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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4]

사막이 낳은 기괴한 에로틱 스릴러부르노 뒤몽 (29 palms)

언제 브루노 뒤몽에게 전적인 지지가 쏟아진 적이 있었던가. 99년 두 번째 작품 <휴머니티>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까지 트리플로 거머쥐었을 때도 그의 영화는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걸작”이라는 평부터 “오만한 예술영화”라는 악평까지 극적인 찬반에 시달려야 했다. 4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영화 로 가는 길 역시 안전한 고속도로로 우회하진 않았다. 남자가 여자를 잔인하게 난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엽기적인 마지막 신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오랫동안 ‘우’ 하는 야유가 터져나왔고, <데일리뉴스>의 별점은 <이메지닝 아르헨티나> 덕에 겨우 바닥을 면했다.

영어를 쓰는 한 남자와 불어를 쓰는 한 여자가 LA 29팜스의 모텔에 기거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사막 한복판의 돌 위에서, 돌 옆에서, 혹은 들판에서, 풀장에서 아무데서나, 언제든지, 미친 듯이, 사랑을 나눈다. 영화 초반에 사진헌팅차 LA로 왔다는 짧은 언급이 있지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더이상 무의미하다. 섹스하거나 밥을 먹거나 운전하는 것 외에 이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마치 다른 궤도를 그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두 사람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그간의 영화에서 모든 가능한 사회적 관계를 지우고 오로지 개인적인 관계에만 전념해왔던 이 철학박사 출신 감독의 포커스가 이동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늘 “훈련된 배우들이 싫다”고 부르짖던 브루노 뒤몽은 이번에도 <폴라X> 등에 출연했던 여배우 카이타 고루베바의 옆자리에 신인 데이비드 위삭을 용감하게 배치했다. 그리고 전작의 배우들에게 했던 똑같은 방식, 극본 없음, 설명 없음, 리허설 없음을 반복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르는 이런 제작방식은 자칫 치명적 러브스토리만 보일 수 있는 이 영화에 의외의 서스펜스와 호러의 리듬을 부여한다. 북부 프랑스에서 날아온 감독이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의 사막을 보았을 때의 “생경함과 공포”는, 로 그대로 이식되어 영화의 초반부터 공포와 비극의 정조를 띠는 것이다. 두 주인공들의 예상할 수 없는 일거수 일투족은 서스펜스로, 사막의 공기 속에 배양되어가는 강력한 폭력성은 공포로 스크린을 서서히 잠식해나간다. 이 기괴한 사막의 에로틱스릴러를 ‘걸작’으로 부를 수 없을지언정, 유려한 올해 베니스영화제 라인업에서 부족했던 흥미로운 ‘문제작’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코언 형제가 그린 너무도 평온한 로맨스조엘, 에단 코언 <참을 수 없는 사랑>(Intoreable Cruelty)

<참을 수 없는 사랑>

이보다 화려할 수 없는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라는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는 것.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코언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배경들과 잠깐의 이별을 요구한다. 밀로스 크로싱의 비정한 공기와 마피아가 득실대는 술집의 어둠, 벽지가 흘러내리는 모텔방의 습기에서 벗어나, 눈부신 베벌리힐스의 태양광 속으로 카메라를 옮긴 <참을 수 없는 사랑>은 화려한 입담의 성대결을 그린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크루볼코미디다. 그렇다면 형제는 어디에 있는가?

‘패소는 없다’고 자랑하는 적당히 타락한 이혼전문 변호사 마일즈(조지 클루니)는 부유하고 멍청한 남자들만 골라 결혼한 뒤 위자료를 챙기는 ‘꽃뱀’ 마릴린(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마릴린은 부동산업계 거물인 전남편과 이혼수속이 끝나자마자 이내 주유재벌(빌리 밥 손튼)과 재혼해버린다. 마릴린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던 마일즈는 다시 이혼 뒤 카지노에 나타난 마릴린과 재회하고 전국 변호사들이 모인 라스베이거스 대회장에서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엉뚱하고 감정적인 연설을 마친 뒤 마릴린과 눈물나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이내 주유재벌의 존재가 마일즈를 유혹하기 위한 마릴린의 쇼였음이, 짜릿했던 지난밤이 적과의 동침이었음이 밝혀진다. 이후 서로를 죽일 듯한 ‘개와 고양이의 전쟁’을 거치게 되지만, 남편을 갈아치우며 중간이름이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난 마릴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일즈는 마법 같은 사랑의 엔딩으로 점핑한다. 대중영화로서의 장점을 고루 갖춘 <참을 수 없는 사랑>에서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로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가된 코언 형제의 무게감은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변호사들의 우스꽝스러운 처세술과 베벌리힐스의 삶에 대한 블랙유머 속에서 여전히 코언 형제의 위트는 살아 숨쉬지만,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잠시 쉴 곳을 찾아온 형제의 지나치게 평온한 사랑에 대한 동화다.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1]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2]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3]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4]

▶ 제 6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