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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이유진,현경림 [6]

주류만 좇는다고 해피할까

| 이유진 |

2000년 <오! 수정> | 2003년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 프로듀서의 길

영화계에서 동명이인을 발견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유진이라는 이름의 여성프로듀서가 둘 있다는 사실은 다소 신기하다. 여성프로듀서가 많아진 걸 입증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오! 수정>의 프로듀서 이유진(35)씨는 96년 명보극장 기획실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졸업과 동시에 극장 업무를 맡게 됐다. 개관부터 프로그램 섭외까지 관련된 여러 일을 했지만 “극장이 안정되면서는 커피타는 일만 하게 돼서” 1년 뒤 극장을 나와 곧장 기획시대를 찾아갔다. 당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준비 중이던 기획시대는 월급은 극장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비로소 영화를 하고 있다는 들뜬 느낌을 심어준 곳. “<아름다운 전태일>을 하면서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제작비가 모자라서 정말 절박한 느낌으로 일했고 박광수 감독을 비롯해 당시 연출부로 있던 허진호, 박흥식, 이종혁 감독 등을 만났죠. 보도자료 한장 쓸 때도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면서 했던 때죠.”

돈 못 버는 힘든 일에 뛰어들었지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개봉하던 날,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벅찬 희열로 확인했다. 표를 사기 위한 행렬이 극장을 한 바퀴 돌아 늘어선 광경을 보면서 극장에서 일할 때 느끼지 못했던 감격을 경험한 것이다. 기획시대에서 <지독한 사랑> 홍보까지 담당했던 그는 그뒤 유학을 결심한다. 처음엔 6개월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다음엔 AFI 프로듀서 과정에 응모해 합격했다. 그러나 부푼 꿈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5번씩 인터뷰를 했지만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유학은 무한정 연기됐다. 미라신코리아에서 입사제안을 한 것은 그렇게 2년을 흘려보낸 뒤였다.

| 프로듀서의 시련

미라신코리아에서 일하면서도 유학의 꿈은 버리지 않았지만 프로듀서가 되는 길은 학교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사에서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준비하게 되자 그는 자연스럽게 <오! 수정>의 프로듀서로 발탁됐다.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세 감독과 작업해보면 영화계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적 있어요. 박광수, 이명세, 두 감독과는 일해봤고 다음 기회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였죠. 의욕이 생기더라구요.” <오! 수정>을 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할 때만큼 스탭과 배우가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봤다. 촬영 직전 원래 투자하기로 했던 곳에서 투자를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애태우기도 했지만 각자 자기 개런티를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열의를 보인 사람들 덕에 촬영은 원활히 끝날 수 있었다. <오! 수정> 다음에 준비한 작품이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캐스팅과 투자유치 문제로 2년을 끌었던 이 영화는 올해 5월 첫 촬영에 들어갔다. 프로듀서에겐 제작이 무한정 연기되는 일이 가장 견디기 어렵지만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는 참을 만한 일이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건동 감독과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으며 지난 3월 출산까지 했다. “영화촬영 끝날 때쯤이면 임신 6개월쯤 되겠지, 했는데 막상 촬영 들어간 거는 애를 낳고 나서였죠. 결혼하고 출산하는 일이 없었으면 견디기 힘들었던 2년이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일이 예상대로 안 풀리는 것이 즐거운 건 아니다. 특히 이번 장마는 프로듀서의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비온다고 촬영 취소해놓으면 활짝 개고 촬영하려고 하면 비가 내리고. 요즘 날씨 때문에 배우들 스케줄도 꼬이고 난리예요.” 그는 인터뷰를 하던 날도 비 때문에 밤 촬영을 급히 취소해야 했다.

