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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네 멋대로 즐기기 [2]
권은주 2003-09-26

사마귀

Arimpara

아시아 영화의 창 | 인도 | 무랄리 나이르 | 2003년 | 90분

10월4일 오후 8시 대영1관, 6일 오후 2시30분 메가박스9관

사마귀가 생긴 날

<사좌>(1999)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무랄리 나이르의 신작 <사마귀>는 참으로 이상한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엔 한마디로 딱 잘라 정의 내리기 힘든 기묘한 매력이 있다.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사마귀>는 벌판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빌리 와일더의 <선셋대로>(1950)를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도입부 이후, 우리는 부유한 지주로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턱에 작은 사마귀 하나가 돋아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이 사마귀는 점점 커져서 급기야 그의 얼굴만한 크기로까지 자라난다. 부르주아적 일상성에 대한 묘사로 출발한 <사마귀>는 서서히 변화하여 예측불허의 비현실적인 결말로 향하는데, 그 과정에서 단 한순간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 놀라운 작품.

야만적 침략

The Barbarian Invasions

캐나다영화 특별전 | 캐나다 | 드니 아르캉 | 2003년 | 99분

10월3일 오후 5시 대영3관, 5일 오후 8시 대영3관

죽음을 앞둔 이와 지적인 수다를

아버지 레미의 병이 위중해지자 세바스티안은 아버지의 친지들을 병원으로 불러모은다.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캐나다의 의료정책부터 포스트 9·11시대의 세계까지의 방대한 주제를 놓고 토론, 아니 수다를 시작한다. 물론 섹스에 관한 질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면 당신의 추리는 정확하다. 이 영화는 바로 아르캉의 86년작 <미제국의 몰락>의 서글픈 변주다. 섹스와 대안없는 나날들에 대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던 17년 전의 중년들은 초로의 몸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여전히 철학, 역사, 정치, 그리고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느낌은 예전 같지 않다. 올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라자

Raja

월드 시네마 | 모로코, 프랑스 | 자크 드와이옹 | 2003년 | 112분

10월3일 오전 11시 대영1관, 5일 오후 8시 부산1관, 9일 오후 8시 메가박스5관

사랑은 게임이 아닙니다

<뽀네뜨>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눈물을 퍼내게 했던 자크 드와이옹의 최신작.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는 19살 모로코 소녀 라자에게 돈은 인생의 최대 목적이다. 어느 날, 라자는 프랑스인 거부 프레데릭의 정원을 손질하는 일자리를 얻는다. 그리고 그녀와 프레데릭은 곧장 ‘사랑게임’에 빠진다. 자크 드와이옹은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되거나 <연인>이 되거나 <로리타>가 될 법한 이야기 구조를 가져왔지만, 자극적인 요소를 피해가며 밀고 당기는 감정의 줄다리기만을 고집하여 보여준다. 결국, 게임으로 시작한 라자와 프레데릭의 관계는 진짜 사랑을 위한 산고를 겪어간다.

니키와 플로

Niki and Flo

특별 상영작 | 루마니아, 프랑스 | 루시앙 핀틸리에 | 2003년 | 90분

10월3일 오후 10시 메가박스5관, 4일 오후 10시 메가박스4관

나는 루마니아다

올해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초대된 루시앙 핀틸리에는 칸영화제에 6번 초청을 받은 루마니아의 숨겨진 거장이다. 1965년 <일요일 6시>로 데뷔한 이래1992년 <떡갈나무>로 세계적인 공인을 받은 뒤, 1998년 <종착역>으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니키와 플로>는 그의 가장 최근작이다. 니키는 퇴역 군인이고, 플로는 그의 사돈이다. 아들이 죽고, 자나깨나 돈을 뜯어낼 생각만 하던 딸과 사위가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뒤 불청객 플로는 사사건건 미국을 들먹이며 니키의 세계관을 개조하려 든다. 끝없이 숨죽이다, 마침내 일어나고야 마는 충격적인 결말. <니키와 플로>는 루마니아의 현재를 걱정하는 거장의 알레고리이다.

아버지와 아들

Father and Son

월드 시네마 |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 알렉산더 소쿠로프

2003년 | 84분 | 10월3일 오전 11시 대영3관, 5일 오후 8시 대영2관, 10일 오전 11시 메가박스3관

아버지와 아들, 영혼과 육체

몽환적인 이미지와 영적인 역사관으로 세상을 그리는 영화의 화가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어머니와 아들>의 후속작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만들었다. 만약 들뢰즈가 보았더라면, 삶의 윤리와 감각의 논리에 대해 증거삼았을 첫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 대구를 이루는 마지막 장면까지 쉴새없이 영화는 지속된다. 한없이 느리고, 기울던 <어머니와 아들>과 달리 <아버지와 아들>은 스타카토의 템포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마치 형과 아우처럼, 동성의 연인처럼 유도하는 이 영화는 그의 신천지 이미지만큼이나 즐거운 미로찾기의 주제를 선사한다.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

