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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감독들 [1]
김혜리 2003-07-25

믿지마라 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다부천에서 만난 괴짜감독 3인 - 고드프리 레지오, 그렉 박, 빈센조 나탈리

해마다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세상에 거리낄 것이라곤 없다는 표정을 한 용감하고 도발적인 영화들이 밤새워 요란한 카니발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스크린 주변에서 생수통이 든 가방을 메고 내성적인 눈빛으로 서성이는 수줍은 사람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 영화 감독님이세요?”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갑자기 중세 판타지 속의 용처럼 불을 뿜으며 열정을 나누려 할 것이다. 우리는 올해 부천에서 세명의 ‘괴짜’ 감독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세 감독을 감히 ‘괴짜’라고 부르는 것은 영화와 더불어 생존하는 그들의 방식이 독특하고 절묘하거나 기념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직자이기도 한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에게 영화는 성산에서 내려온 말씀이다. ‘천사 같은’ 후원자와 동료의 힘을 모아 만들어진 그의 <카시 삼부작>은 인류와 문명을 향해 던지는 예언과 계고이며 레지오 감독은 그것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영화제를 여행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찍은 네개의 단편을 긴 호흡과 주제의식으로 엮어 알뜰한 장편 데뷔작을 완성한 촉망받는 한국계 미국 인디 감독 그렉 박은 영화를 쓰고 찍고 연기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만능 플레이어다. <큐브>로 이름을 알린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이번에도 750만달러라는 저렴한 예산이 믿어지지 않는 웰 메이드 SF스릴러 <싸이퍼>로 할리우드의 윤택한 프로젝트들을 민망하게 한다. 세 감독은 우리에게 묻는다. 영화를 향한 당신의 꿈은 얼마나 간절하고 구체적입니까? 김혜리 vermeer@hani.co.kr

<로봇 이야기> 감독 그렉 박

인디영화의 올 라운드 플레이어

무심코 받아든 감독의 배낭은 팔이 휘청하게 무거웠다. 부천에서 마주칠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에게 나눠줄 보도자료와 CD가 그득해서였다. 인터뷰 전날, 부천 출품작 <로봇 이야기> 상영관을 찾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렉 박 감독은 “나와 내 영화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전자메일 주소를 써달라”고 객석 전체에 수첩과 펜을 돌리고 있었다. 아직 학생 티가 가시지 않은 그렉 박(34) 감독의 안경과 턱수염으로 가려진 마른 얼굴은 인적 드문 헌 책방 구석에 가면 완벽한 그림을 이룰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다. 알고보면 그렉 박 감독은 타인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일에 평생 숙련된 ‘선수’다. 시작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했다. 그는 백인 인구가 압도적인 텍사스 댈러스의 거리에서 눈에 번쩍 띄는 한국계 미국인 꼬마였다. “댈러스시 전화번호부에서 ‘팍’이라는 성은 우리 가족뿐이었어요.” 어린아이들은 ‘이상하게’ 생긴 이웃의 소년을 보면 눈꼬리를 잡아당기며 놀리곤 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아랍계인 줄 아는 사람도 있고 히스패닉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구 옆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웃음)” 그렉 박의 부모는 아들에게 너는 아시아인 아버지와 유럽인 어머니를 두었으니 ‘유라시안’이며 그것은 변명할 문제가 아니라 자랑거리라고 가르쳤고, 소년은 공부도 클럽활동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성적인 학생이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실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실패하면 사람들이 즉각 갖다붙일 핑계가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왜 싸웠지?

그렉 박은 9살 때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믿으며 줄곧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고교 시절까지 연극, 사진, 그림 등 손이 닿는 모든 예술의 맛을 보았다. 하지만 영화의 순서가 오기까지는 약간의 우회가 필요했다.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뜻도 신념도 일치하는 앤 리처드 텍사스 주지사를 위해 1년간 일하던 그렉 박은 정체 모를 결핍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얼마 뒤 ‘더 좋은 정치인을 위해’라는 목표를 걸고 역사학을 공부하러 간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생영화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화는 논리적인 답이었다. 스토리텔링, 그림, 연기, 사진의 종합판이었으며 심지어 정치학도 포괄하고 있었다. “말로 누군가의 입장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편견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니까요. 인종차별주의자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정서적 충격을 받고서야 생각을 바꾸는 예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영화는 대단히 정서적이고 파워풀한 매체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이의 눈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시선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 안에 희미하게 머무릅니다.” 영화는 성취동기가 강한 청년에게 모든 차원에서 기꺼운 도전이었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예술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손을 써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능력까지.

