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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에서 만난 일본 영화인 3人- 야마다 요지 [3]

" 인생은 꿈같은 것이 아니던가 "

<황혼의 사무라이> 감독 야마다 요지 인터뷰

광주=글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세계에서 가장 긴 시리즈 영화는 이 아니라 야마다 요지의 희극영화 <남자는 괴로워>이다. 1969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아쓰미 기요시라는 걸출한 코미디 배우를 앞세워 그가 1996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27년간 총 48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남자는 괴로워>는 매년 한편 정도 개봉하여 일본 관객의 명절 행사로 자리잡았고, 어떤 해에는 3편이나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그의 말에 따르면 “공부를 못해 별다르게 할 게 없어서 들어가게 된” 쇼치쿠영화사. 그의 동기 중에는 오시마 나기사가 있었다. “쇼치쿠는 잠자는 사자가 아니라 죽은 사자이다”라고 말하며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영화를 추구해간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 오시마 나기사와는 달리 야마다 요지는 말 그대로 쇼치쿠의 순한 ‘효자’였다.

닛카쓰영화사가 핑크영화에서 로망포르노로 진지를 바꾸고, 도에이영화사가 야쿠자영화로 명맥을 이어가던 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슈퍼8mm 세대가 들이닥치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야마다 요지는 끊임이 같은 패러다임의 희극영화 <남자는 괴로워>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출발이 순조로웠던 것은없 아니다. <남자는 괴로워>는 이미 폭발적인 인기 속에 종영된 텔레비전 드라마를 이어받은 것이었고, 거기에서 각본을 맡았던 야마다 요지는 같은 주인공과 같은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기를 원했다. 쇼치쿠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결국 이 시리즈로 적자를 마감했고, 손익계산을 넘어섰다.

<남자는 괴로워>의 아쓰미 기요시는 마치 한국의 코미디언 이주일이 그랬듯, 부담 없는(?) 얼굴을 지녔다. 그는 <남자는 괴로워>가 만들어지던 그 긴긴 세월 다른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고 오직 이 시리즈에만 등장했다. 이 못생기고, 허술하고, 엉뚱하고, 낭만적이고, 정감 넘치는 사나이의 극중 이름은 ‘쿠루마 토라지로’, 일명 ‘토라상’이다(그래서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애칭은 ‘토라상’ 시리즈이다). 중학교 때 집을 나간 뒤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토라상은 영화가 시작할 즈음 언제나 가족을 방문한다. 그리고 이복 여동생과 매부, 떡집을 하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인쇄소 사장, 충복 겐코, 큰스님(우리에게는 오즈 야스지로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류 치슈가 이 역을 맡고 있다)이 토라상을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맞이한다. 토라상은 언제나 집을 방문하여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어떤 여인 혹은 어떤 사건과 얽혀 여행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다시 한번 집을 방문한 뒤 떠나버린다. <남자는 괴로워>는 매번 이런 구조를 반복하면서 자기 역사를 쌓아갔고, 관객은 언제나 찾아오는 기념일처럼 그 똑같은 이야기를 보기 위해 서슴없이 극장을 찾았다.

한 작품, 한 작품을 갖고 따진다면 <남자는 괴로워>를 영화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영화사의 개근상을 탈 만하며, 일본 희극영화의 전통 속에서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만한 따뜻한 미소를 선사한다. 도쿄 근교의 시바마타에 붙박고 살아가는 토라상의 가족과 일본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토라상, 그 서로 다른 삶은 충돌하고 화합하면서 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주는 묘한 감동은 영화 속 삶의 시간과 관객의 삶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른다는 데 있다. 영화가 한편한편 만들어질 때마다 똑같은 배우들이 등장하여 조금씩 늙어 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 망향편과 하이비스카스편은 10년의 시간을 두고 있고, 그 세월만큼 변해버린 배우들의 모습이 있다. 그건 그 영화를 보기 위해 10년을 기다린 관객도 그만큼 같이 늙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배우가 교체되어 있다면 그건 그 배우가 실제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무려 30여년을 이어간 시리즈였기에 토라상이 돌아다니는 일본의 풍경들은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토라상은 매번 같은 표정과 말투와 복장으로 등장하여 빠르게 변해버린 사회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잃고 싶어하지 않는 마지막 향수의 감정을 자극한다. 야마다 요지는 그의 최근작 <황혼의 사무라이>를 통해 사무라이의 ‘칼’이 아니라, 사무라이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지 않는 한, 그의 인물 토라상처럼 야마다 요지도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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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쇼치쿠에 입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동기생 중에는 오시마 나기사도 있었다. 당신은 왜 감독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 다른 길이 없었다. 학생 때 성적이 많이 나빴고, 취직도 잘 안 됐다. 별다르게 할 것도 없고 해서 영화회사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나하고 달리 오시마 나기사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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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은 문화적으로 격동적인 시기였다고 알고 있는데, 당신이 그때 동세대 감독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신념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화가의 예를 들어보자. 인간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화가가 있고, 정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화가도 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나는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가?’ 생각해봤다. 그럴 때 나에게는 ‘그리운 삶’이 생각난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내 영화에는 살인하는 이야기도 없고, 베드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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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남자는 괴로워>의 1탄이 탄생했다. 당신은 강하게 그 영화의 감독을 맡기를 원했고 주장했다. 이 소재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일단 캐릭터가 좋았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좋았다. 그런데 쇼치쿠에서는 처음에 반대를 했다. 하지만 영화가 굉장히 흥행하자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는 괴로워> 이외에도 <노란 손수건> <가족>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바쁜 28년간이었다. 아마도 그동안은 내가 일본에서 가장 바쁜 감독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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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가 먼저 있었다. 내용이 같은가. 그렇다. 완전히 똑같다. 내가 각본을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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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주연배우 아쓰미 기요시가 독사에 물려 죽는 것으로 끝났다. 종영 뒤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였나.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었다. 편지로, 전화로 왜 토라상을 죽여버렸냐고 항의가 빗발쳤다. 일본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때문에 시청자들이 비난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빛고을에서 만난 일본 영화인 3人- 하스미 시게히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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