아니고 장화, 홍련을 희생양으로 몰지도 않는다. 여러 가지 앵글로 존재를 바라보는 모던한 관점이다. 예컨대 영화 초입에 선착장에서 자매가 앉아 시간을 보낼 때 카메라가 물밑에서 제3의 시점으로 다리를 찍기에 소녀들이 집안에 들어갔을 때도 전지적 시점이 되겠구나 예상했는데 초반에는 영화가 두 자매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모든 것을 지켜보는 전지적 시점은 고려해보지 않았나?

● 김지운: 전지적 시점은 호러영화에 많이 쓰이는 시점이다. 하지만 나는 수미의 상태에 카메라 앵글이 다가가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분열의 순간이 온다. 한 줄기로 흘러가던 영화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순간 시점도 다중적으로 변하고 관객도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너무 설명할 수도 , 안 할 수도 없는

■ 윤종찬: <소름>이 나왔을 때 김명민이 마지막에 돌아본 것이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의 상태에 따라 살해한 여인의 환영일 수도 있고 엄마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아파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장화, 홍련>에는 싱크대 밑, 이불 속, 허공에 출몰하는 존재들이 나온다. 귀신들은 <장화, 홍련>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역시 장르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공포의 악센트인가, 아니면 이 장치를 통해 더 깊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나?

● 김지운: 아무리 개인적인 터치가 많아도 기본적으로 상업영화고 호러니까 귀신이 관객을 무섭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부정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아느냐. 살면서 지워버리고 싶은, 떨치고 싶은 기억이 귀신처럼 달라붙는다”라는 염정아의 대사다. 귀신은 이 말의 시각적 비유다. 끔찍한 기억이 등댓불처럼 휙 지나가며 멀어지는 듯하다가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 윤종찬: 계모가 품은 죄의식의 뿌리에는 누가 있나? 밀어낸 전 부인인가 아니면 의붓딸인가?

● 김지운: 귀신은 엄마의 형태로도 소녀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수미는 엄마가 그리운 반면 원망과 저주도 있었을 거라고 본다. 모든 사람이 공포의 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상대적으로 아버지는 둔감하다. 귀신도 강박을 가진 민감한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것이지 반성이 없으면 귀신도 안 나오는 게 아닐까?

■ 윤종찬: 민감한 사람은 “아악, 귀신이다!” 하는데, 무심한 사람은 “방금, 뭐야?” 그러는 거다. (웃음)

● 김지운: 사실 자각의 정도는 한 사람의 성격, 성별, 나이, 환경에 따라 다르다. <장화, 홍련>에는 10대 여자, 20대 초반 여자, 30대 여자, 40대 남자가 나오는데 저마다 현상을 감지하는 강도와 진정성이 다르다. 그러한 차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자매의 생리에 관한 모티브도 세상을 향해 한창 예민해지고 행복을 꿈꾸는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을 당하는 아이의 상태를 그리고 싶은 욕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 윤종찬: 분열의 구조를 가진 영화인 만큼, 뒤에 가서 앞을 설명해야 하는데 감독으로서는 흔히 말하는 ‘뒷각기’를 맞추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편집뿐 아니라 시나리오 쓸 때부터 논리적으로 다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은 없었나?

● 김지운: 이 장면이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냐 묻는 경우가 많았다. 좀더 명료하게 보는 주체를 가려주고 영악하게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논리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의사들이 수미의 케이스를 두고 토론하는 약간의 설명적 부분이 병원신에 들어 있었는데 사족 같아서 결국 걷어냈다. 넣다 뺐다를 너무 자주해 고임표 기사가 “이 신은 다시는 붙이지 않기로 맹세함”이라고 입력하기까지 했지만.

■ 윤종찬: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설명을 고스란히 넣어주면 맥이 빠지고 그렇다고 잘라내기 시작하면 영화에 참여한 사람 정도만 이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마 영화 5분의 4 지점부터는 김지운 감독의 갈등이 심했을 것 같다. 제작자는 좀더 쉽게 갔으면 하고 감독은 높은 요즘 관객 수준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생략하고 싶어하고.

