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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2]
권은주 2003-09-26

민병천 | 다큐는 지금도 해보고 싶다. 영상 분야에서 제일 자유롭고 매력적이다. 계산하에 영상을 만들어내지 않고, 순간적인 감흥은 너무 매력적이다.

김봉석 | 뮤직비디오만의 특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민병천 | 뮤직비디오는 자유롭다. 신인 때는 전혀 영화가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영화는 어렵고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지배를 하는 매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츄럴시티>의 작업은 나한테 굉장히 자유로웠다. 뮤직비디오는 제작 프로세스도 자유롭고, 결과에서도 자유롭다. 감독만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들고 싶지만 일년에 한편 정도만 하면 좋겠다. 자주 하게 되면 타성에 젖는다. 화면을 예쁘게 하는 기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자주 쓰게 되면 자신 안에 갇히게 되는 게 싫다.

김봉석 | <유령> <고스트>, 둘 다 보긴 했지만, 가장 감독님다운 작품은 <내츄럴시티>라고 생각한다.

민병천 | 나도 그렇다. <유령>은 지금 봐도 내 작품 같지가 않다. 시나리오도 내가 쓴 게 아니고 이미 기획돼 있었던 거라 <크림슨 타이드>의 틀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내츄럴시티>는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적 어법?

김봉석 | 뮤직비디오적 어법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민병천 |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신경썼던 점은,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많이 나온다는 소리는 안 듣자는 거였다. 그래서 절제를 많이 했다. 그것도 굉장히 위험한 것이지만, 음악이 남발되면 감정을 해치는 수가 있다. 그게 너무 싫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김봉석 | 이야기의 세밀함 없이도 감정을 드러내고 아우라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뮤직비디오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좋았다. 사실 R과 리아의 이야기를 다 해주면 오히려 구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까도 10대들은 다 좋아했다고 그랬지 않나.

민병천 | 그런데 걱정되는 게, 개봉할 때가 딱 10대들 시험기간이라더라. (웃음)

김봉석 | 요즘에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것들이 성공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인과관계보다는 개별의 에피소드와 순간의 느낌들을 중요시한다는 것. <내츄럴시티>를 보고 있으면 오마주나 인용 안에 감독만의 분명한 뉘앙스라든가 아우라같은 게 존재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야기가 어렵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 민 감독이 이야기를 하는 방식 자체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령>과 <내츄럴시티>는 실제로도 내러티브 구축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아까 감독이 말한 ‘자유로웠다’는 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과관계보다 에피소드, 순간의 느낌들을 중요시하는 게 아닐까.

김봉석 | 근래 봤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은.

민병천 | 원래는 그런 영화 싫어하는데, <귀신이 온다>를 보면서 내가 범할 수 없을 것 같은 걸 느꼈다. 그외엔 끌린 작품이 없다. <와호장룡>도 좋았다.

김봉석 | 듣고보니 감독님이 요즘 좋아하는 건 동양적인 것들이다.

민병천 | 실은 이번에 <내츄럴시티>가 잘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 사극이다. (웃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극은 좀 아닌 것 같다. 고증이 잘 돼서 그대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보다 훨씬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나는 사극을 좀 제대로 만들고 싶다. 거기에 꽂혔다.

민병천 감독이 뽑은 베스트 #3

빗속에서 리아의 홀로그램을 외투로 덥어주는 유지태 R의 허상에 대한 사랑이나 집착을 설명

김봉석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있다. 그 영화의 색깔은 어떤 것 같나.

민병천 | 좋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좀더 상상이 부가될 것 같고, 그보다 더 확 갔으면 좋겠다.

김봉석 | <내츄럴시티>와 관련해서도 고증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간다는 얘기를 했다.

민병천 | 고증을 하지 못할 바에는 상상력으로 가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김봉석 | 그럼 사극을 하더라도 상상력이 좀더 가미된 사극을 하겠다는 말이겠다.

민병천 | 하지만 스토리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랑 얘기고, 대규모 전투들이 많이 들어간다.

김봉석 | 감독이 만들고 싶어할 영화들은 다 비쌀 것 같다. (웃음) 기본적으로 비주얼이 좋으려면 어쩔 수 없이 비싸야 된다.

민병천 | 머릿속으로 10장면 정도 생각해서 자신이 생기면 덤벼드니까.

김봉석 | 그런 거대한 영화들말고(웃음) 작은 영화를 할 생각은 없나.

민병천 | <동첩>이란 영화가 있다. 15살 먹은 어린 소녀가 자연하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사춘기를 깨우쳐가는 얘긴데, 방귀한씨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은 대사를 하나도 안 넣을 생각이다. 영화 전체에 열다섯살 먹은 어린애의 심성을 화면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 변해가는 과정을. 너무 하고 싶다. 근데 그건 망할 거 같으니까(웃음) 내 이름으로 어느 정도 돈을 번 다음에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제작비는 많이 안 든다. 15억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

비평을 물갈이 하라

김봉석 | 한국에서 비주얼을 이야기할 땐 항상 두 가지다. 예술영화적인 소박한 아우라의 비주얼, 아니먄 아예 CG를 동원한 광활한 비주얼. 하지만 일본영화만 해도 싸게 만든 것 중에 비주얼이 독특하고 인상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한국에서도 중저예산에 상업적인 감성으로 접근하면서도 독특한 비주얼이 나와줘야 되지 않나. 그러니까 감독님도 비싼 영화만 하지 마시고…. (웃음)

민병천 | 나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너무 꽂혀가지고…. (웃음) 3부작으로 하려고.

