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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 본 3대 흥행장르 - 장르야 놀자 똥침놀이하며 [1]
이영진 2003-07-04

코미디 · 액션 · 멜로 - 장르별 캐릭터 가상대담 또는 흥행규칙에 딴죽 걸기

흥행을 주도하는 장르영화는 대개 비평적 가치가 의심스러운 영화들로 간주된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클리셰(상투구)들, 광기와 권위, 히스테릭한 과잉 혹은 위장된 순수의 세계. 드라마상의 갈등을 촉발하기 위해 사회체제의 흠집은 찾아내지만 종국에는 비논리적인 장치와 낭만적 약속으로 감추어버리는 은폐술. 그런 환상을 자신의 육체 안에 새겨넣느라 넋놓고 앉아 있는 관객. 바로 장르영화를 둘러싼 암울한 견해들이다.

10대∼20대 관객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영화 생산자들을 그들의 취향에 복속 시키고 있는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은, 성숙한 개인이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할 장소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슬라보예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상황의 진정한 공포를 알기 어렵게 만드는 ‘환상의 돌림병’이 널리 퍼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환상과 그 환상이 감추고 있는 실재계의 공포 사이의 관계가 겉보기보다는 훨씬 애매하다는 것이 또한 지젝을 포함한 대중문화 연구자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영화산업이 급팽창한 원인 중 하나는 청소년 하위 문화집단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가정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나이 때문에 ‘종속적인 계층’에 속하는 청소년들은 대중문화 시장을 자신들의 것으로 장악하면서 지배적인 규칙과 질서를 헝클어지게 만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장르영화들은 특정한 계층의 취향을 반영하는 하위문화이자 제 나름의 실천의 장이 된다. 물론 장르영화의 전복성을 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장르영화가 드러내는 어떤 취향을 무가치하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식의 동어반복만은 피해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란 도달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씨네21>의 젊은 기자들이 도전한 장르영화 비틀어 보기는 바로 이런 위험하고 달성되기 어려운 궤도 위에 놓여 있다. 이들은 멜로, 코믹, 액션 등 현재 왕성하게 수립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들이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몇 가지 신드롬에 장난스런 딴죽을 걸었다. 이러한 포착방식은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반복성에 대한 관찰과 포착은 해석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심술궂은 꼬마 도깨비처럼 장르영화들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가 툭 내뱉는 ‘소박한 독법’도 심도있는 해석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각종 평강공주와 온달이여, 영원할 거냐?여름철 공포 환란 대비, 코미디 정치인 긴급 회동

⊙ 참석자 명단

대통령 장인태(유동근)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3J 가문의 맏형. “호남 사투리를 표준어로!”라는 기치를 내건 지난 대선에서 엉성한 사투리 구사로 빈축을 샀으나 오히려 전국적으로는 고른 지지를 얻는 이변을 연출했고, 결국 대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장년층 유권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저서 <가문의 영광>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교육부 장관 김봉두(차승원)

남다른 가족애의 소유자. 병상의 아버지를 위해 촌지 수수를 행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한차례 수감됐으나 학부모들의 탄원으로 지난해 광복절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사회봉사 차원에서 오지 분교 근무를 자청한 점이 인정되어 최근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한국 정치를 먹여살리는 건 코미디 계보다”라는 효자론을 설파한 이론가이기도 하다. 저서 <선생 김봉두> <광복절 특사> 등.

5선 의원 이호창(송강호)

코미디 성향 의원들 중 타이밍은 으뜸. 국내 최초인 YMCA야구단의 간판타자로 활약한 그는 웃음을 쳐내는 데는 동물적인 직감의 소유자다. 한때 타이거마스크 가면 차림으로 프로레슬링을 양지로 끌어내기도 했다. 그래선지 스포츠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텁다.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올해 상반기 총선에서 낙승, 재기에 성공했다. 저서 <YMCA 야구단> <반칙왕> 등.

한폭소당 최고위원 김지훈(권상우)

얼마 전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믿을 만한 것이라곤 아버지의 재력밖에 없는 ‘쌩’양아치였으나, 동갑내기 과외 선생이었던 조강지처의 헌신적인 조력으로 개과천선했다고 전해진다. 김봉두 장관과 함께 모델 출신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온순한 양이지만, 바깥에서는 ‘눈 깔아!’를 연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린다. 저서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

(왼쪽부터) 대통령 장인태(유동근), 한폭소당 최고위원 김지훈(권상우), 5선 의원 이호창(송강호), 교육부 장관 김봉두(차승원)

신임 검찰총장 장은식(임창정)

주체못할 리비도를 한 여인에 대한 순정으로 승화한 입지전적 인물. 대학 시절, 말 못할 상처를 감싸주면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 그는 대학 재학시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이후 승승장구했다. 검찰총수의 자리에 오른 뒤 소감을 묻는 질문에 과거에 저질렀던 엽기적인 스캔들을 가감없이 공개할 만큼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 <색즉시공> 등.

386 출신 무소속 초선의원 박중필(류승범)

대학 신입생 때, 3개 중대의 전경을 모두 해치웠다는 일화가 아직까지 대학가에서 전설로 내려온다(그의 입학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80년대로 돌아가자, 라는 화두가 일자 기타교습소 운영을 그만두고 지난해부터 정치 일선에 나섰다. 유세 당시 헝클어진 머리로 다리를 떨며 기타를 치는 품행제로의 모습이 방송을 타게 되면서 크게 어필한 듯. 저서 <품행제로> 등.

