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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세네프로! 가자, 영화의 미래로! [3]
문석 2003-08-14

정원에서 조난당하다

로빈슨의 정원 ロピンソンの庭 | 일본 | 야마모토 마사시 | 1987년 | 119분 | 35mm | 프로듀서의 영화 부문

<로빈슨의 정원>에 등장하는 정원 또는 작은 숲은 도시에 길들여졌던 자연 본연의 야성이 표출되는 공간이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마약을 팔며 카페 영업을 하던 구미는 가슴 한곳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아는 사람들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으며, 가까운 친구들은 어딘가 멀리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녀가 어느 날 발견한 도심 속의 폐허로 이주하게 되는 것 또한 그런 상황에서 탈출하고픈 심정의 발로였을 게다. 너른 마당에 물길을 내고 다양한 식물을 키우려는 꿈을 갖고 있던 구미는 자연이라는 대상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엉망으로 끝나버리는 파티가 있던 날 이후로 구미는 서서히 미쳐가는 듯 보인다. 그녀는 마치 무인도에 조난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자그마한 자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지만, 이상한 원시적인 힘에 의해 오히려 통제당하고 만다. <망각의 삶>의 톰 디칠로(그는 <천국보다 낯선> 등의 촬영감독이기도 하다)가 촬영한 지극히 정적인 화면이나 미니멀한 음악, 날것 그대로의 음향이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을 때론 상쾌하게, 때론 서늘하게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밝은 미래>, 로우예의 <수쥬>, 데릭 저먼의 <블루> 등을 제작했던 일본의 영화사 업링크의 대표 아사이 다카시가 스스로 선정한 영화다.

안정적 도그마?

P.O.V. 관점 P.O.V. Point of View | 덴마크 | 토마스 기슬라슨 | 2001년 | 107분 | Mini DV | 디지털 익스프레스 부문

덴마크에 사는 카밀라와 헨릭은 결혼식을 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 결혼식 도중 카밀라는 돌연 식장을 빠져나가고, 록이라는 미국인의 오토바이 뒤에 탄 채 그곳을 떠난다. 그녀는 급진주의자로 보이는 록과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미국 서부를 함께 돌아다니며 서로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록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시애틀에서 그녀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과 플래시백이 교차되는 가운데, 그녀가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이유나 록과 여행을 함께한 동기, 폭발물을 설치하려던 록의 의도 등이 모두 모호해진다.

영화는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삶의 순간들을 명쾌하게 정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꼼꼼히 드러낸다. 라스 폰 트리에의 <범죄의 재구성> 등을 편집했던 기슬라슨 감독의 이 영화는 그가 도그마의 자장권 안에 놓여 있음을 느끼게 하지만, 자연의 빛과 배우의 싱싱한 연기를 디지털카메라로 흡수한 이미지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미스터리와 멜로드라마적 구성이 혼재되는 가운데 발하는 리듬감 또한 참신하다. 만하임-하이델베르크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서는 안될 사랑에 빠졌어요

햇빛을 조금만 가려줘 Une Minute de Soleil en Moins | 프랑스 | 나빌 애우쉬 | 2002년 | 98분 | DV | 디지털 익스프레스 부문

유력한 용의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형사의 이야기. 다소 평범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는 플롯과 효과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모로코 항구도시 탕헤르의 범죄집단 수괴 하킴이 살해당하고 형사 카멜은 수사에 착수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하킴의 정부인 투리아. 카멜은 투리아를 처음 보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묘한 마성을 느낀다. 투리아가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그녀의 어린 동생 피포를 돌보던 카멜은 묘한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다.

피포를 사이에 두고 강렬한 열정을 느끼게 된 카멜과 투리아는 사랑에 빠지지만, 수사가 전개됨에 따라 관계는 장벽에 부딪힌다. 여기에 범죄집단 내부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카멜과 투리아의 사랑은 점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ARTE의 <남과 여> 시리즈 중 한편인 이 영화는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과 남녀의 격정이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만하임-하이델베르크영화제 최우수 장편영화상 등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알리 자우아>(2000)를 만든 모로코의 감독 나빌 애우쉬의 세 번째 장편영화.

10대들이란!

고양이의 요람 Cama de Gato | 브라질 | 알렉산드레 스타클러 | 2002년 | 92분 | 디지털 익스프레스 부문

브라질 MTV세대의 삶을 거칠고 논쟁적으로 담은 영화. 치기어리지만 재기발랄하며 엽기적이지만 나름의 메시지를 담아 이번 세네프에서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될 영화 중 하나다. 크리스티아노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인 프란시스코와 가브리엘이 모인다. 그들은 크리스티아노의 여자친구와 3 대 1 섹스를 하려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해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크리스티아노의 어머니까지 돌연사하자 세명의 친구는 머리를 감싸쥐며 이 황당한 난국에서 탈출하려 한다. 이들은 미국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 사건으로 록 콘서트에 못 가게 된 것을 억울해하거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시체 처리법을 묻는 등 철없고 책임감 없는 10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영화가 끝난 뒤 나오는 거리 인터뷰 장면이다. 브라질의 평범한 10대들은 ‘당신들이 이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정말로 냉소적이고 정말로 무책임한 답으로 일관한다. 73년생인 스타클러 감독은 비정한 브라질 사회와 10대들의 방종한 삶을 통해 구원의 문제를 경쾌하면서도 쇼킹하게 제기한다. ‘최소한의 무모함으로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재현하려 한다’를 모토로 삼는 TRAUMA그룹의 리더이기도 한 스타클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몬트리올영화제, 상파울루영화제 등에서 다양한 상을 받았다.

범인(凡人)들이 그린, 역사의 초상

망자는 기다린다 Nos Que Aqui Estamos por Vos Esperamos | 브라질 | 마르셀로 마사강 | 1998년 | 73분 | 브라질영화의 현재 부문

20세기는 어떤 시대였나. 이 사색적이면서 감성적인 다큐멘터리는 ‘작은 이야기 위대한 인물, 작은 인물 위대한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통해 지난 세기를 회고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20세기의 인물은 니진스키, 레닌, 프로이트, 존 레넌 같은 ‘유명인사’만이 아니다. 세기 초 포드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컨베이어벨트 옆을 지켰던, 그러나 포드 자동차는 가져보지 못한 한 미국 노동자에서부터 1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걸프전에 차례로 참가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러시아의 노동영웅이었지만 이탈리아 관광객과 사랑에 빠져 시베리아에서 쓸쓸하게 사망한 인물, 일생 동안 TV를 한번도 보지 못한 남미의 농부까지 범인(凡人)들이 남긴 흔적이야말로 이 다큐의 본령이다.

다양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짜깁기한 화면 위에 서서히 흐르는 설명 자막을 읽고 있다보면, 역사라는 격랑을 소신껏 헤쳐나간 우리 주변의 초상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울림이 생기는 건 묘한 체험이다. 마지막 부분에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여기서 우리는 당신을 기다린다’는 문구가 적힌 공동묘지 입구를 빠져나올 때쯤이면,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에 역사라는 환상 속을 여행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Senef 2003 상영일정표및 예매

▶오라, 세네프로! 가자, 영화의 미래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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