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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What's up on TV?시청자를 사로잡은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

8월 초순 싱가포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다. 며칠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한국, 타이,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의 IT 기자 5명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한국 기자는 엉뚱하게도 드라마에 대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여름향기>가 방송되고 있다는데 어떠냐?”, “배우 △△△는 요즘 뭐하냐?”, “요즘 한국 드라마가 미국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는데 비결이 뭐냐?” 등등.

한국 드라마는 휴대전화처럼 내수가 국제 경쟁력을 키운 대표적인 상품일 것이다. 드라마가 내수시장만을 겨냥해 만드는 시절은 벌써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내수시장에서 규격화된 트렌디드라마가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 어디서 왜 생겨나는지 살펴봤다. - 편집자

MBC 드라마국의 약진, 프로덕션 생산품의 추락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 내 멋대로 찍는다 거칠어도 새롭게

2002년 겨울과 2003년 여름 사이에 TV드라마에 미묘한 그러나 뚜렷한 파장이 진동하고 있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로 이어지는 윤석호 시리즈에 대한 호응이 큰폭으로 떨어지는 사이,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스타 PD’의 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종학의 <대망>, 표민수의 <고독>, 이진석의 <술의 나라>, 이승렬의 <스크린>, 최윤석의 <첫사랑>…. 그동안 문제작과 흥행작을 다채롭게 내놨던 연출자들이건만, 새롭다는 평가도 재밌다는 반응도 얻지 못했다. 굵직한 작가들도 벽에 부딪힌 형국이다. 김수현은 리메이크작 <청춘의 덫>과 달지도 쓰지도 않은 범작 <불꽃>에 이어 <내 사랑 누굴까>를 내놨고, 송지나는 <모래시계> 이후 8년 만에 김종학과 짝을 이뤄 <대망>을, 노희경은 <거짓말>의 콤비 표민수와 3년 만에 만나 <고독>을 내놨으나 어떤 ‘신드롬’도 일으키지 못했다. <서울의 달>(MBC) 이후 <옥이 이모>(SBS), <파랑새는 있다>(KBS)를 거쳐 MBC로 다시 돌아온 김운경은 주말극 <죽도록 사랑해>를 보여주고 있으나 놀라울 만큼 잠잠하다.

결국 이야기는 1년 전의 <네 멋대로 해라>로 돌아간다. <네멋…>을 시작으로 캐릭터와 디테일에서 ‘새롭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며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는 <눈사람> <옥탑방 고양이> <앞집 여자> <다모> 등이다. 스타 PD의 잇단 좌초에서 예외가 있다면, <애인> <신데렐라>의 이창순이 만든 <눈사람> 정도일 것이다. 변수를 만들어낸 건 그가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청자가 변했으니 자신도 변해야 한다며 새로운 작가와 만나 “다큐멘터리 같은 드라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변신을 모색해 성공한 사례는 <옥탑방…>의 김사현 PD도 해당된다. <그 햇살이 나에게> <비밀> 등 전형적인 90년대식 트렌디드라마를 만들었던 그는 “시청자가 어설프고 거칠어도 새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걸 느낀다”며 <옥탑방…>을 만들었고, 성공했다. 스타 PD와 작가들이 힘든 시절을 맞이한 지금, 드라마의 경향적 변화는 뭘까?

<명랑소녀 성공기> <위풍당당 그녀> <옥탑방 고양이>(위 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판타지를 벗고 솔직함을 입다

요즘 드라마는 허공에 뜨기보다 어떻게든 현실에 발을 딛고 선 현재진행형 드라마가 되고자 한다. 그건 화장기를 지워낸 솔직함이기도 하다. <선녀와 사기꾼>에서 사기꾼 안재욱은 매력적인 악인이다. 그는 악인이지만 징계받지 않는다. 사기치는 데 성공할 뿐 아니라 김민선까지 자기 짝으로 만들어 유유히 떠난다. 사기꾼의 최종 승리, 그건 현실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요조숙녀>의 김희선은 당당한 속물이다. 그는 낮이면 자취를 감추는 별을 그저 바라만 보느니 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기 원한다. 요트클럽 회원을 찾아내 자기 배우자로 후리려고 드는 그를 나와 다른 속물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보디가드>의 차승원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나이다. 하지만 그는 어리숙하며 어떨 때는 멍청하기까지 하다. 정의롭고 싸움도 선수급이며 외모나 머리회전이 엘리트급인 <인간시장>의 ‘완벽한 사나이’ 장총찬보다 친근하지 않은가.

트렌디드라마의 왕자와 공주는 또 어떤가. 최지우-김하늘-송혜교-손예진 등으로 이어지는 공주 계보는 장나라(<명랑소녀 성공기>)-배두나(<위풍당당 그녀>)-정다빈(<옥탑방 고양이>)으로 이어지는 깡순이 계보의 도전을 받고 있다. 깡순이들은 자신들이 눈물을 떨구고 있으면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자기 능력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그들은 생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어리버리 왕자’까지 일으켜 세운다. <옥탑방 고양이>의 김래원은 류시원-송승헌-배용준 같은 왕자과와 다르다. 그는 우유부단하고 대책없는 빈대형인데다가 야비하기까지하다. 판타지의 껍데기를 벗은 그를 사람들은 이제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네 멋대로 해라>

<내 인생의 콩깍지>

캐릭터의 다중성, 드라마의 모던함

그런데 드라마의 고전성을 탈피하려면 좀더 현대적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건 때론 추하고 더러운 삶의 이면을 과장하지 않고 들춰내는 ‘모던’함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의 인생이란 언제나 돌발사태처럼 아무런 설명없이 부분부분 파편들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런 파편들을 모으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 난 그런 파편들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재미있다.” 송지나 작가의 말이다. 사실 삶이 파편적인 건 인간 자체가 파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네멋…>의 복수(양동근), 경(이나영), 미래(공효진)의 말과 행동에 옳다, 그르다 같은 고전적 잣대를 들이대려 해도 어떤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지 난감해진다. “방금 전의 사건과 환경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롭게 반응한다, 는 대원칙을 가지고 디렉팅했다. 사람이란 게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지나가는 농담에 웃을 수도 있고 아무리 기분좋은 일이 있어도 어떤 일에는 갑자기 화가 날 수도 있지 않나? 그게 진짜다.” <네멋…>의 박성수 PD가 말하는 연출 방침은 ‘얼마나 사람을 자극하느냐’에서 ‘얼마나 사람(시청자)과 호흡하느냐’가 요즘 드라마의 관건이 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사로 감정을 자극해 증폭시키는 김수현식 드라마와 다른 면모다. <네멋…>의 젊은이들은 자기 개성을 갖되 한 가지 특색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띤다. <네멋…>의 젊은이들은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 어떻게 소매치기의 과거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당장의 불안감에 더 공포를 느끼고, 삼각관계를 이룬 상대방에게 뺨을 후려칠 만큼 미워하면서도 자기에게 없는 그의 매력을 인정할 줄도 안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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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