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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네 멋대로 즐기기 [5]
권은주 2003-09-26

Key Word No. 03

다 * 큐 * 멘 * 터 * 리

도처모순 생생중계(到處矛盾 生生中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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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만을, 귀에 들리는 것만을 믿고 사시는 이들은 필히 동석하시길. 이제 멀고도 가까운 진실의 문에 가닿기 위한 카메라 마라톤이 시작되기에.

프리드먼가 사람들 포착하기(월드 다큐2)

Capturing the Friedmans

와이드 앵글 | 미국 | 앤드루 자렉키 | 2003년 | 107분

10월3일 오후 2시 메가박스3관, 5일 오후 8시 부산3관

진실, 그 복잡한 덩어리의 굴곡을 더듬는 가족 시네마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 모여사는 지역사회에서도 각별히 존경받아온 컴퓨터 교사가 충격적인 혐의로 체포된다. 아동 포르노 잡지가 그의 거실에서 발견됐을 뿐 아니라 집안에서 운영하던 사설 컴퓨터 강좌에서 자신의 10대 막내아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일상적으로 어린 소년들을 성추행했다는 고발은 미국사회의 알레르기 부위를 자극한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프리드먼가의 양탄자 밑에 엎드려 있던 비밀스런 과거와 욕망, 히스테리는 도마뱀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세 아들은 생업도 내팽개치고 명예회복에 나서지만, 결과는 부엌에서 오가는 고성뿐이다. 가족과 이웃, 수사관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제출되는 증거는 마치 추리소설의 장을 넘기듯이 더러는 진실의 사슬을 잇고 더러는 앞서 수립된 명제를 기각시킨다. “세 아들과 프리드먼은 가족 중 어머니를 소외시키며 단단히 결속한 ‘갱’이었다.” “경찰의 증거와 심문은 다분히 과장됐다.” “아버지는 유아성애자인 동시에 좋은 사람이었다.” 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며 ‘포착’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매우 적절하다. 프리드만 식구들의 유난스런 기록벽이 남긴 생생한 홈비디오와 앤드루 자렉키 감독의 탐정에 가까운 취재력은 이 다큐멘터리에 희귀한 가치를 불어넣었다. 잘 만든 미스터리 한편을 본 듯한 소감은 몇 가지 회의적 상념으로 요약된다. 진실은 얼마나 상하기 쉬운 유기체인가?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순간은 도대체 있기나 한 걸까?

그들만의 영화천국(아시아 다큐9)

Trial

와이드 앵글 | 이란 | 모슬렘 만수리 | 2002년 | 44분

10월4일 오후 7시 메가박스2관, 10일 오전 11시 메가박스2관

영화가 삶이 되고, 삶이 영화가 되는 곳

특이하기로 따지자면 이런 영화현장도 없을 거다. 가정용 8mm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거나 즉석에서 일반인을 캐스팅하는 것쯤은 그냥 접어주자. 여기선 크레인 대신 사람 무등에 탄 채로 부감숏을 찍거나 달리 대신 당나귀 위에 앉아 이동숏을 찍는 게 보통이다. 편집은 백열전구 불빛 아래서 가위와 스카치 테이프로, 헬리콥터나 총소리 등의 음향효과는 모두 사람의 ‘성대모사’로 해결한다. <그들만의 영화천국>은 이란 독립영화 감독 알리 마티니의 신작 <전갈> 제작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마티니는 출판과 영화제작 등에 앞서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법을 어기고 10년간 110편의 책과 18편의 영화를 만든 인물. 책이라고 해봐야 자신이 필사한 종이를 엮어놓은 것이고 영화 또한 8mm 작품에 불과하지만, 그는 감옥살이까지 감수해야 했다. 각서까지 쓰고 출옥했음에도 그는 새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 때문인지 자신이 사는 조그만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배우, 소품, 의상, 장비 등을 조달해 영화를 만드는 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다. 연출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가는 장면도 간혹 보이지만 자유로운 창조와 표현을 위해 분투하는 마티니의 모습을 가식적이라 여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만의 영화천국>은 ‘삶으로서의 영화’를 꿈꾸는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맨발로 헤라트까지

