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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5]

나의 즐거움은 당신의 수상보다 아름답다.

<커피와 담배>

베니스 = 백은하 lucie@hani.co.kr

니코틴과 카페인에 보내는 연서짐 자무시 <커피와 담배>(Coffee & Cigarettes)

1986년 판 <만나서 이상하군요>로 시작하는 <커피와 담배>는 짧고 무의미해 보이는 커피타임을 응축된 삶 그 자체로 묘사한다.

<데드맨>(1995)의 윌리엄 브레이크(조니 뎁)에게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혹시 담배 가진 것 있소?” 하룻밤을 보낸 여인도, 생명의 은인인 인디언 ‘노바디’도, 숲속에서 만난 암살자 무리들도 어김없이 담배를 찾는다. 그리고 “모든 영혼들이 생겨나고 다시 돌아가는 세계로” 가는 긴 여행을 앞두고 윌리엄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담배를 찾았어요….” 짐 자무시에게 담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의 커피와 담배 혹은 그 사이를 떠도는 분위기와 수다에 대한 채집기 <커피와 담배>(Coffee & Cigarettes)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1986년부터 최근까지 만든 ‘커피와 담배’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들의 묶음인 <커피와 담배>는 로베르토 베니니부터 톰 웨이츠, 케이트 블란쳇까지 다양한 인종과 성별과 국적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로베르토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가 등장하는 1986년판 6분짜리 에피소드 <만나서 이상하군요>(Strange to meet you)부터 시작한다. 벌벌 떠는 손으로 커피잔을 잡는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 사이에 흐르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해낸 이 에피소드는 결국 치과를 대신 가주는, 이상하지만 만족한 만남으로 마무리짓는다. 칸영화제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1993년 12분짜리 에피소드 <캘리포니아 어딘가>(Somewhere in California)에서는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등장한다. 바에서 만난 그들은 별다른 대화도 없이, 별다른 친분도 없이 마주 앉아서 끊었다는 담배를 다시 피우는 공동범죄를 저지르고, 담배 한대를 피울 시간 동안의 어색한 분위기와 정적을 나눈 뒤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사촌>(Cousin)에 등장한 케이트 블란쳇은 호텔에서 일하는 얌전하고 교양있는 케티와 펑키한 복장에 손가락으로 커피를 젓는 게걸스럽고 우악한 사촌 셀리로 동시에 등장해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사촌?>은 의 주인공인 스티브 쿠간이 자신이 먼 사촌뻘되는 남자에게 심드렁하게 대하다가 그 남자가 스파이크 존즈와 친하게 지낸다는 말에 갑자기 자세를 고쳐잡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정신착란>(delirium)은 ‘커피에 취한’ 정도의 허허실실한 유머를 담고 있다.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흑인청년들 앞에 커피 주전자를 들고 빌 머레이가 나타난다. “당신 혹시 빌 머레이예요? ” “그래, 나 빌 머레이다.” “그런데 당신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나? 커피 나르잖아.” 그리고 빌 머레이는 그들 앞에서 벌컥벌컥 주전자째 커피를 들이켠다.

“오늘 뭐했어?, 하는 질문에 누구도 ‘어, 커피브레이크를 가졌어’라고 대답하진 않는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하지 않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시간을 담고 싶어졌다”는 짐 자무시는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사람들의 수다를 원천으로 20년간 이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이 짧고 무의미해 보이는 커피타임은 잠시 쉬어가는 순간이 아니라 사실 10분에 응축된 삶 그 자체다. 이 모든 에피소드의 공통분모는 커피와 담배 그리고 체스판 모양의 커피테이블이다. 또한 풍부한 질감의 흑백화면은 검은 커피와 흰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도구로서 가장 적절한 선택처럼 보인다. “나는 각각의 인종들 사이의 다른 점과 공통점을 찾는 것이, 그들의 대화를 담는 것이 재밌다. 그래서 계속 이 시리즈를 만들어갈 것 같다. 12년 뒤쯤 미래버전의 <커피와 담배>가 나오지 않을까?. ”이 니코틴과 카페인에 대한 낱장의 러브레터가 모두 끝나자 극장 앞은 거짓말처럼 참았던 담배를 피워대는 무리의 관객과 커피를 사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도전, 리메이크 탐험!라스폰 트리에 (The Five Obstructions)

