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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의 스파이크 리,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1]
심영섭(평론가) 2003-08-29

그 상처의 땅에서 깨어나라!

의 스파이크 리, 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 이 일을 하려는 것은 떳떳해지기 위해서예요. 사람들의 말에 신경쓰는 건 아니에요. 싫은 건 싫은 거니까. ”

-- <걸 식스> 중에서 테레사 랜들의 대사

#1 공간- 뉴욕 인 뉴욕

세상에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 전 우주인 그런 감독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 곳은, 그 말투, 그 사람들, 그 일상은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나 에피소드를 지나 영화 그 자체와 맞먹는 전 우주적인 ‘의미’의 한 조각이다. 우리는 리틀 이탈리아 거리를 벗어난 스코시즈를 생각할 수 없으며, LA의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우디 앨런이나 거꾸로 필라델피아 거리를 배회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을 상상할 수 없다. 특히 뉴욕의 경우, 스코시즈와 우디 앨런, 그리고 스파이크 리는 일종의 삼중 연주단으로 동부 감독들의 지형도에 삼각 꼭지점을 이룬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삼중 합주단의 맨 막내인 스파이크 리가 9·11 테러 뒤의 뉴욕을 다루는 첫 테이프를 끊었다 해서 화제다. 영화 는 바로 뉴욕의 상공을 비추는 두개의 푸른 빛으로 시작한다. 스파이크 리는 그간 할리우드영화에서는 금기시된 트윈 타워에 대한 상징으로 영화의 포문을 여는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다. 24시간 뒤면 감옥에 가야 하는 백인 마약상의 하루를 영화화한 에서 스파이크 리의 카메라는 아예 고급 아파트의 유리창 너머로 9·11 테러로 텅 빈 지표면 0도의 바로 ‘그 상처의 땅’을 부감한다.

7년간 감옥에 가야 하는 주인공을 배웅하는 친구들은 그 창문 너머로 친구의 앞날을 점쳐본다. 그들도, 주인공인 몬티(에드워드 노튼 분)도 그곳에는 질식할 것 같은 현재에 대한 불안과 시계 0도의 미래 속을 헤매는 상실감만이 맴돌 뿐이다.

아무도 감히 직시할 수 없었던 미국의 외상을 똑바로 쳐다보며, 스파이크 리는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다. <스파이더 맨>이 쌍둥이 빌딩을 기어 오른다고 해서 CG로 밀어버렸던 할리우드에 일침을 가하여, <썸머 오브 샘> 이후 다시 한번 한 무더기의 백인 주인공들을 이끌고, 그는 심기일전 한 것이다. “왜 를 나의 최고작이라고 부르죠. 저의 최고작은 <똑바로 살아라>와 <말콤X>예요. 는 그저 모든 사람들이 접근하기 용이한 영화죠”라며 너스레를 떠는 스파이크 리. 그러나 는 여러모로 달라진 포스트 <말콤X> 이후의 스파이크 리를 점쳐볼 수 있는 수작이다.

여기서 에드워드 노튼은 감옥에 가면 죄수들에게 강간당할 것이라는 거세 불안에 시달리는데, 그것은 곧바로 거울을 보며 세상 모든 것에 저주를 퍼붓는 증오로 이어진다. 의미심장하게도 의 맨해튼은 전형적인 백인의 특히 우디 앨런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흑인이 아닌 아일랜드 이민 후예의 입을 통해, 스파이크 리는 모든 뉴욕적인 것에 저주를 퍼부으며 물어본다. 이민와서 1O년 동안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놈들, 돈만 밝히는 경찰, 비닐옷을 입고 야구 방망이나 휘두르는 이탈리아놈들 대체 그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고. 물론 흑인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데, 137년 전에 끝난 노예 제도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리는 흑인놈들이라며 일격을 가한다. 이대로 감옥에 갈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에드워드 노튼은 곱상하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묵사발내기로 마음먹고 친구들을 선동하여 싸움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맞아도 싼’ 자기 혐오를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이 장면에서, 놀랍게도 스파이크 리는 이전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분한 롱테이크 , 롱숏을 구사하며 몬티를 바라본다.

