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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끄는 차세대 여성 프로듀서 - 이선미,이유진 [5]

선명한 빛깔의 작품을 쏴라

| 이선미 |

2001년 <와니와 준하> | 2003년 <귀여워>

| 프로듀서의 길

이선미(34) 프로듀서에겐 일보 후퇴가 결과적으로는 이보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1996년 그가 운동 성향이 짙었던 영화제작소 청년을 나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 제작부에 결합한 것은 청년의 전략적 ‘투입’도 아니었고 개인적 ‘전향’도 아니었다.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선배,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청년을 만든 91년 이후 정신없이 활동해온 데 따른 피로가 쌓인 것뿐이었다. “그땐 좀 지쳤던 것 같다.” 막연히 장선우 감독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연출부를 희망했으나 이미 자리는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제작부 일이 현재까지 이어질 줄은 당시 이선미 PD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쁜 영화>의 시스템이 좋았던 것은 연출부와 제작부의 구분이 없었다는 점. 장 감독은 연출부와 제작부가 1명씩 팀을 꾸려 10대를 취재한 뒤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사실, 이런 ‘열린 영화’는 제작부 입장에선 어쩌면 최악일 수도 있었다. 오늘 촬영을 마쳐도 내일 어디서 어떤 것을 찍을지 몰랐기 때문에 장소를 섭외하고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제작부로선 곤욕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한번도 촬영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즉흥적인 현장 대처능력을 거기서 배웠다. 아마 모두 미친 듯 즐겁게 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나쁜 영화>에서 그가 배운 게 있다면 감독에 대한 꿈을 접고 프로듀서의 희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이기적이어야 하는 감독은 못하겠더라. 난 스탭 적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프로듀서의 시련

<나쁜 영화>를 개봉시킨 뒤 그는 다시 청년으로 돌아왔다. 당시 청년은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영화제작소 청년과 별개로 ‘청년필름’을 조직했을 때였다. 결국 창립작으로 <해피엔드>가 선택됐고, 이선미는 프로듀서를 맡아 작품을 준비했다. 하지만 97년 당시, 젊음 하나만을 무기로 내세운 이들이 일류배우를 캐스팅하고 제작비를 끌어모으는 일은 버거웠다. 결국 명필름과 공동제작을 맡게 됐고, 그는 프로듀서가 아닌 제작실장으로 ‘백의종군’하면서 현장을 컨트롤했다. 영화운동단체간의 라이벌 의식 탓일까, 초반에는 장산곶매 출신의 이은 감독이 있는 명필름과 함께한다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졌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자 도움을 얻은 부분이 많았다. 특히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노하우는 가장 크게 배운 점이었다. 청년의 독자적인 창립작품인 <와니와 준하>에서 그는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다. 하긴, 프로듀서 일을 제대로 아는 것도 그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학 1학년 때부터 아주 친했던 김용균 감독의 작품이니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다. 감독에 대해 답답한 감정이 쌓여갔지만, 사적인 끈이 워낙 단단했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적하지 못했다. “냉정해질 수 없더라. 공적인 순간에 자꾸 사적인 감정이 들어오더라. 결과적으로 내겐 마이너스였던 것 같다. 프로듀서로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못 이뤘으니.” 또 제작비도 예상보다 초과돼 회사에 부담을 준 탓에 그 스스로는 “프로듀서로서 실패한 작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와니와 준하>는 개인적으로 친한 감독의 작품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교훈을 그에게 줬다.

| 프로듀서의 꿈

현재 제작 중인 <귀여워>는 <나쁜 영화> 때 조감독이었던 김수현 감독을 그가 청년필름으로 끌고 들어와 만들게 된 작품이다. 제작비 문제 등으로 튜브픽쳐스에서 제작하게 됐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쁜 영화> 시절 사람에 대한 넓은 아량과 따뜻한 품을 보여줬던 김수현 감독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프로듀서란 감독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해주는 ‘옥시크린’ 같은 존재”라고 믿는 그에게 <귀여워>는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 예산문제로 제작이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이 작품을 끝내는 대로 <귀곡산장> <첫눈> 등의 프로젝트 중 하나를 선택할 이선미 프로듀서는 “감성에 있어 압도적으로 뛰어난” 여성의 장점을 살려 더욱 선명한 빛깔의 영화를 만들 작정이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월메이드 ' 상업영화를 꿈꾼다