김봉석 | 정말로 어렵겠다. (웃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처음 나왔을 때 모든 언론이 완전히 씹었다. 그건 순전히 대중이 살린 영화였다. 그 영화를 계기로 과거의 비평가들이 물러가는 시대가 됐다고 한다. 감독님의 영화가 걸작이라고 보진 않지만 비평이란 영역에서도 바뀌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10대와 30대의 차이도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반응이 극단적이지 않나. 그리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빗속에서 리아와 R이 만나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다. 대사 하나 없이도 느껴지는 느낌이 좋았다.

민병천 | 내가 가장 아쉬운 게 그 장면이다. 이재진 감독과 음악 얘기 하면서 그 장면에서는 히스토리를 주자고 생각해서 찍을 때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찍었다. 음악만으로 시온이 R을 그때 처음 본 게 아니라 도심에서 흔히 만나는 사이보그 중독자 중 한 사람을 본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얘네들의 사랑은 끝이 보이는 미래다라는 것도 그 장면에 다 쏟아붓고 싶었는데, 사랑의 한때 정도로만 느껴지는 게 아쉬웠다. 내레이션을 한번 넣어보니까 확 깨더라. 그래서 이건 이미 설명의 범위를 지났다는 생각을 했다.

김봉석 |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카우보이 비밥>을 만들면서, 간노 요코의 음악에 맞추어 연출을 하기도 했다.

민병천 | 우리 영화는 100% 그렇게 했다.

여신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메카라인 시티의 전경. 현재의 경기도와 평안도 일부를 위성도시화해 대규모 도시국가로 다시 태어난, 1080년 서울의 모습이다. 감독은 " 미래사회에 대한 과학적 근거보다 내가 상상한 미래의 공간을 그리겠다 "는 의도로 이 같은 미래도시를 만들어냈다.

김봉석 | 그래서 영상과 음악이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액션장면들은 어땠나.

민병천 | 사실 <유령> 땐 액션장면을 많이 못 찍었다. 액션을 찍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 합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정두홍 감독과 합을 짜다보면 생각이 나는 거다. 좍 풀리더라. 정두홍 감독과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 그 사람도 편집에 대한 감이 있었다. 난 모든 장면에 컨셉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 전투신은 물을 소품으로 사용한 차가움과 은밀함이 컨셉이었다. 그래서 쌍용시멘트 공장을 막아서 물로 다 채웠다. 처음 찍는 액션장면이라서 굉장히 많이 헤맸다. 사방에서 와이어들이 내려오는데 이걸 다 어디에 매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대사 전달도 하나도 안 되고. 근데 그걸 찍고 나니까 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이 들더라. 석상가게의 전투신은 벗겨지는 돌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 주조종실 안에서의 액션신은 스파크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날카로움과 찢어지는 듯한 느낌의 화면이 주가 될 수 있게끔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서 R과 싸이퍼의 싸움은 소도구를 전혀 쓰지 않고 심리전으로 갔다. 근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 전투가 상대적으로 뒤로 갈수록 약해져서 아쉽다고. 그렇지만 첫 번째 전투신은 단순히 화면이 예쁘고 임팩트가 있는 것뿐이다.

김봉석 <내츄럴시티>에서 뭔가 하고 싶은 장면을 못한 게 있는가.

허우적거리는 사랑의 느낌을 말하고 싶었다

민병천 | 사실 난 싸이퍼의 존재를 더 무시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허우적거리는 사랑의 느낌이었고 이 느낌이 좀더 본질적으로 들어갔어야 됐는데 블록버스터란 미명 아래 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액션에 더 욕심을 내진 않았다.

김봉석 아까도 진짜 자신의 작품이 나온 거 같다라고 얘기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은.

민병천 | 좀더 디테일을 더 파야 하지 않았나 하는. 지금은 그냥 예쁘게 포장을 했다라는 느낌이 든다. 내 스스로 완벽하게 더 집중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좀 아쉽다. 본질에 더 밀착을 했더라면 사람들도 좀더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김봉석 | 배우들이 영상 안에, 그림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민병천 | 그런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그건 나도 이상하다. 영화를 찍는 동안 오히려 그런 얘기 안 듣기 위해 배우들을 풀어줬었는데. 할 때까지만 해도 배우가 감독의 인형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유령>을 거치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생각을 깼던 것 같다. 근데 그게 또 다른 함정이었다. R이란 캐릭터에 대해 단 하나의 전제는, 주인공이지만 나쁜 놈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것만 말해주고 지태 생각대로 풀어갔고, 리허설 때 풀로 모든 마스터 숏을 잡아놨는데 정말 좋았었다. 근데 그게 오히려 가뒀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묘하더라.

김봉석 | <귀신이 온다> 같은 영화가 좋았던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인물이 전면에 나와 있는 영화니까.

민병천 | 맞다. 내가 그런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림이 다가 아니다, 그림은 포기를 하더라도 인물을 잡아야 된다, 인물을 따라가야 된다. 그랬는데 결과적으론 역시 그림이 보이는구나. (웃음) 그게 내 딜레마인 거 같다.

김봉석 | 감독님 내부에 한면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님이 가진 비주얼에 대한 재능을 가져가면서 다른 면들을 확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해달라.

민병천 | 어린 사람들이라도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영화는 관객의 몫이라고 일단 생각을 하고 내 영화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사람보다 많았으면 좋겠다.인터뷰 김봉석·정리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1]

▶ 민병천-김봉석,뒤늦게 도착한 <내츄럴시티>를 말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