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3]
권은주 2003-09-18

할리우드로 간 이방인들

그들에게 할리우드는 毒이었을까?

<아멜리에>를 촬영 중인 장 피에르 주네와 오드리 토투

---

서극은 <순류역류>로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순류역류> 촬영장의 서극 감독.

1993년 <하드 타겟>의 프로듀서 짐 잭스는 촬영이 진행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문화가 너무 달랐다. 미국 관객은 중국식 드라마 스타일을 따라가지 못했고, 장 클로드 반담은 주윤발과 달리 오우삼에게 헌신적이지 않았다.” 할리우드 데뷔전 참패 이후 실의에 빠진 오우삼은 미국을 알기 위한 긴 여행을 통해서야 다음 작품에 착수할 에너지와 자신감을 얻었다.

할리우드가 외국인 감독을 고용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빌리 와일더와 프리츠 랑이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고, 밀로스 포먼도 정치적 망명의 길을 택해 할리우드에 편입했다. 루이 말, 볼프강 피터슨, 라세 할스트롬도, 폴 버호벤, 루이스 만도키 등도 본국에서의 명성을 업고 할리우드로 진출한 감독들. 90년대 이후 소재 고갈과 매너리즘에 빠진 할리우드는 다시금 이방의 재능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스카우트한 외국 감독 다수는 할리우드 장르법칙과 시스템에 휘둘려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할리우드에 남아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여왔다.

할리우드로 건너와 심각한 문화충격을 겪은 대표적인 감독은 서극이다. 오우삼과 더불어 홍콩액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서극은 90년대 초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고 흔쾌히 날아왔지만,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더블팀> <넉오프> 등 삼류 액션영화를 내놓는 데 그쳤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홍콩에서 홍콩 배우들과 함께 찍은 <순류 역류>는 서극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된 작품. 할리우드 스타일과 홍콩 스토리를 접합한 이 영화는 평론가 짐 호버먼으로부터 “날선 개성이 건재함을 보여줬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어 홍콩에서 만든 <촉산전>은 대중적으로 큰 환대를 받진 못했지만, “판타지와 상상력만으로 가득한 영화”라는, 무협 마니아로서의 꿈을 펼쳐 보인 위대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서극은 <촉산전> 이후로도 <흑협2> 등 홍콩산 프로젝트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장 피에르 주네도 할리우드에서의 설욕을 고국에 돌아가 풀어보인 경우. <에일리언> 시리즈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려던 스튜디오의 러브콜로 <에일리언4>를 떠맡은 그는 도미니크 피뇽, 론 펄만 등의 배우들과 다리우스 콘쥐 등의 스탭들로 구성된 ‘주네 사단’을 끌어들이는 고집을 부려 얼마간 자신의 영화적 개성을 살려내긴 했지만, 스토리가 삐걱댔을 뿐 아니라, 스튜디오 대작치고는 지나치게 어둡고 기괴해, 그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주네는 곧장 프랑스로 돌아가 ‘자유 창작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그의 커리어 사상 가장 사적인 판타지 <아멜리에>를 내놓았고, 프랑스에서만 8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소재와 로케이션의 국적이 어김없이 영화의 완성도로 귀결되는 예도 있다. 조국 아일랜드의 현실과 문화적 경험을 영화화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닐 조던은 미국과 고국을 오가며 활동해왔지만, 보편적이고 범상한 소재와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인 드림스> <애수> 등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시도한 장르 실험은 엇갈린 평을 낳았고, <크라잉 게임> <마이클 콜린스> <푸줏간 소년>의 파괴력에 미치지 못했다. 비슷한 궤적을 그린 감독이 러시아의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다. <시베리아드>가 칸영화제에서 호평받은 것을 계기로, 할리우드로 건너간 그는 한물간 스타들과 진부한 시나리오에 기댄 <마리아의 연인> <탱고와 캐쉬> 등을 만들며 쇠락하는가 싶다가, 러시아에서 만든 <이너 써클> <리야바, 나의 암탉>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닐 조던은 <푸줏간 소년>등에서 보여준 파괴력을 할리우드에서 잃어버렸다

<거미 여인의 키스>의 헥토르 바벤코는 할리우드로 건너와 잭 니콜슨과 메릴 스트립 주연의 범작 <잡초>를 내놓는 데 그쳤지만, 고국으로 건너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대작 <카란디루>를 만들어 건재함을 과시했다. 반면 라틴문화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영상화한 <달콤쌉싸름한 초콜렛> 이후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된 멕시코의 알폰소 아라우는 개성이 증발한 진부한 멜로드라마 <구름 속의 산책>으로 신고식을 치른 뒤, 할리우드에 남아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옛 명성은 시들해졌다. 첸카이거의 <킬링 미 소프틀리>, 진가신의 <러브 레터>, 알랭 베를리네(<나의 장미빛 인생>)의 <패션 오브 마인드>는 각기 이들 감독의 마지막 할리우드영화이자 커리어 사상 최악의 영화로 남았다.

할리우드의 시스템과 이방의 감수성이 균열을 일으키는 대목은 ‘영화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 콧대 높은 스타배우, 간섭 심한 제작사, 노동 시간을 엄수하는 스탭들은 철저히 감독 중심으로 돌아가는 촬영장이 익숙한 아시아권 감독들에겐 특히 적응하기 힘든 환경이다. “모국어의 악센트를 숨기려 하지 마라. 당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악센트다.” 한때 할리우드의 상당한 신뢰를 받았던 장 자크 아노는 할리우드에서 고전하는 외국인 후배감독들에게 이런 충언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가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니다(그 자신도 <티벳에서의 7년> 같은 영화를 만드는 패착을 범했으니까). ‘할리우드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매뉴얼이 있다면, 아마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무책임한 결론만 나열돼 있을 것이다. 다만 반가운 것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할리우드가 지금은 이국의 재능을 수용할 만큼(리안의 <헐크>의 예처럼) 유연해졌다는 사실이다. 박은영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1]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2]

▶ 대니보일, 할리우드에서 길을 잃고 런던에서 답을 찾아 돌아오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