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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김현정 2003-08-29

극적인 사연이 가슴을 치고, 호쾌한 화면이 참으로 좋소

강력한 추종자 거느린 퓨전 사극 <다모>

내가 너에게 무엇이더냐. 첫 방영부터 ‘다모폐인’들을 만들어내며 마음을 울리고 있는 <조선 여형사 다모>는 무협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처럼 아픈 질문을 쏟아내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서얼로 태어난 한을 칼끝에 품은 좌포청 종사관 황보윤(이서진)과 자신이 관비라는 사실을 너무도 뼈아프게 깨우치고 있는 포도청 다모 채옥(하지원), 왠지 모를 살가움과 솔직함으로 채옥의 마음을 끄는 역모의 주역 장성백(김민준). 세 사람은 결코 맺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에게 무엇인지, 너는 나에게 무엇인지, 묻고 새기며 서로의 주위를 맴돌 뿐이다.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간격 밑에는 십오년 세월과 정한이 묻혀 있다. 예쁜 사랑은 많았지만 가슴에 맺힌 사랑은 드물었던 TV드라마에서 이러한 감정의 깊이는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염두에 두지 않은, 진짜배기 오누이 사이의 사랑을 정직하게 그리는 대담한 시도나 개인의 운명이 역사의 물줄기로 녹아드는 탄탄한 구조 역시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다른 면모. <다모>는 장중한 스케일과 그 스케일에 걸맞은 역사적 신념, 동시대 시청자들도 뒤흔드는 절박한 사랑으로 거센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상상력이 붕붕 날으는구려

<다모>는 방학기의 극화소설이 원작인 드라마다. 사주전 수사에서 출발해 역모의 폭로로 이어지는 선굵은 사건이나 장성백 일당을 맺어주는 끈끈한 의리를 보면, 이 드라마가 원작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을 거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그러나 <다모>는 핵심 인물과 설정을 제외한 나머지를 거의 새로 쓴 거나 마찬가지다. 채옥과 윤이 애틋한 정인이라거나 성백이 어린 시절 헤어진 채옥의 오빠라는,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루는 설정도 원작에는 없던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마음을 놓아버린 오랜 인연, 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남녀의 위태로운 연정은 2003년에 그대로 가져와도 공감을 부를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모>는 탐욕스러운 음모에 불과했던 원작의 역모를 혁명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오”라는 성백의 대사에는 이루지 못한 혁명의 비애가 배어 있다. 그리고 그 혁명,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혁명은, <다모>의 배경이 되는 17세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변함없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모>의 정형수 작가는 “사극을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배경과 의상만 시대극이고 나머지는 현대물로 대체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극본을 썼다는 것. 이런 의도는 하나하나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볼 때도 읽을 수 있다. 채옥은 관비가 되어 소녀 시절부터 윤을 모셨지만, 스스로 검을 잡고 자신을 단련해 누구보다도 능력있는 형사 노릇을 한다. 그녀는 정인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는 한계를 가졌지만, 그것이 그녀가 품은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장희빈 같은 궁중 여인들에 비하면 참신할 수 있다. 채옥은 주막에 퍼질러 앉아 술을 마시며 상심을 달래는 첫 번째 사극 속의 여인일 것이다. 조연들도 생생하다. 좌포청 포교 이부장과 백부장은 극의 맥락과 상관없이 요즘 건달들이나 쓸 법한 말투를 쓰고, 동료 형사를 대하듯 허물없이 관비 채옥을 아낀다. 신분이나 성별의 장벽을 의식하지 않는 두 사람처럼, 마축지와 타박녀는 자유로운 성관념과 돈을 향한 집념을 가진 현대적인 인물들이다. 도망친 노비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는 마축지 부부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기회를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안다. 그리고 조선 중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훌쩍 벗어난 이 인물들과 그 인물 모두에게 역할을 주는 역동적인 사건은 <다모>를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빚어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정형수 작가 인터뷰

멜로 부분만 다른 작가가 쓰게 하려고도 했다

정형수 작가는 99년 등단한 이래 한동안 불운한 시절을 겪었다. 베스트극장을 썼을 뿐, “데뷔작가가 보조작가로 일하는” 아픔도 당해봤지만, 그 시절이 <다모>를 잉태하게 한 거름일지도 모를 일이다. MBC 드라마 작가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4월에 시작된 긴 여정을 아직도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모> 집필은 완전히 끝낸 건가.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윤과 채옥과 성백이 모두 죽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윤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너무 많은데, <다모>는 그렇게 끝나야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윤이 죽는 장면을 원래 썼던 것보다 아름답고 장엄하게 고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도 맘이 아프다. 아이들이 너무 안 돼서. 그래서 성백이 말한 것처럼 “지금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웃음)

기억에 남는 대사가 많다. 스스로 멜로에 약하다고 말하지만, 채옥과 윤의 관계는 정말 절절한데. 진짜 멜로에 약하다. 이재규 PD가 유치하다고 하도 구박을 해서(웃음) 멜로 부분만 다른 작가 쓰려고도 했었다. 나는 그저 상황에 맞는 정확한 대사를 찾아내려고 했을 뿐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리 마주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런 대사들은 분위기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사실 내가 힘을 준 부분은 시청자들이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문학적인 부분인데, 윤의 아버지가 아들을 깨우치는 장면이나 성백이 혁명에 관해 말하는 대사 같은 것들이었다. 남자들 사이의 끈끈한 의리도 살리고 싶었다.

<다모>는 이전 사극과는 많이 다르다. 채옥이라는 캐릭터나 채옥과 그 오라버니 성백의 관계는 특히 대담한 시도로 보인다. 채옥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페미니즘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이건 드라마다. 조선 시대에 주체적인 여성이 있다, 라는 것만으로도 드라마적인 설정이 되는 거다. 조선 시대에 정말 그런 여자가 살았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각본을 쓰다보니 채옥의 성격에 내가 끌려간 부분도 있다. 만일 <다모>에서 페미니즘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건 채옥 자신이 끌어낸 거다. 성백과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 채옥은 오랫동안 윤을 사랑해왔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기가 윤에게 장애가 될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눌러왔던 마음이 성백을 만나 터져나오는 거다. 성백은 채옥을 죽음에서 구해냈고, 그런 남자, 게다가 솔직하고 신념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 사랑의 과정을 앞으로는 좀더 볼 수 있을 거다.

프로듀서와 작가가 모두 신인이다. 감당하기 어렵지 않았나. 지난해 4월에 처음 제안을 받았다. 대본도 오래 썼고, 힘든 일도 많았다. 작가실에 앉아서 이 PD랑 열심히 떠들기는 하는데, 다음해 7월에 방영될 드라마를 누가 알았겠는가. 쟤들 뭐 하나 쳐다보고… (웃음) 이정진 출연번복 사태 때문에 힘들 때, 이 PD하고 술을 마시면서 다짐했다. 지금 서너살인 우리 아이들이 스무살이 돼서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드라마를 만들자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된 것도 같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