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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3]
박은영 2003-07-25

기괴한 익살의 외투를 입은 모범생

<수사반장> 사이비교주에서 <살인의 추억> 형사반장까지, 변희봉

I’m back_ 보일러 도는 아파트 지하실로

마포의 한 호텔 커피숍에 변희봉씨와 봉준호 감독이 마주 앉았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주십사 부탁해오는 젊은 감독의 프로포즈를, 변희봉씨는 두어 차례 밀쳐냈었다. 그는 십여년 전 미련없이 충무로를 떠났고,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더욱이 봉 감독이 제안한 역할은, 맘에 들지도 않았다. “남의 개 잡아다 먹는 경비원 역할이라니, 내가 여태 안 하다가 이거 하자고 영화 하겠냐구요.” 그런데 봉 감독의 구애는 집요했다. <수사반장>에서 변희봉씨가 연기한 ‘사이비교주’ 편을 줄줄 읊어내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약한 마음에 내린 이 결정이 자신의 앞길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당시 변희봉씨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플란다스의 개>에 경비원으로 출연한 변희봉씨는 보일러 김씨에 관한 아파트 괴담을 8분가량의 롱테이크로 들려줬다. 동그랗게 치뜬 눈가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저음의 울림 깊은 목소리가 “보일러 돈다이∼잉”을 반복할 때의 그 기괴한 공포와 익살. 이후로도 영화 속의 변희봉씨는 무난하거나 평범한 법이 없었다. 크고 작은 탐욕에 솔직한 그는, 엽기적이거나 허술했다. 무림 최고수가 되는 비법을 전하는 비서를 차지하기 위해 학생을 모함하는 교감(<화산고>), 무기력하고 관성적인 수사로 일관하다 일자리를 잃는 형사 반장(<살인의 추억>), 괴팍하고 속물적인 겉모습에 아이처럼 천진한 심성을 감춘 산골 노인(<선생 김봉두>)은, 변희봉씨의 이미지와 카리스마에 기댄 역할들. 적어도 영화 속에서 변희봉씨는 그 연배의 여느 배우들과 달리 누군가의 아버지거나 할아버지가 아니다. 평범한 아버지로 머물기엔, 개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즈음의 젊은 감독과 관객을 사로잡는, 변희봉씨의 힘이다.

Once Upon A Time_ 브라운관에 사는 괴짜 악당

일찍이 변희봉씨가 TV에서 악당이나 괴짜 캐릭터 전담 ‘개성파 조연’으로 자리잡게 된 데는 간단치 않은 곡절이 있다. “역할을 안 주거든요. 많이 안 나오니까, 어떻게 하면 다르게 보일까, 튀어 보일까, 그것만 고민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지요.” <수사반장> 의 간첩, 도둑, 사이비교주, 사기꾼 등 단골 악당으로 어필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고민과 공들인 “설정”의 결과다. 때로 변희봉씨의 의욕은 엉뚱한 오해를 낳기도 했다. <안국동 아씨>의 점쟁이 역할을 맡고는 수십명의 역술인을 만나고도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촬영 전날 꿈에 등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영감을 받아, 이승만 버전의 점쟁이를 선보였고, 이 연기는 장안의 화제가 됐고 유행이 됐다. “문공부랑 교육부에서 압력을 넣었던가 봐요. 드라마가 인기니까, 조기 종영은 못하고, 나만 뺍디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스스로를 ‘시골 촌놈’이라고 말하는 변희봉씨에게 방송은 막연히 선망하는 일이었다. 워낙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창피할 정도로” 예민하고 기복 심한 성격이라, 대물림된 땅에서 농사지으라는 선친의 뜻을 따를 수가 없었다. MBC 성우와 극단 산하의 단원을 거쳐, TV드라마에서 연기를 시작한 것이 1970년. 그러나 긴 기다림 끝에 받아든 배역은 고작 대사 두세 마디의 단역. 인력거 끌고 민속촌을 몇 바퀴씩 돌기만 한 적도 있었다. “정극은 그만두고 코미디로 가라”는 윗선의 고압적인 지시에 맘 상해서, 낙향해 농사를 지어볼까 하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연기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달라져 있었다. “신념이 생겼달까요.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지요.”

