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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에서 만난 일본 영화인 3人- 이노우에 히로미치 [5]
홍성남(평론가) 2003-09-05

"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지향하기, 어렵지 않더라 "

<잔물결> 프로듀서 이노우에 히로미치(井上弘道) 인터뷰

광주=글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잔물결>의 모녀는 자신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아픔들을 무심한 듯 감춘 채 고요한 나날들을 보내는 이들이다. 시청 소속 수질검사연구원으로 일하는 딸 이나코는 평생 홀로 살 것처럼 굴지만 아들 딸린 한 남자에게 끌린다. 한편 그녀의 어머니는 17년 전 브라질에 갔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남편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는 시간의 두터운 무게감과 내적인 싸움을 벌인다. <잔물결>의 이 인물들은 아마도 내면적으로는 상처로 얼룩진 존재들임에도 겉으로는 그 아픔들을 고요한 고독감으로 눌러버린 듯싶은 사람들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을 닮은 듯 전반적으로 들뜬 기분 없이 조용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의 현대적 변용인 듯한 영화 <잔물결>을 들고 감독 나가오 나오키와 프로듀서 이노우에 히로미치가 광주를 찾았다. 이 가운데 직접 만나본 이노우에 히로미치는 독특한 경력의 프로듀서이다. 프로듀서로서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세편의 영화가 등재되어 있는데 그건 모두가 <잔물결>의 감독 나가오의 영화들이다. 이건 그가 나가오 감독과 특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전업 영화 프로듀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노우에의 명함을 보면 그의 원래 직책은 NHK소프트웨어 기획개발본부 기획제작부의 치프 프로듀서(chief producer)라고 써 있다. 그러니까 회사원이라고 볼 수 있는 그는 회사에서 출장을 보내주는 형식으로 가끔씩 영화제작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고 싶은 영화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자신에게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독특한 이력의 일본의 프로듀서와 <잔물결>과 또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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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듀서 일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나는 전문적으로 영화제작만을 하는 프로듀서는 아니다. 지금까지 영화 프로듀서 일을 한 것이라고 해봐야 나가오 나오키 감독의 영화 세편이 전부다. 비디오 기획 제작 및 프로그램 패키징이 회사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전에 광고제작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가오 감독을 알게 됐다. 그 회사에서도 나가오는 감독이었고 나는 PD였다. 둘이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나가오 감독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화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물론 학생 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긴 했다. 그때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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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이 NHK소프트웨어라는 회사의 치프 프로듀서로 되어 있다. HK소프트웨어는 NHK가 주주인 NHK의 관련 회사라고 보면 된다.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NHK의 프로그램들을 비디오와 DVD로 제작???발행하는 것이다. 영화 만드는 것은 이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회사에서 출장을 보내주는 형식으로 시간을 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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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 감독하고만 영화작업을 해왔는데. 예전부터 둘이 콤비를 이루어서 그런지 나가오 감독과는 성향이 잘 맞는다. 프로듀서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나가오 감독과만 영화제작 일을 하다보니까 만들고 싶은 영화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 일을 즐기면서 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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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로서 나가오 감독과의 직업적 관계는 어떤가. 기본적으로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에 방향을 설정해나간다. 세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아직까지 큰 의견 충돌 없이 작업을 해왔다. 나가오 감독이 나보다 세살 위라 간섭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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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물결>은 아주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다. 나가오 감독과 함께 작업한 이전 영화들은 어떤가. 세 작품 모두 나름의 특징들을 갖고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영화인 <도쿄 할러데이>(1991)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펑크무비 혹은 팝무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인 <무사시노선 고압철탑>(1997)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홈드라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잔물결>은 이 두 번째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잔물결> 이전의 두편의 영화는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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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 <잔물결>은 상업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가. 영화는 아직도 상영 중이다. 지금까지 대략 3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비평에 대해서 말하자면, 매우 아름다운 영화라는 식의 호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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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물결>은 예술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제작하는 것의 어려움이나 즐거움이라면. 나로서는 <잔물결>을 예술영화라고 부르는 데 대해 유보하고 싶다. 이 영화는 닛카쓰를 비롯해 다섯개 회사가 공동으로 제작한 것인데 이런 사실 자체가 상업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연배우로는 유망 신인배우(다다노 미아코)를 기용했다. 게다가 타마미즈 역을 맡은 도요카와 에쓰시(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에서 시게루 역을 맡아 국내에서도 이미 낯이 익은 배우다)는 이미 일본 내에서 인정을 받은 배우이고 주인공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마쓰자카 게이코(1960년대부터 경력을 시작해 <가마타 행진곡> <간장선생> <가타쿠리가의 행복> 등 많은 유명 영화들에 출연한 여배우)는 아주 유명한 배우이다. 특별히 예술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놓치지 않으면서 관객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보는 게 나을 듯싶다. 일본에서 <잔물결>을 두고 마치 한장 한장 사진집을 펼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라는 평이 있었다. 그래서 도쿄의 어느 사진 미술관 내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공개했다. ‘미술관에서 보는 영화’가 영화 공개의 컨셉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와 놀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상업성을 배제한 채 예술성만 끌어안으려고 했다면 어려움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지향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나가오 감독도 작품성만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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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물결>을 만드는 데 들인 예산은 어느 정도의 규모인가. <잔물결>은 소규모의 영화이다. 그래서 배우들 개런티도 다른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게 주었다. 배급 경비 포함해서 약 6500만엔 정도가 든 것 같다. 이 정도의 소규모로 영화를 만든다면 혹 손해를 본다고 해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고 비디오 판권을 포함해 현상 유지는 가능할 것이다. 이 영화가 어느 정도 관객이 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것에 맞게 예산을 들였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편이라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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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잔물결> 같은 저예산 영화의 현황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도 저예산 영화를 위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12∼13년 전만 해도 비디오 대여시장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에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비디오쪽에서 제작비 회수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비디오 시장은 침체돼어 있는 상황이다. 대신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이 착실하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사람들로부터의 수요가 저예산 영화의 맥을 이어가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단관 극장들에서는 이런 영화들을 꾸준히 상영하고 있다. 최근에 예전의 메이저 극장들이 단관 극장들로 탈바꿈하는 것도 저예산 영화들을 위한 틈새를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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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화 프로듀서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일본의 프로듀서들은 대체로 기획력 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다만 그런 기획들이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돈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작비를 끌어오는 문제가 프로듀서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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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영화를 제작하고 싶나. 어차피 나가오 감독의 다음 영화를 만들게 되겠지. 가능하면 메이저영화로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나가오 감독이라고 해서 돈을 싫어하겠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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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범죄영화이고 또 다른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시모토의 소설이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그녀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삼아 만들어질 것이다(이노우에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요시모토의 어떤 소설을 영화화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 빛고을에서 만난 일본 영화인 3人- 하스미 시게히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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