No Rest for the Brave

월드 시네마 | 프랑스, 오스트리아 | 알랭 기로디 | 2003년 | 107분

10월8일 오후 5시 메가박스5관, 9일 오후 2시 메가박스9관

죽음, 그 행복한 비극

바질 마땡은 잠들면 죽을 것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힌다. 한편, 아마추어 탐정 쟈니 갓은 바질 마땡이 한 사건의 살인용의자라고 단정한 뒤 그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오히려 바질이 한 무리의 범죄집단에 쫓기는 쟈니를 구해주면서 그들은 동행이 된다. 알랭 기로디의 장편 데뷔작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는 ‘죽음’과 ‘영속’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한 모험극이다. 결국, 바질은 “죽음이란 무엇보다도 행복한 것”이라는 그 평온한 진리를 깨닫는다.

반복되는 나날들

The Hours of the Day

월드 시네마 | 스페인 | 하이메 로살레스 | 2003년 | 103분

10월5일 오후 7시 메가박스5관, 7일 오후 5시 메가박스5관

‘홍상수’표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이 된다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바르셀로나 변두리의 작은 도시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아벨의 삶은 평화롭다 못해 따분하다. 어머니와 여자 친구, 가게 점원과 되풀이되는 만남과 대화는 그의 삶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악하지도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는 그가 문득 택시 기사를 목졸라 죽인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곧 결혼하는 친구와 만찬을 나누고 바에서 여자를 유혹한다. 열정이 없어 보이는 그에게 오래된 여자 친구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떠나가고, 그는 또 공공장소에서 만난 타인을 살해한다. 쿠바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화를 공부한 로살레스 감독의 데뷔작.

해파리

Bright Future

아시아영화의 창 | 구로사와 기요시 | 일본 | 2003년 | 92분

10월5일 오후 4시 메가박스3관, 8일 오후 5시 부산1관

우리의 미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언제나 꿈에서 밝은 미래를 보고 있는 청년 니무라는 해파리를 키우는 공장의 동료 아리타와 가까워진다. 공장 사장은 니무라와 아리타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보너스를 주더니, 조금씩 그들에게 접근한다. 마치 젊은이들의 생활을 공유하겠다는 듯이. 그러나 사장의 행동은 니무라에게 짜증과 분노를 야기한다. 사장이 뺐다시피 빌려간 CD를 받으러 찾아간 니무라는, 사장 가족의 시체를 본다. 가까이 오는 모든 것에게 독을 내뿜는 해파리처럼, 이미 아리타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해파리’는 젊은 세대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모든 것에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언제나 돌봄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의 빛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존재. 니무라와 아리타의 아버지가 가까워지는 과정은, ‘밝은 미래’의 아주 작은 신호음처럼 미세하게 들린다.

초자연적 존재들과의 조우구로사와 기요시의 <도플갱어>, 박기형의 <아카시아>

올해 부산영화제의 앞뒤는 초자연적인 존재들로 장식된다. 개막작인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플갱어>(Doppelganger/ 일본/ 2003년/ 107분)는 자신의 분신을 만나면 죽음을 맞는다는 괴담에 기초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으로 나아간다.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감독의 하나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만드는 장르영화는 결코 장르의 자장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공 신체를 연구하는 하야사키는 어느 날 자신의 분신을 만난다. 벽에 부딪혀 있던 연구는 하야사키가 분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수월하게 풀려나간다. 하야사키의 분신은, 평소 하야사키가 두려워하던 것들을 무심하게 해치우면서 앞으로만 달려간다. 일반적으로 도플갱어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을 말하지만, <도플갱어>는 그런 일반론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일필휘지를 보는 듯한 느낌의 영화다.

폐막을 장식하는 영화는 한국 공포영화의 부흥을 이끈 박기형의 신작 <아카시아>다. 과욕 덕분에 실패한 <비밀>의 과오를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에 도달한 <아카시아>는 죽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결혼 10년째지만 아이가 없었던 미숙은 진성을 입양한다. 그러나 죽은 벌레를 가지고 놀고 뭉크풍의 그림에 집착하는 진성은 웃음과 행복 대신 불길한 어둠과 저주만을 보여준다. 아카시아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달리 단지 살아남겠다는 자신의 의지로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죽여버린다고 한다. 그런 아카시아의 이기적인 이미지를 물씬 드러내는 <아카시아>는 순간적인 충격효과보다는 불온한 캐릭터와 미묘하게 감도는 불안감으로 공포를 자아낸다. 사회적인 모순과 불안을 극단적인 죽음과 공포의 이미지로 잡아내는 한국 공포영화의 한 경향에서 탄생한, 반드시 봐야 할 영화.

▶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네 멋대로 즐기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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