변희봉씨는 그뒤로도 한동안 수사물이나 사극에서 개성 강한 주변 역할들을 주로 맡았다. 물론 그 개성이란, 상당 부분 그가 채워넣은 것이었다. 그중 <이조 5백년> <안국동 아씨> <시장 사람들>은 지금도 아끼는 작품들. “배우를 안 했더라면, 아마 죽었거나 형무소에 갔을 겁니다. 정말이에요. 원래 불의를 못 보는데다 성격이 불같아서 사고 많이 쳤을 겁니다. 배우를 했기 때문에 성격이 개조된 거죠. 일이 잘 안 풀려서 고통받았던 것도, 내게 다 득이 됐다고 봐요. 난 종교는 없지만서도, 내게 이 길을 가게 해준 조물주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Show must go on_ 로맨틱하고 평범하게

변희봉씨는 요즘 부쩍 주름살이 늘었다. 표정 관리가 안 돼서다. “손님이 많이 든다고 하니, 기분은 좋습니다. 허허허.” 그의 최근작 <국화꽃향기> <선생 김봉두> <살인의 추억>은 모두 상반기 흥행작이다. 그러나 변희봉씨를 웃게 만드는 건 그 ‘숫자’가 아니다. TV의 역할 이미지를 그대로 베끼려 들고, 조단역 연기자에 대한 대우도 좋지 않아, 한때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충무로에서 뜻밖에도 “연기의 맛을 느끼고, 인생을 다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어딜 가든, 무얼 하든 웃어 보인다. 주름살이 늘거나 말거나.

“아무리 나이 먹었어도, 배울 건 배워야 돼요. 영화 하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러면서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생겼달까?” 추운 날씨로 악명 높은 영월과 제천에서 촬영하면서도 인상 한번 구기지 않던 차승원,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한신만 내리 반복해 찍는 데도 싫은 내색이 없던 송강호를 보면서, 변희봉씨도 자연히 분발하게 되더라는 것. 젊어지고 밝아진 현장의 에너지를, 그는 벌써 그리워하고 있다. 최근 몇권의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맘에 흡족했던 작품쪽에서 “당최 연락이 없어서” 서운하단다.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은 뭐가 됐든 “의리상” 출연할 생각이다. “그런데 나한테 꼭 맞게 써줄까봐, 그게 걱정이거든. 그러면 내가 너무 게을러지지 않겠나 싶어서.” 모처럼 계획했던 여행을 새 드라마(MBC ) 준비 때문에 취소해놓고도, 재킷 안주머니에 손수 베껴쓴 16절지 대본 뭉치를 품고 다니면서도, 그는 여전히 ‘근무 태만’을 경계하고 염려한다.

변희봉씨는 요즘 TV에서 어른들이 사라지는 게 걱정스럽다. “젊은 사람들한테 가장 영향력 있는 건 미디어란 말입니다. 난 미디어를 통한 계몽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영화가 다양한 세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이에 맞춰, 변희봉씨 자신도 서서히 ‘다른 모습’을 찾고 있고 또 선보이고 있다. 최근엔 ‘멜로’에 도전했다. 안사돈과 사랑에 빠지는 아버지(베스트극장 <아빠 로미오 엄마 줄리엣>), 문학과 결혼한 몸으로 다방 마담과 늦바람나는 노작가(<불어라 봄바람>)로, 로맨틱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앞으로 그가 노리는 역할은, 평범한, 자애로운 아버지. “좋은 아버지, 모든 걸 다 갖춘 아버지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서양영화 보면, 가족 이야기 참 잘 다룬 것들 많지 않습니까. 그런 걸 우리가 왜 못하고 있나 싶어요. 그런 이야기 속에서 좋은 역할 하나 해보고 싶습니다. 왜 그쪽으로는 안 팔릴까나.” 글 박은영 cinepark@hani.co.kr·사진 정진환

필 모 그 라 피 (Filmopraphy)

1942년 생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 <화산고>(2001) <국화꽃향기> <선생 김봉두> <살인의 추억> <불어라 봄바람>(2003)

TV <수사반장> <안국동 아씨> <시장 사람들> <찬란한 여명> <이조 5백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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