뉴욕대 영화제작과정 졸업작품으로 제출된 그렉 박 감독의 첫 번째 영화제목은 <파이팅 그랜드파>(Fighting Grandpa). 한국에서 목사로 일하다가 1938년 하와이로 이주한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듬는 다큐멘터리다. 어째서 할아버지를 찾지 않고 할아버지와 싸우는 영화를 생각했을까라는 궁금증은 오해였다. 싸움의 주체는 그렉 박이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평생 싸워야했던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목사였던 할아버지는 마흔에 처자식과 교회를 두고 갑자기 독자적으로 이민을 결심했고 결행했습니다. 그리고 10년간 가족을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 혼자 전쟁처럼 일했어요. 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요? 할아버지는 가족과도 평생 싸웠습니다. 아빠와도 할머니와 도 늘 다투셨고 가족 중 누구도 그분을 잘 알지 못했어요.” 영화의 마무리를 위해 고심하고 있을 무렵 그는 할아버지의 유품에서 열쇠를 발견했다. 그것은 미국의 신문, 잡지를 오려낸 종잇조각을 모은 낡은 스크랩북이었다. 색바랜 종이들에는 하나같이 간호사의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간호사였다.

웹=개봉관+요새+교두보

<파이팅 그랜드파>는 스무개 남짓한 상을 받았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곤 아이디어와 디지털 촬영편집 기기뿐인 독립영화 감독의 길을 택한 손자에게도 할아버지 못지않은 전쟁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렉 박은 총명한 전략가다. 인터넷영화를 제공하는 사이트 www.atomfilms.com으로 가면 그렉 박 감독의 최대 히트작(!) <아마추어 엑스타시>와 <아시안 프라이드 포르노>가 있다. 이미지에 관한 스테레오 타입을 풍자한 2편의 짧은 코미디가 받은 각광에 대한 감독의 설명은 어느 기업체의 기획실 브리핑만큼이나 명료하다. “네티즌들의 집중력은 길지 않다. 인터넷영화는 3분 미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인터넷을 쓸 때 잠재적인 제1 목표는 재미이기에 코미디와 성적인 뉘앙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음향과 이미지의 흐름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비주얼 조크와 버벌 조크가 동시에 흘러가도록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선선히 덧붙인다. “물론 제목에 선정적인 단어가 있고, A로 시작하기 때문에 검색 리스트 위에 나온 덕도 크죠.” 정치학 배운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감탄을 표했더니 그렉 박 감독은 정색을 한다. “정치학은 따지고 보면 대중의 주의를 끌고 메시지를 퍼뜨리는 방식에 대한 학문입니다. 관객이 영화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까를 궁리하는 마케팅의 고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지요.”

웹은 ‘DIY’ 감독이자 마케팅 전략가인 그렉 박 감독에게 소중한 개봉관일 뿐 아니라 요새이자 교두보다. 현재 그가 에디터 노릇을 하고 있는 사이트는 grekpak.com과 asianamericanfilm.com, filmhelp.com 등 세개에 달한다.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 닷컴은 아시아계 미국 감독, 작가, 배우가 창작한 영화를 중심으로 오우삼 감독이나 루시 리우 영화 같은 주류영화까지 포괄하는 커뮤니티이고, 필름헬프 닷컴은 막 걸음마를 떼는 감독들이 자신이 겪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디지털 편집기술부터 인맥 구축법까지 그렉 박 감독의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이웃돕기’ 사이트다. 그의 머릿속에서 웹은 일방적인 프로모션의 창구가 아니라 선한 카르마를 전파하는 그물이다. 그렉 박 감독은 궁극적인 목표가 장편영화인 이상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적 수순이었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공평하게 암시한다. “아니면 내가 분수 넘치게 주목받는 걸 좋아해서인지도 모르지요.”

