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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풀>,젊은 시네아스트 프랑수아 오종 [2]
홍성남(평론가) 2003-08-22

프랑수아 오종 인터뷰" 난 영화 한편에 큐브릭처럼 5년씩 필요치 않다 "

지난해 부산을 찾은 프랑수아 오종은 차기작으로 “작품 구상을 위해 프랑스에 온 영국인 추리소설 작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인 <스위밍 풀>을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 ‘차기작’이 그의 한국에서의 첫 공식 개봉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 개봉 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수입과 배급문제로 인해 이 영화는 결국 우리 곁에 오지 못했고 대신 그 다음작인 <스위밍 풀>이 오종 영화로서는 첫 개봉작이 되고 만 것이다. 때문에 이 새 영화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서면으로라도 오종 감독에게 묻고 싶었으나 현재 영화작업 중인 그로부터 바빠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섭섭한 답을 들어야 했다. 결국 다음 인터뷰 내용은 지난해 부산에서 가진 오종과의 인터뷰와 <퓨처무비스> <인디와이어> ‘프랑수아 오종 공식 홈페이지’ 등에 실린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영화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가 8mm 무비카메라를 갖고 계셨다. 아버지는 휴가 갔을 때마다 그걸 이용해 이것저것을 찍어오셨는데, 그걸 보면 어떻게 이렇게 유치하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서 친척이 세례받는 것이라든가 결혼식 같은 것들을 찍게 되었는데, 내가 찍은 것들을 보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뒤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 카메라 뒤에 살짝 숨어서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영화감독이 된 것 같다.

영화를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학교 다닐 때는 구체적으로 주로 어떤 공부를 했는가. 학교에서 영화이론에 대한 수업도 많이 들었지만 이론 수업시간에 배우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더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네필이 되어야만 좋은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영화관에 가서 현재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시네마테크를 찾아서 과거의 중요한 영화들을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네필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던 영화는 무엇이었는가. 내 인생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된 영화는 꽤 많이 있지만 굳이 가장 중요한 한편을 들자면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독일 0년>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았는데, 이 영화만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전쟁 뒤 파괴된 독일에서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의 소년이 살아가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영화들 속에서 기발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악동’이라든지 ‘우상 파괴주의자’라든지 하는 별명을 선사받았는데. 사람들이 내게 어떤 식의 평을 하지는 모르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다. 담임선생님이 나더러 ‘프랑수아는 참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칭찬이 아니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급우에 대한 인물 묘사를 해오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나는 실제 인물 묘사를 하지 않고 마리 조르제트라는 가상의 인물- 상당히 촌티가 나는 이름을 가진- 을 만들어냈다. 못생긴 우리 담임선생님에 빗대어 이 인물을 묘사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선생님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나를 야단치고는 내가 숙제해갔던 것을 북북 찢어버렸던 게 기억난다.

당신 영화들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소 대담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편인데 그것들을 가지고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나는 내 영화를 통해서 톨레랑스를 보여주거나 열린 영혼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서 뭔가 ‘발견’하기를 원하는데, 성에 대한 발견은 어떨까 싶다. 나는 성이 한 사람의 자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내 영화를 통해서나 아니면 실제 삶에서나 성적인 경험이나 시도를 많이 해보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해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폭력적인 충동들 역시 당신(영화)의 중요한 일부이다. 그건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살인자들이다. 우리는 살인에의 충동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역할이란 그런 충동들에 가까이 가서는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 그 충동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여배우(샬롯 램플링과 뤼디빈 사니에르)는 어떻게 <스위밍 풀>에 합류하게 되었나. 을 만들고 난 다음에 나는 좀더 친밀한 영화- 좀더 단순하고 캐릭터들도 좀더 적은- 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이미 알고 있고 나와 용이하게 일할 수 있는 여배우를 기용하게 된 것이다. 나는 즉시 샬롯 램플링을 떠올렸다. <사랑의 추억>은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맞는 역할을 만들었고 그녀가 동참하기를 기다렸다. 샬롯의 상대역으로 뤼디빈을 기용하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건 이미 자리를 확고히 잡은 배우와 좀더 젊은 배우의 관계에도 어울렸다. 을 만들 때 나는 뤼디빈보다는 다른 배우들에게 좀더 신경을 많이 썼다. 뤼디빈과 달리 다른 여배우들과는 이전에 같이 일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에서 뤼디빈은 톰보이 역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녀에게 섹시한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 뤼디빈은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기 시작해 결국에는 남프랑스의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가 되었다.

샬롯 램플링에게 추리소설 작가 역할을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추리소설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작가에게는 스타일보다는 내러티브, 플롯, 그리고 단서들의 축적 같은 것이 좀더 중요하다. 후자의 것들이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게 된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건 촬영하면 결국 삶을 부여받게 되는 요소들을 축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 허구와 실제는 연결되어 있다. 나는 창작을 할 때면 살아 있는 존재, 상상 속의 존재, 그리고 쓰여진 존재가 모두 융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 나는 마치 내가 그 영화를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배우들 그리고 캐릭터들과 많은 감정들을 공유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 살인이 일어나면 나 자신 역시 그 살인을 저지른다. <스위밍 풀>은 판타지, 리얼리티, 창작과정, 이 모두를 동일한 층위에 놓는다.

영화 속 수영장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나는 이전 영화들에도 자주 물을 영화에 담았었는데, 거기서 물이란 금지된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든지 두려움의 감각을 의미했었다. 이번 영화에서 나는 가둬둠 같은 것을 나타내기 위해 수영장을 이용했다. 바다와 달리 수영장이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수영장은 줄리의 공간이다. 그것은 거기에다 당신이 어떤 것을 투사하고 어떤 캐릭터가 통과해 들어가는 스크린과 같은 것이다. 사라 모튼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녀는 줄리가 자신에게 영감을 줄 때, 그리고 수영장이 마침내 깨끗해졌을 때에서야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빨리 영화를 만들어내는가. 그건 나의 리듬이다. 나는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한편 만드는 데 큐브릭처럼 5년씩 필요친 않다. 내가 보기에, 영화 하나가 완전히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그게 걸작이 아니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번에는 더 잘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영화 한편이 완성되면 그걸로 끝이다. 그건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다. 나는 머무르고 싶지 않다.

프랑스 내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스스로 정의해본다면. 글쎄… 이번에는 또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종잡을 수 없는 영화감독이랄까? 어떤 하나의 에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고. 프랑스 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과 비슷한 연배의 프랑스 영화감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높이 평가하는 이는 누구인가. 현재의 프랑스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영화감독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벨바그 시대가 영화사적으로 중요했고 현재의 영화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의 영화감독들은 또 다르다고 본다. 이들은 훨씬 더 자유롭고 생각이 열려 있는 편이기 때문에 아시아영화, 프랑스영화, 미국영화, 이란영화 등을 가리지 않고 두루 보면서 영향받고 있고 또한 지금 시대의 영화만이 아니라 과거의 영화들에서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스파르 노에, 브뤼노 뒤몽, 클레르 드니처럼 뭔가 찾고 실험하는 영화감독들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끌린다.

당신의 핸섬한 용모를 보면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지 그리고 영화에 출연하는 데도 관심이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영화에 출연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해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는 카메라 뒤에 있는 걸 좋아하고 또 내가 스스로 통제를 하는 걸 좋아한다. 때문에 감독이나 작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건 싫다.정리 홍성남 gnosis88@yahoo.com·사진제공 프리비전

▶ <스위밍 풀>,젊은 시네아스트 프랑수아 오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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