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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2]
김현정 2003-08-14

유머감각이 업그레이드됐군 로드니 스키너

원작 | 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 김성 그림 | 가나출판사 펴냄(아동용)

H.G. 웰스는 과학기술이 구세주처럼 군림하던 시대, 그것이 불러올 그늘을 외면하지 않았던 보기 드문 19세기인이었다. <타임머신> <닥터 모로의 섬> <우주전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암울한 테크놀로지의 왕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투명인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빛의 굴절과 산란을 기본으로 삼은, 작가로서는 꽤 정교한 이론을 들이댄 <투명인간>은 호러소설에 가까운 묘사를 통해 이해관계가 중심을 차지하는 과학기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타임머신>에서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제시하기도 했던 웰스는 한 천재과학자의 결실을 섬뜩한 욕망의 과일이라고 단정짓는다.

영국의 어느 시골여관, 붕대와 코트로 온몸을 감싼 손님이 방을 얻는다. 그는 비뚤어진 집착과 욕심을 동기삼아 육체를 투명하게 바꾸는 약을 발명한 과학자 글리핀이었다. 글리핀은 투명한 육체를 이용해 돈을 훔치고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소동을 일으키다가 옛 동료 캠프를 찾아간다. 그는 원래의 육체를 되찾고 싶어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몸을 원래로 돌이키는 약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투명인간>은 육체가 지닌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는 섣부른 욕망에 경종을 울릴 소설이다. 노란 눈동자만 남은 채 투명하게 변해버린 고양이는 글리핀의 실험이 빚어낸 비극적인 산물. 웰스는 기술에 몸을 실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글리핀을 벌함으로써 한 세기를 뛰어넘는 시야를 지닌 작가로 남을 수 있었다.

영화 | 이름을 로드니 스키너로 바꾸고, 좀더 짓궂은 투명인간으로 거듭났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때문인지, 악한지 선한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캐릭터. 그가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성적 장난을 치는 대목에선 투명인간이 욕실에 잠입하는 <할로우맨>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이드를 헐크로 파워업 지킬과 하이드

원작 |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 R.L. 스티븐슨 지음 | 이호규 옮김 | 혜원출판사 펴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하이드가 “내 안에 있는, 실현되어서는 안 될, 두려운 무엇”이라고 표현했다. 편견을 가진 소설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스티븐슨의 악몽에서 태어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폐병 환자였던 스티븐슨은 열에 시달리면서 두 가지 인격을 가진 한 남자에 관한 꿈을 꾸었고, 거기에 사회적인 함의를 더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썼다. <보물섬>처럼 호쾌한 모험소설과 함께 음울한 <자살클럽>의 작가이기도 했던 스티븐슨은, 이 소설이 당대에 드러난 악(惡)을 포착했을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위선도 폭로했다고 믿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E.T.A 호프만의 <악마의 묘약>, 에드거 앨런 포의 <윌리엄 윌슨> 등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다. 명망 높은 의사 지킬은 반듯한 외모와 조건에도 불구하고 방종하게 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만 떼어내 분신을 만들 수 있다면, 더이상 모순된 욕구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고 약을 조제한다. 그리고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게 될 하이드씨가 태어난다. 지킬은 처음엔 만족을 느끼지만, 차츰 하이드가 지킬을 압도하게 되면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발표됐을 때, <더 타임스>는 “판타지소설을 완벽하게 연구한 결과”라고 칭송했고, 독자들은 <보물섬>보다도 더 이 소설에 열광했다. 괴담이 가지는 불변의 매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 스티븐슨과 함께 당대의 독자들 역시 이 소설에서 불안한 시대와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안한 미래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를 “몸집 크고 풍채 좋은” 신사로, 하이드씨를 “조그만 체구와 쉬어빠진 목소리를 가진” 사내로 묘사했다. 그러나 영화 속의 하이드는 1/2 헐크에 가깝다. 게다가 이 하이드는 나중에 개과천선하기까지 한다.