<영화제목>

(The Five Obstructions)은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등의 라스 폰 트리에가 ‘여자 괴롭히기’를 잠시 멈추고 한 나이 많은 감독을 괴롭히는 과정을 담은 100분간의 잔인하면서 즐거운 기록이다. 덴마크 감독인 요르겐 리스에게 라스폰 트리에는 게임에 가까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1967년에 만들어진 요르겐 리스의 초기작 <완벽한 인간>(The Perfect Human)을 5번 리메이크하되 매번 새로운 장애물을 깨야 한다는 것. 완벽한 인간은 어떻게 먹는가, 눕는가, 쓰러지는가. 완벽한 인간의 눈, 귀,무릎를 보여두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완벽한 인간이 행동하고 세상과 소통하는지를 보여주는 흑백의 실험적인 작품이었던 <완벽한 인간>은 결국 자신의 손에 의해 35년 만에 창의적으로 리메이크된다.

‘각각의 숏이 12프레임을 넘지 않을 것’부터 ‘세트를 짓지 말 것’,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것’, ‘세상에서 가장 지옥 같은 곳으로 갈 것’ 등의 고약하고 짓궃은 ‘장애물’을 넘기 위해 이 초로의 감독은 쿠바에서 뭄바이로 젠트로파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정말 너무하는군, 도대체 라스는 나에게 뭘 바라는 거야?” 매번 기가 막힌 장애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마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그가 더 이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 것’이라는 지시를 받고 영화를 만들어낸 요르겐 리스는 라스 폰 트리에에게 복수에 가까운 영상편지를 보내고 게임은 그렇게 종료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축구용어인 ‘오브스트럭션’ (반칙의 방해행위)에서 나왔다. 요르겐 리스는 덴마크 축구의 상징인 미카엘 라우드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예측불가능한 동작으로 유명하고 ‘오브스트럭션’에 빠져들었던 이 천재플레이어는 에서 리스의 역할모델이 되었다.

의외로 선전한 이탈리아영화

비바! 이탈리아

올해 7월 말 베니스영화제쪽이 제60회 라인업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의 불만은 ‘이탈리아영화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항간에는 하델른이 시로부터 너무 심한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참가한 이탈리아영화의 면면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서히 누그러졌다. 비교적 초반에 상영된 에두아르두 윈스피어의 감동적인 드라마 <기적>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양민학살의 배후를 힘있는 터치로 파고든 파올로 벤베누티의 <국가기밀>은 정치적으로 양분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초반을 뜨겁게 달구었다.

(왼쪽부터) <드리머스> <좋은아침, 저녁>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제 최대의 관심은 이탈리아 에밀리아주 출신의 동년배 친구들에게 쏠려 있었다. 바로 비경쟁으로 상영된 <드리머스>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폐막일까지 가장 유력한 황금사자상 후보로 지목받았던 <좋은 아침, 저녁>의 마르코 벨로키오다. “우리는 거의 동시기에 영화를 시작했다. 아마도 내(마르코 벨로키오)가 그보다 1년 정도 먼저 시작했을까. 그뒤 나는 파졸리니의 세트를 가기 시작했고, 베루톨루치는 실험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 그렇게 한 사람은 자국에 남아, 한 사람은 세계무대로 자신만의 영토를 확고히 다져나갔고 십수년 뒤 다시 베니스에서 감격적으로 조우했다. <라 누오바>는 “이들은 현명한 미래건설을 위해, 끊어진 과거와 현재를 영화를 통해 다시 연결하려고 노력한다. 파올로 벤베누티는 포르텔라 델라 지네스트라의 양민학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1968년 파리의 5월혁명을, 그리고 마르코 벨로키오는 알도 모로 사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한다. 다른 이들이 다루기를 거부하며, 모른 척하기도 하며, 역사책 속에서 지우려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들의 관점에 맞추어 다시 쓰려고 하는 역사의 한 부분을 용기를 가지고 다루고 있다”며 세명의 강단진 이탈리아 감독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1]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2]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3]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4]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