할리우드? 필요하지!

과연 올해 인디펜던트 영화 전문지 <필름메이커> 여름호는 그를 ‘주목할 만한 감독 25인’의 한명으로 지목했다. 그렉 박 감독에게는 서랍 밖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며 아우성치는 시나리오와 스케치가 넘친다. 아직 꿈속에만 존재하는 그의 새 영화는 <리오 치노>라는 제목의 웨스턴. 패러디가 아니라 지미 스튜어트가 나오는 1960년대풍의 <와일드 번치> 같은 영화다. 그렉 박은 “할리우드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찍고 싶은 영화 중 감독으로서 미학적 성취를 욕심내는 작품을 위해서는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할리우드를 경멸하기는 쉽지만 그곳에는 존경할 만한 세련된 장인정신이 있습니다. 나는 웰 메이드 영화를 존경하며 감독으로서 발전하고 싶어요. <로봇 이야기>는 디지털 비디오로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서부극에는 깊이감과 콘트라스트, 유기적인 공간이 필요하지요. 35mm 필름과 좋은 프로덕션디자인을 뒷받침할 예산만이 그것을 줄 수 있어요.”

<로봇 이야기>의 자체 배급을 시도한다는 고생스런 계획을 설명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없다. “<조이 럭 클럽> 같은 모델의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는 동양계 관객의 틈새시장에 호소했지만 <로봇 이야기>는 그 시장과 함께 SF 장르의 팬, 예술전용관의 관객까지 세개의 시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주인공 중 2명이 50대인 만큼 노년층 관객에게도 다가갈 수 있어요. 실제로 뉴욕 주의 햄튼영화제 같은 곳에서 거의 100% 백인으로 이뤄진 관객도 영화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6개 정도의 도시에서 개봉해 확대하고 그로 인해 높아진 가치를 갖고 DVD와 TV, 해외 세일즈에서 유리한 계약기회를 갖는 거예요.” 그렉 박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니체를 인용했다. 그것은 1시간 남짓한 그의 이야기와 너무 잘 어울려서 인용구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감독은 무거운 배낭을 가뿐히 둘러메고 일어섰다. 자신의 조그만 영화사에 붙인 이름 ‘팩맨’처럼, 길 위에 놓인 에너지원을 흡수하고 장애물을 무찌르며 미로를 돌파해나갈 기세로. 글 김혜리 vermeer@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부천에 온 그의 영화 <로봇 이야기>사랑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경쟁부문 부천 초이스에 출품된 <로봇 이야기>는 네개의 단편을 조립한 소박한 SF 앤솔로지다. 여기에 태권브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로봇은 출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과 죽음, 인간관계를 명상하게 하는 드라마들이 로봇 혹은 인공지능을 매개로 이어진다. 첫 번째 이야기 <로봇 베이비>는 아기없는 커플이 입양 자격을 심사받기 위해 로봇 아기를 돌본다는 ‘다마고치’식 우화, 두 번째 이야기 <로봇 수리하기>는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의 물건을 정리하다 아들의 로봇 컬렉션을 완벽하게 만드는 일에 집착해 절도(?)까지 불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그렉 박 감독이 사무용 안드로이드로 직접 분한다. 사무기기 취급을 받는 인간형 로봇이 건너편 빌딩의 여성 로봇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기억과 지능을 시스템에 업로드해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죽음의 형식을 고민하는 늙은 조각가의 말년을 담았다. 단편 모음이지만 생의 사계절을 담은 리듬이 전체를 관통한다. <로봇 이야기>의 세계는 영어를 쓰는 동양인들로 가득하다. 그중 5명의 캐릭터가 감독과 마찬가지로 혼혈이다. 마약상이나 창녀, 식료품점 주인, 업무가 애매한 과학자나 구색용 배역이 아닌 온전한 역할을 동양계 배우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아시안-아메리칸필름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감독은 말한다.

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감독들 [1]

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감독들 [2]

부천영화제의 판타스틱 감독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