| 이유진 |

2000년 <비밀> | 2003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프로듀서의 길

영화사 봄의 제작이사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되기 전, 이유진(35)씨는 홀로 황량한 벌판에 나서는 모험을 두번 자청했다. 대학 2, 3학년 때 <별이 빛나는 밤에> <젊음은 가득히> 등의 구성작가로 정신없이 지낼 때였다. “대학 입학도 그렇고 정해진 수순대로 큰탈없이 살았던 것 같다. 공부도 아주 잘했다. 이게 뭔가 싶었던 생각이 든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해보자고 맘먹고 훌쩍 미국으로 건너갔다. 부모와 교수가 놀라서 말렸지만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무모함”을 확인시켜줬고, 1년을 머무는 사이 육로로 대륙횡단까지 했다. 대학 졸업 때 방송사에서 붙잡았지만 미련을 떨치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들어갔다. “늦둥이였다. 처음 1년 동안 무지 고생했다. 광고카피를 보여주는 게 일기장 공개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그러다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2년차부터는 아주 잘 나갔다. 차장을 달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하게 됐고, 어느덧 서른을 넘보는 나이가 됐다. “부장, 국장까지 진급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게 그때였다. 마침 오정완 대표가 신씨네에서 독립하면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사표를 던졌지만 회사에서 붙잡았다. 무려 1년 동안 ‘돌아오라’며 월급을 줬고, 그 덕에 배고픈 영화판에서 먹고살 수 있었다. 1년 뒤 월급 수령을 확실히 거절했다.

| 프로듀서의 시련

“<정사> 때 이재용 감독이 날보고 ‘미친년 널뛰듯한다’고 농담을 했는데, 딱 그랬다.” 분업화된 광고일에 비해 마케팅 책임을 맡은 그의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자기 때문에 영화가 망하면 어쩌나 하는 초조감에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추석 시즌의 개봉 첫날, 흥행 1위를 확인하면서 뿌듯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광고일을 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것도 잠시, 프로듀서를 해보고자 외유처럼 다다필름에 합류해 시나리오 개발부터 완성까지 불과 1년 사이에 <비밀>을 끝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봄’으로 돌아와 의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이렇게 잔인한 가족사를 데뷔작으로 만들고자 하는 감독이 궁금했고, 만나고보니 굉장히 당차고 똑똑한 사람이어서 욕심이 났다.” 상업성이 약해 보이고 캐스팅이 쉬워 보이지 않더니 예상은 ‘역시나’였다. 캐스팅이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사이 ‘단짝’ 이재용 감독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제작에 들어갔다. <스캔들…>의 캐스팅 문제는 을 초월했다. 도장만 안 찍었지 출연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아니 믿어 의심치 않던 배우가 갑자기 발을 돌렸다. 기적적으로 두 작품 모두 A급 배우로 계약서를 마무리짓던 날, 술에 떡이 돼 쓰려졌던 건 아주 얌전한 스트레스 발산이었다.

그는 20분 들은 이야기를 30분짜리로 재밌게 전할 수 있을 만큼 특유의 화술로 붙임성에 강점을 보인다(디테일에 특히 강한 기억력 덕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광고회사 들어갔을 때는 “온실 속의 화초 같다”더니, 7년차가 되자 “중성적”이란 말을 들었다. 그랬던 그가 영화일을 시작하자 “영화판 여자같지 않다”는 말부터 들어야 했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과 끝없는 소통의 결과다. 이유진 프로듀서는 그걸 잘 알고, 그걸 즐긴다. 그리고 거기서 다치기도 한다. “프로듀서와 감독은 일종의 부부 같다.” 모두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 달려드는 걸 보면 프로듀서는 엄마의 처지와 비슷하다. “그래서 아빠가 폭군일 때 정말 힘들다.”

| 프로듀서의 꿈

“영화를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있을까 싶지만 잘 만든 상업영화가 좋다.” 기획영화라는 호칭에는 작품성보다 상업적 성공에 비중을 더 둔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는 그걸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의 경험상 작품성을 살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게 ‘웰메이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거다. 때문에 “감독의 영화는 또 다른 길이 있지 않겠냐”는 그는 정말 재밌는 할리우드식 로맨틱코미디, 혹은 심오한 휴먼드라마나 성장영화를 꿈꾸고 있다. 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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