친구들에게 흠씬 두들겨맞는 에드워드 노튼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더없이 담담하고, 그의 재기발랄한 연출 스타일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이 장면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절대로 소유할 수 없는 25번째 시간은 ‘똑바로 살아라’라는 ‘선동’이 아닌 ‘똑바로 살기 위한 조건’에 대한 스파이크 리식의 ‘성찰’이며, 시간에 관한 명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우회적인 제안이며, 개인의 거세 불안이 뉴욕이라는 집단적인 거세 불안으로 대속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똑바로 살아라> 이후 질 좋은 연료인 분노를 한 가득 채워 브룩클린발 랩을 전세계에 쏟아부었던 스파이크는 를 통해 비로소 맨해튼의 묵시록으로 얼굴을 바꾼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선동주의와 다작의 와중에서 자기 중심추를 잃어버렸던 중견감독 스파이크의 서늘한 재기, 뉴욕을 몹시도 사랑했던 한 감독이 스스로의 미래와 한 도시의 미래를 염원하는 충심 어린 자기 비판이기도 하다.

#2 캐릭터- 흑인, 내일이 없는 인물

스파이크 리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흔히 브룩클린이란 막다른 동네에서 더이상 갈 곳 없이 벼랑 끝에 걸려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클라커즈>에서 벤치에 앉아 마약을 파는 꼬마 마약 딜러, <모 베터 블루스>에서 입술을 다쳐 더이상 트럼펫을 불지 못하는 블릭, <말콤X>에서 내일이면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설교에 나선 목사, <걸 식스>에서 폰 섹스로 인해 자신의 판타지 안에 감금된 여배우 등은 모두 흑인이며 동시에 내일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이들의 절박함을 스파이크는 <걸 식스>에서 아예 ‘추락하는 감정’(fallen feeling)이라고 요약한다. 여주인공인 테레사 랜들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분한 감독으로부터 할리 베리의 미모, 제이다 핀켓의 섹시함,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 안젤라 바셋의 연기력을 요구받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진 채 폰 섹스 회사에 취업한다. 할렘가의 고장난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한 소녀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주인공은 현기증을 느끼고, 카메라는 아예 엘리베이터 구멍으로 추락하는 주인공의 정신을 따라 그대로 나락의 밑바닥으로 빠진다. 절박함은 뉴욕을 살아가는 이들을 담아내는 스파이크 리 영화의 공통분모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는 그 상태는 내일이면 감옥에 가야 하는 의 백인 마약 딜러뿐 아니라 감옥 외에는 달리 선택이 없어 보이는 <클라커즈>의 흑인 마약 딜러인 소년 스트라이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몰려서야 비로소 그들은, 비로소 인간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내부의 유혹이든 외부의 압력이든 늘 위협받아왔기 때문이다. 걸 식스는 취업하자마자 긴 금발 머리에 분홍빛 유두를 가진 백인 여자 행세를 해야 한다고 코치받고, 소년 말콤X는 백인처럼 되고 싶어 타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머리를 편다. 여섯 아이의 아버지인 <브룩클린의 아이들>의 뮤지션이 ‘나의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딸에게 ‘다른 사람의 음악을 하면 엄마가 소리지르지 않을 거예요’란 소리를 듣는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실패자이기 때문에 흑인이다. <똑바로 살아라>에서 피자 배달원 무키와 피자집 아들 피노는 흑인문제로 입씨름을 벌인다. 무키가 백인인 너도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자, 피노는 처음에는 부인하다 ‘매직 에디와 프린스는 검둥이가 아니다’라고 강변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과 수많은 편견의 벽들에 대해 스파이크 리는 늘 마음속 깊이 나오는 슬로건으로 화답했다. 초창기 마약과 가난으로 얼룩진 흑인들의 삶을 백인들에 의한 억압/피억압의 구조로 파악하던 스파이크의 화두는 ‘깨어남’으로 요약된다. 초기작 <스쿨 데이즈>와 <똑바로 살아라>는 모두 다 ‘기상’이라는 말로 영화를 열고 닫는다. <똑바로 살아라>의 DJ 새뇨르 러브 대디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Wake up’은 흑인들의 각성을 깨우치는 광야에서 들려오는 스파이크 리의 표어였던 것이다. 이후 그의 선동주의는 미묘하게 변화한다. 폭력에의 정당성을 믿으며 <말콤X>의 극단적 투쟁을 지지하던 그는 거듭 ‘참지 말 것’을 흑인 형제들에게 부탁하며 사랑과 증오의 갈림길에서 증오를 선택한 듯 보였다. 그러나 <모 베터 블루스>에서부터 시작된 개인 내부의 문제에 대한 자각은 <클라커즈>에 이르러서는 더욱 완연해져서 결국 의 극단적인 자기 혐오로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동시에 이때부터 스파이크 리의 작품에서 ‘서쪽’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클라커즈>에서 주인공 스트라이크의 머리 위로는 거듭 ‘No More Packing’이란 광고판이 비치는데, 한마디로 짐 쌀 걱정하지 말고 그대로 떠나란 뜻이다. 기차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스트라이크는 마약을 팔면서 전철 외에는 타본 경험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는 금기의 노란 선 바깥을 깨고 서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재기를 꿈꾸며 서쪽으로 떠나기는 걸 식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현실에 대한 탈출구는 할리우드가 있는 LA뿐이다. 이러한 스파이크 리의 떠남의 철학을 집대성한 영화가 것이 LA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20명의 흑인들 이야기인 <버스를 타라>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결국 감옥에 수감될 에드워드 노튼이 마지막으로 꿈꾸는 지향점이 서쪽 사막이란 의 설정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3 이미지- 태양을 먹은 붉은색

