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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김현정 2003-08-29

특집/ 다모

" 배경과 의상만 시대극이고 나머지는 현대물로 대체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 극본을 썼다는 작가의 의도는 하나하나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볼 때 생생하게 읽힌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마음을 놓아버린 오랜 인연, 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남녀의 위태로운 연정은 2003년에 그대로 가져와도 공감을 부를만 하다.

폐인들이 패를 이루니 <다모>도 힘을 받소

<다모> 추종자들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요소는 대사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 “다시는 나 같은 인연 만나지 말아라.” “나는 너를 이미 베었다.” “그리 떠나면 형제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허망하겠느냐.” <다모> 한회가 끝날 때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이 명대사들은 써놓고 보면 문어체에 가깝다. 곰곰이 따져보면 전체 대본에선 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순간 마음을 치고 지나가는 대사를 기억하고, 몇번이고 곱씹으며 패러디한다. 문어체이기 때문에 더욱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것일까. 지난해 말까지 8회분 대본을 미리 썼던 <다모>는 고칠 필요없는 완성품이라는 장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대사들이 웬만한 사람은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퍼진 까닭은 인터넷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과 함께 읽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리 높지 않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다모>가 성공한 드라마라고 장담할 수 있는 동력이다.

‘다모폐인’들이 주도하는 팬덤은, 최소한 그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방영 2주째 이미 인터넷에선 <다모> 팬덤이 형성됐고, 인터넷 게시물은 30만을 넘겨 이제 40만을 바라보고 있다. MBC홈페이지 안에 있는 다모 클럽은 스탭과 캐릭터, 팬들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어느 열성 팬은 <다모>를 방영하지 않는 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성 좌포청 신보>라는 인터넷 신문을 발행 중이다. 주로 40대가 시청률을 좌우하기 때문에 <다모>는 같은 날 방영되는 드라마 세편 중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수치만 반영되는 시대였다면 편당 2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다모>는 비난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단하게 뭉친 마니아들은 드라마를 문화현상으로 확장하고, DVD와 O.S.T 등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것이다.

미리만들고 HD로 찍으니, 얼마나 좋으냐

“나도 너를 사랑한다고!” 지금 인터넷에선 채옥이 과연 누구를 향해 이 대사를 외쳤는지를 두고 논쟁이 한참이다. 언제 어디서 터져나왔는지 모를 고백인데도. 14부작 드라마 <다모>는 80%를 미리 제작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절정을 예고편에서 미리 내비치고, 그 순간을 확인할 때까지 TV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 수 있었다. <다모>는 MBC가 시도한 사전제작의 시범 케이스였다. 사전제작 드라마는 제작기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에 애초 8부작으로 기획됐지만, “사설이 많아서 대본을 길게 쓰는” 작가의 특성상 여기까지 오게 됐다. 스타도 없고, 이정진의 출연번복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다모>가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도 드라마틱한 순간을 편집한 예고편 때문. 윤이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심한 반발을 받기도 했지만, 그에 흔들리지 않고 애초 결말을 고수하는 것도 사전제작이 가지는 장점이다. 방영 다섯달 전인 2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탓에 대관령과 단양 등 수려한 풍광을 찾아다닐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TV에선 보기 드문 <다모>의 아름다운 화면 역시 사전제작의 여유와 막대한 물량, 선명하고 시원한 HD 화면이 맞물린 결과다. 채옥이 물에 적신 흰 천을 날려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은 제작진이 손꼽는 명장면이다. 기를 실은 물방울들이 부딪쳐 범인을 넘어뜨리는 이 장면은 슈퍼 슬로 카메라를 쓰지 않았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슈퍼 슬로 카메라는 보통 카메라로 촬영하는 슬로모션과 달리 말발굽 사이로 튀어오르는 모래 알갱이, 칼날 위에 내려앉았다가 튀어나가는 빗방울까지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 카메라 두대, 50m에 달하는 크레인과 지미집을 동원하는 액션신은 HDTV를 생산하는 모 기업을 스폰서로 끌어들일 정도로 매혹적인 요소. 서로를 인정하는 조치우 종사관과 장성백이 계곡 위로 날아올라 일격을 주고받는 결투는 <다모>가 기술뿐 아니라 정서에도 민감한, 동양적인 무협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정형수 작가는 “첫 장면은 <와호장룡>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액션에 감정이 실리는, 가장 중요한 무협은 모두 우리가 창작했다”고 자신있게 밝혔다.

<다모>는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다. 액션 연출이 변덕스럽고 적절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지만, 역사와 애정이 맞물리고, 칼날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는 숱한 고비들은 <다모>만이 소유한 고집이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인작가와 프로듀서가 밤을 새우며 교환한 아이디어들, 드라마를 중심있게 세우겠다는 원칙, 신인에게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한 방송사의 믿음, 오누이 사이의 애정도 순수하게 사랑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시청자. 무엇보다 <다모>는 뒷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과거 어느 한 시절을 살았을 사람들을 잊고 만 기존 사극의 실수를 피해갔다. 작가의 말처럼 채옥은 “조선 시대에 꼭 있었을 것만 같은 여자”다. 윤과 성백도, 마축지와 타박녀도, 자극적인 장치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다. MBC 다모 클럽에 주연들뿐 아니라 이운해 부장(권오중)을 위한 방도 마련돼 있는 까닭은 시청자들이 그런 제작진의 의도에 반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모>는 사극이라 해도,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김현정 parady@hani.co.kr

<다모> 원작

방학기의 원작만화를 아십니까?

TV드라마 <다모>는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과 그 심복이자 정인인 다모 채옥이 역모를 수사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채옥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오빠 성백을 만나고, 오라버니인 줄도 모르는 채 역모의 우두머리 성백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원작에서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 없는 것이다. 방학기의 원작 <다모>는 채옥의 비중이 드라마보다 훨씬 크다. 좌포청 다모 채옥은 남장을 하고 위조지폐인 사전을 만드는 조직을 파헤친다. 채옥과 그녀가 홀로 사모하는 상관 황보윤은 사전이 역모준비를 위한 밑거름이고, 그뒤엔 정판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역모를 막는 데 성공하지만 일당 중 한명인 천상기가 살아남아 윤이 사랑하는 기생 벽화를 납치한다. 방학기의 <다모>는 드라마처럼 눈물나는 사연은 없지만, 채옥이 친부모를 태워죽인 기막힌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정이 극적이고, 감정보다 사건에 집중하는 탓에 좀더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