● 김지운: 아버지가 폴라로이드와 캠코더로 수미를 찍어놓은 것을 보는 장면도 있었다. 그중에는 안방 침대의 이불에서 수미가 빠져나오는 순간도 있다. 아버지의 잠자리에서 딸이 나오는 모습 자체가 갖는 충격도 있었을 테지만, 그런 설명이 인물의 내면을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걷어냈다.

■ 윤종찬: 아버지가 수미에게 “방에 들어가도 되니?”라고 묻고 “안 돼”라는 대답을 듣는 장면이 부녀가 함께 누워 있는 장면을 순간 연상시키기도 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그 사회가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의 극단에 대해 덤덤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낮 시간대 주부들이 보는 토크쇼에서 하루는 남녀의 성기를 다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버지가 출근하면 어머니와, 밤에는 아버지와 섹스하는 이야기를 태연히 들려주고 CF로 넘어가더라. 시청자들은 과자나 집어먹으면서 그걸 심상하게 지켜볼 것 아닌가. 어떤 파장이 따를지는 몰라도, 문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예술이 다룰 수 있는 잠재의식의 폭도 넓어질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 김지운: <장화, 홍련>에는 동성애 코드, 근친애의 묘한 분위기와 섹슈얼리티가 조금씩 들어 있다.

■ 윤종찬: 아버지에 대한 수미의 엘렉트라콤플렉스는 근친상간적인 색깔이 있다 해도 엄마의 자리를 계모로부터 방어하려는 동기가 있으므로 미학적으로 영화적으로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같다. 아까 김 감독이 데이비드 린치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반칙왕>을 보고 이 사람이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하겠구나라고 연상하긴 어렵다. 그런데 콤플렉스와 한의 테마를 파고든 <장화, 홍련>에서는 그런 가능성이 보인다. 아날로그적인 음악이나 침침한 화면도 누아르의 속성과 닿아 있다. 김지운 감독은 지금까지 쌓은 신뢰로 <장화, 홍련>에서 자기 색깔로 영화를 만드는 숨통을 틔운 것 같다. <소름>이 내게 그런 힘을 주려면 베니스영화제에 가서 감독상을 받았거나 그랬어야 하는데(웃음), 작품이 미비해서 더 영화를 해야만 원하는 작품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 김지운: 이제 기자 시사도 끝났고 가까운 감독, 영화인을 초대한 시사, 일반 시사가 끝났는데, 전작에 비해 너무나 다채로운 반응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어떤 잡지에는 손가락이 모두 밑으로 내려져 있어서 인쇄가 잘못 됐나 하며 제작진이 같이 웃기도 했다. 아무튼 가장 듣고 싶었던 인상과 반응은 존경하거나 좋아하거나 같이 호흡하고 싶은 영화인들에게 들은 것 같다. 오늘도 이 자리에서 세밀히 영화를 봐주시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말문을 열어주셔서 고맙다.

■ 윤종찬: 외국의 출중한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 2003년 현재 이미 장르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코미디를 차용했건 호러를 차용했건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자신감만 있다면 코미디도 공포도 정통 드라마도 좋고 자유롭게 일탈하며 스펙트럼을 만들어갈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다.

● 김지운: <장화, 홍련>을 나의 과도기적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하드하게 나가는 방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소재에는 맞는 포장이라고 판단해 지금의 모습에 정착했다. <장화, 홍련>의 세계를 내가 처음 두드렸을 때의 원형, 작고 다치기 쉬운 심성과 정서를 완성된 영화 속에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흔들리기도 했다.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같은 걸 보면 우와 세다, 그런데 나는 이런 ‘꽃가라’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자문하기도 하고. (웃음)

■ 윤종찬: <살인의 추억>의 여파라면 내게도 있다. <살벌한 추억>이라는 시나리오의 제작을 추진 중이었는데 제목이 너무 비슷하다며 기획이 날아가고 말았다. (웃음) 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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