이러한 스파이크의 선동성이 시각화된 장치가 바로 스파이크 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입’과 ‘붉은색’의 이미지이다. 러브 대디의 극단적인 입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하는 <똑바로 살아라>, 입으로 성공해서 음악가가 되고 입술을 다쳐 경력을 마감하는 재즈 뮤지션의 이야기 <모 베터 블루스> 그리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해 매끈한 전화기와 입술이 함께 클로즈업되는 <걸 식스>의 입은 모두 관객 머리 위에 폭포수 같은 설교와 논쟁을 쏟아붓는다(이러한 면에서 <똑바로 살아라>에 나오는 각종 랩을 번갈아가며 쏟아내는 라디오 하임의 거대한 스피커는 기계의 포장을 쓴 또 다른 우렁찬 스파이크의 입은 아니었던가?). 의사소통의 수단이자, 포효하는 선지자의 음성을 실고서 스파이크의 입은 단순한 페티시의 차원을 뛰어넘어 흑인으로서의 자기 주장과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내뿜는 폭포수 같은 정신의 입구로 작동한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에서 신체 기관은 어느 때나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세례를 받기에 충분한 신성한 곳이다.

<버스를 타라>

<썸머 오브 샘>

또한 스파이크의 영화에서 붉은색은 우디 앨런에게 재즈만큼이나 중요한 기호학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스파이크 리의 모든 흑인 주인공들은 빨강 모자나 빨강 재킷, 빨강 멜빵이나 빨강 바지를 입고 뉴욕의 거리를 활보한다. 그것은 흑인의 색이며, 그들 내면 깊숙이 눌린 분노이자 약동하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똑바로 살아라>에서 볼 수 있듯이 타는 듯한 뉴욕의 더위를 식혔던 소화전의 물은 그뒤 흑인 폭도들을 진압하는 도구로 변한다. 반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기운으로 상징되는 뉴욕의 열기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화할 수 있는 도화선으로 타들어간다. 이윽고 브롱크스 거리의 권력기구로 작동하는 살의 피자 가게를 불태우는 불길은 흑인의 분노이자,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흑인들의 키 큰 함성에 다름 아니다. 빨강은 위험하지만 폭발적이고, 에너지로 가득 찼지만 파괴적이다. 빨강은 흑인들의 피이자 흑인들의 정신과 똑같은 빛깔을 지녔다.

반면 녹색이나 파랑은 스파이크 리에게는 백인들의 색 혹은 이성의 색깔 혹은 불길함의 마성을 지녔다. 그 색깔은 <클라커즈>에서 스트라이크에게 마약 팔 것을 권유하는 빅터의 색깔이고, <걸 식스>에서 폰 섹스 회사의 입구로 통하는 색깔이며, <버스를 타라>에서는 흑인들을 무조건 마약 밀매자로 몰아붙인 백인 경찰들의 색깔이기도 하다. ‘검다’는 색깔에 그토록 천착하면서, 심지어 <말콤X>에서는 백인들이 붙인 검은색에 대한 사회편견을 조목조목 따지던 그에게 이러한 빨강/청색의 대조는 스파이크 리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한 천지창조적인 색감일 것이다. 심지어 그는 <정글 피버>나 <브룩클린의 아이들>에서 보여지듯이 진한 황토색 필터를 써서 흑인들의 피부 색깔과 똑같이 뉴욕을 변모시킨다. 스파이크가 재현하는 그곳은 흑인이 우주의 중심인 그런 세상, 어디나 흑인들의 피부색과 동일한 공기가 착색되어져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그의 조명은 유난히 작열하는 태양의 한점도 놓치지 않을 만큼 밝게 일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클라커즈> 같은 영화들은 스파이크 리의 작열하는 경쾌한 스타일 대신 어두운 필름누아르의 축축한 기운을 세례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스파이크에게는 뭔가 백인들을 따라하는 구린 짓이 되었겠지만.

▶ 의 스파이크 리,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1]

▶ 의 스파이크 리,흑인 `감독`의 5색 스펙트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