Barefoot to Herat

무지개를 기다리며: 아프가니스탄과 영화 | 이란 | 마지드 마지디 | 2002년 | 70분

10월5일 오후 4시 메가박스2관, 9일 오후 2시 메가박스2관

극단의 시대, 굶주린 희망

<천국의 아이들>을 만들었던 마지드 마지디의 장편 다큐멘터리. 2000년 겨울,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난민캠프는 그야말로 아수라다. 인근 도시 헤라트에서 한조각 빵을 얻어오기 위해 아침 8시부터 포화를 뚫고 종일 걸어야 하고, 장막 하나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모포 한장에 몸을 묻어야 한다. 미국의 공습이 멈추지 않는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제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는 냉정하게 열기를 거둬버린 사막에 호소라도 하듯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두 맨발을 비벼댄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이면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덜 여문 몸뚱이는 돌무덤으로 향한다. 달력없는 그곳에서 어쩌면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숨이 멎어버린 시체 한구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쉼없는 아우성 속에서도 카메라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부모를 잃었지만 하늘 높이 연을 만들어 날리는 아이들의 거침없는 뜀박질에서, 몽당연필을 쥐고서 글을 배우며 사막의 밤을 밝히는 아이들의 부르튼 손에서, 주운 탄피를 불어가며 어디론가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의 때묻은 입에서, 그는 보고 듣는다. 마지막 남은 희망을.

여자화장실(아시아 다큐9)

The Ladies

와이드 앵글 | 이란 | 마흐나즈 아프잘리 | 2002년 | 55분

10월4일 오후 7시 메가박스, 10일 오전 11시 메가박스2관

금남(禁男)의 데카메론

공원의 여자화장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중엔 벽에 등을 기대고 아예 다리를 뻗은 이도 있다. 카페라도 되는 양 오가는 이들에게 수시로 인사하고 말을 거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나누는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다. 마약을 끊은 지 얼마됐다고,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매춘을 행한 적이 있다고, 이러한 금기의 대화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공감과 연민의 감정만을 좇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탈출구 없는 삶은 대화를 격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자신의 피가 솟구쳐오르는 것을 보고 싶다며 자해를 하겠다는 여인에게 또 한 여인은 가스를 틀어놓는 것이 더 간단하다고 일러준다. 남성규율사회가 빚어낸 폐해의 희생자인 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테헤란의 이 화장실은 여성들의 아지트에서 여성들을 위한 해방구의 기운을 머금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영화무지개를 기다리며

탈레반 정권 이후 첫 장편 극영화로 알려진 <오사마>(새로운 물결 부문)의 도입부는 의미심장하다. 일자리를 달라며 시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찍고 있던 서양 다큐 작가의 카메라가 거두어지면서 비로소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제 자신들의 삶을 본인들의 카메라로 증언하겠다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12편. 아프가니스탄 감독들이 만든 영화 7편,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 5편이 나란히 소개된다. 특히 <연> <카불시네마> <꽃다발> <샤브남> <희생> 등 5편의 단편영화에서 아프가니스탄영화의 미래를 예감할 수 있다. 이들 영화는 폐허와 불모의 땅에서 피어오르는 생의 미약한 기운을 채집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마주한 이란 출신 감독들의 관심도 뚜렷이 드러난다. 여성감독인 야스민 말렉 나스르의 <아프가니스탄, 잊혀진 진실>을 통해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풍속과 문화를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아프가니스탄영화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마흐말바프가의 <오후 5시>와 <광기의 즐거움>은 함께 챙겨보면 좋다. 올해 14살인 하나 마흐말바프의 <광기의 즐거움>은 언니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의 캐스팅 과정을 뒤따르면서 만든 다큐멘터리다. 국내에서 개봉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천국의 아이들>의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맨발로 헤라트까지>는 다큐멘터리는 지겹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의 개심을 도울 것이다. 이 밖에도 올해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차지한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 넬로파 파지라의 <칸다하르의 귀환>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네 멋대로 즐기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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