| 프로듀서의 꿈

“여자가 먹여살린다고 하더라구요.” 이유진씨는 결혼 전에 본 궁합에 그렇게 나왔다고 말한다. 이건동 감독의 집에서 얼른 결혼하라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인 거 같다며 웃는다. 하지만 작품경력을 보면 그가 돈욕심을 많이 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메인스트림을 무작정 쫓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메인스트림이란 것도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는 프로듀서를 하는 즐거움으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오! 수정>의 촬영기사 최영택씨를 대표적 인물로 꼽으면서. 말은 안 했지만 분명 남편이 된 이건동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나는 소망한다 철저한 기획영화를

| 현경림 |

2001년 <친구>

| 프로듀서의 길

현경림(35)씨는 국내 흥행기록을 세운 <친구>의 프로듀서지만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친구>가 프로듀서로서 만든 첫 작품이었고 그뒤로 개봉한 영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우연히 나온 작품은 아니다. 93년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으니까 영화계 경력이 올해로 만 10년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할리우드 키드’였다고 말한다. 부지런히 삼류극장의 한구석을 차지했던 그는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시네마테크를 찾아다니며 희귀한 영화를 보곤 했다. 하지만 막상 졸업했을 때 영화계로 들어갈 길은 잘 보이지 않았다. 92년 막 생겨난 시나리오작가교육원을 다니면서 영화계 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차에 93년 영화세상이 창립하면서 기획실 직원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뎠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두편의 영화를 홍보하고 영화세상을 그만둔 다음 96년부터 3년간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램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됐죠. 정말 낯선 영화를 많이 보면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99년 영화사 씨네라인2에 입사한 것은 그에게 좋은 계기가 됐다. 마침 창립작품을 준비 중이던 씨네라인2는 그에게 기획팀장을 맡겼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알게 된 곽경택 감독의 <친구> 프로듀서를 하게 됐다.

| 프로듀서의 시련

“프로듀서는 사람과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게 사람과 돈이죠.” 그는 프로듀서의 고뇌를 명쾌하게 정리한다. <친구>를 만들면서 투자유치와 캐스팅의 곤란을 절실히 경험한 탓이다. 그는 이처럼 힘든 관계를 풀어가는 비결은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현장에서 경험없는 프로듀서가 신뢰를 얻는 데는 이보다 나은 비법이 없을 것이다. <친구>의 성공 이후 그는 씨네라인2에서 <야생화>와 <연이>라는 두 작품을 준비했다. 그러나 <친구>로 엄청난 흥행을 터트렸다고 다음 영화가 쉽게 진척되지는 않았다. 2년 동안 준비한 두 작품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늘 다음 행보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라는 현경림씨는 그렇게 두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대학원에 진학했다. 세종대 영상대학원에서 그는 디지털매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단편영화 3편의 프로듀서도 하면서 내공을 쌓는 데 주력한 것이다. “유익했던 시간이에요. HD를 비롯한 디지털카메라 촬영에 대해 공부했고 주관객층이라고 말하는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의 호흡도 따라가보는 시간이었죠.”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진인사필름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곽경택 감독의 신작을 준비 중이다. 아직 영화의 내용을 밝히기 어려운 단계라며 그는 이 영화의 제목이 <태풍>이라고만 귀띔한다.

| 프로듀서의 꿈

그는 드라마가 강하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영화가 취향에 맞는 거 같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영화는 실험적인 작품에서 SF영화까지 다양하지만 프로듀서로서 잘할 수 있는 영화는 그런 작품이라고. “잘난 척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은 있는 거 같아요. 작가교육원을 다니면서 공부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은데 드라마에 대한 이해 같은 거죠.” 자신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그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자신에겐 창작하는 일이 아니라 객관적 입장에서 조언하는 일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는 임순례 감독처럼 마음에 맞는 다른 훌륭한 감독과 작업을 해보거나 철저한 기획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어느 쪽이든 배울 것이 많을 거라는 이유다. 다음 단계로 영화사를 차려 독립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냐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은 한참 멀었어요”라는 그의 말은 착실히 한 걸음씩 옮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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