충무대 대변인 공희지(장나라)

깜찍하고 코믹한 이미지로 광고계에서 각광을 받아왔다. 선거체제에 들어서면 유권자에게 스토킹을 가할 만큼 지독한 집념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유세에서도 원맨쇼에 가까운 개인기를 선보여 당 관계자들의 총애를 받았다. 얼마 전 내각 구성시 장관직을 맡을 것이라는 하마평도 돌았으나 경륜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반대 여론에 밀려 낙마했다. 저서 <오 해피데이>(외 없음).

(왼쪽부터) 신임 검찰총장 장은식(임창정), 386 무소속 초선의원 박중필(류승범), 충무대 대변인 공희지(장나라)

재계 인사들과 오찬 회동을 끝낸 직후였다. “성님, 큰일나부렀소.” 보좌진인 두 동생이 헐레벌떡 충무대(忠無帶)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오후에 종친들과 알까기나 하며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던 3J가의 맏형인 장인태 대통령은 순간 눈을 감았다. 아우들의 호들갑은 곧 총선을 코앞에 두고서 열린 이번 보궐선거에서 코미디 성향의 강승완 후보가 장화 &홍련이라는 무명의 정치 신인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증언이었기에.

취임 이후 처음 치른 이번 보궐선거에서의 패배.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기승을 부리는 공포자유당을 견제하기 위해 아예 호러퀸이라는 별명의 공포자유당 소속 의원까지 끌어들여 강 의원의 역전 앞 유세에 지지 연사로 내보냈던 그였기에 충격은 컸다. 지난해 말 대선 직후, 조속한 시일 내에 충무대가 전면적인 정계 개편을 진두지휘하여 코미디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일부 소장파 의원들의 주장이 옳았던 것일까.

하지만 “코미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자신의 소신을 맘껏 펼칠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코미디 독식론”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론과 당내 동향을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던 그는, 그러나 공포자유당의 선제 공격에 맥없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는 여름 성수기 총선 시장에서 공포자유당의 행보에 상당한 힘을 실어줄 것이 분명했다. 늦은 오후 다급히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여야 코미디 성향 의원들과 대통령이 긴급 모임을 가진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의 반영이었다.

1신: 6월X일, 18시05분

사투리를 둘러싼 여야 격론

장인태/ 그 뭇이냐. 그니까. 나가, 이렇게 황당한 기분은 처음이요. 7년 전에 여수 오동도에서 맴놓고 큰일보다가 봉변당했을 때 빼놓으믄.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불었는지 몰것소. ‘첫사랑 사수를 위한 궐기대회’ 개최도 코앞에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헐지 말씀 좀 해보쑈. (일동 싸늘한 침묵)

장인태/ 그러지들 말고. 입좀 떼보라니까. 김 위원도 간만이요.

김지훈/ (담배를 꼬나물며) 씨X, 눈깔어. 집계해봤더니만 너, 510만이라며? 나도 510만이거든. 우리, 말놓자. (김 위원의 돌출 행위에 좌중 냉기가 흐른다. 장씨 가문의 두 형제, “센터부터 깔 태세로” 나서지만 장인태 눈을 감고서 제지한다. 난 선배고 넌 후배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참는다)

장인태/ 시방 너도 늙고 나도 늙는다 이거제? 좋을 대로 혀.

김지훈/ 사면초가가 뭔지 알아? 다구리 틀 때 사방이 적이라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해. 한놈만 죽어라 패면 된다고. 패기 전에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을 세워야지.

장인태/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알아묵기 쉽게 좀.

김지훈/ 나야 강남 8학군에서 태어난 죄로 사투리를 못하지만 왜 그 잘난 사투리를 팍팍 안 쓴 거야? 어느 지구당에선 다음 총선을 위해 삼국시대 배경으로 사투리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더만.

장인태/ 언론에서 조폭 출신이라고 할까봐 슬쩍 조연쪽에 간지만 줬지.

김지훈/ 언제 별점이나 레비에우(review로 추정됨)가 우리한테 후한 거 봤어?

장인태/ 그게 쪼까 맘이 걸려 나도 이번 궐기대회에선 사투리로 거품 물어부렀어.

김지훈/ 아예 쓰질 말던가. 맘먹었으면 세치 혀로 쌩쑈를 보여줘야지. 정치라는게 쇼 아냐. 사투리 안 되면 욕설이라도 넣던가.

이호창/ 사투리 쓰고, 욕 쓴다고 표 떨어지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거나 다름없소. (조금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김지훈/ X라 답답하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는 “아가리 닥쳐부러라∼잉” 하면서 왜 역전에 살기 위해선 안 되냐 이거지.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다 구라야. 김봉두는 지가 못하니까 강연회 가면 애들한테라도 강원도 사투리시키잖아.

김봉두/ (지난번 국무회의 때 떠들고 장난친 사람들 명단에 김 위원 이름을 추가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란다) 김봉두가 누구야, 엉. 도대체 어딜 갔어?

김지훈/ 주위에 삽질하는 놈이 널렸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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