여전히 천진하고 귀엽다 톰 소여

원작 | 톰 소여의 모험 | 마크 트웨인 지음 | 현준만 옮김 | 미래사 펴냄

톰 소여는 어린아이들의 이상형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부유하지도 않은 고아지만, 톰 소여는 욕심만 날 뿐 감히 실행할 수 없는 온갖 사고를 겁도 없이 저지르곤 했다. 게다가 톰이 사는 곳은 길고도 깊은 미시시피 강이 흐르고, 무인도엔 온갖 과일이 열리는, 따뜻한 미국 남부. 모험거리가 널려 있는 작은 마을의 소년 톰 소여는 어른들의 꾸중을 피할 수 있는 갖가지 기술을 전수했고, 그 덕분에 누구에게나 어렴풋한 어린 시절 기억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캐릭터가 됐다. 마크 트웨인은 <아더 왕과 양키> <왕자와 거지>를 써서 끝없는 공상을 펼치게 만들었지만, 불멸의 캐릭터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을 내놓은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일 것이다.

동생 시드와 함께 폴리 이모 집에 얹혀사는 소년 톰 소여. 수업 빠지고 물장난을 치고,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라면 잔머리를 굴려 빠져나가는 톰은 같은 마을 소녀 베키를 좋아한다. 톰은 가출해서 무인도에 살기도 하고, 포악한 인디언 조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미로 같은 동굴 속에 갇히기도 하는 등 작은 마을에선 혼자 겪기 힘든 온갖 모험을 거친다. 마침내 톰은 친한 친구인 허클베리 핀과 함께 보물을 찾아내 부자가 된다. 톰이 미역 감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셔츠에서 칼라를 떼냈다가 다시 꿰매는 트릭은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속편에 해당하는 <톰 소여의 아프리카 모험>도 번역돼 있다.

영화 | 잘 컸다. <젠틀맨리그>의 톰 소여는 미국 정부가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는 유럽에 파견할 정도로 믿음직한 스파이. 천진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젠틀맨리그’에서 유일하게 티없는 젊은이다. 앨런 쿼터메인은 미국식의 무차별 사격술을 구사하는 톰에게 격조있는 유럽의 기술을 가르친다.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나 제임스 모리어티

원작 | <셜록 홈즈 전집 6: 셜록 홈즈의 회상록> | 아서 코난 도일 지음 |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펴냄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는 60편에 달하는 셜록 홈스 시리즈 중 단 두편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천재적인 수학자이고, 영국 전역의 범죄를 지휘하는 배후 인물인 그는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어왔다. 장편 <공포의 계곡>에선 언급만 될 뿐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단편 <마지막 사건>뿐이었는데도. 그 원인은 아마도 모리어티 교수가 홈스와 대적할 만한 유일한 악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홈스를 골탕먹인 적수 아이린과 달리 유머감각도 없고, 비슷한 지능을 가진 홈스처럼 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모리어티는 회의나 죄의식에 흔들리지 않는 악(惡) 그 자체다.

<공포의 계곡>에서 “나이든 성직자”처럼 온화한 모습으로 간접묘사된 모리어티는, <마지막 사건>에선 음침한 삽화로 진정한 면모를 드러낸다. 모리어티의 조직을 파괴하기 위한 공작 막바지에 이른 홈스는 그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오랜 친구 왓슨과 함께 유럽으로 떠난다. 홈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지를 발휘하지만, 가파른 산길에서 모리어티와 마주치고, 그와 격투를 벌이다 벼랑 아래로 추락한다. 헌신적인 의사이자 뛰어난 SF 작가이기도 했던 아서 코난 도일은 홈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이 단편을 썼다. 그 때문에 다른 소설보다 서스펜스가 약하고, 설명으로 채워지는 부분이 많은 편. 1893년 12월 <마지막 사건>이 발표됐을 때, 이 소설이 실린 잡지 <스트랜드>는 실망한 정기구독자 2만명을 잃었다. 결국 코난 도일은 단편 <빈집의 모험>에서 홈스를 되살려낼 수밖에 없었다.

영화 | 소설을 읽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젊지만 훨씬 품위없다. 거인에 가까운 홈스를 물리쳤을 정도로 강건해 보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모리어티라는 이름을 놓칠 정도로, 본명에 대한 애착이 없다.

김현정 parady@hani.co.kr

▶<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1]

▶<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