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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2]
김현정 2003-09-26

<스타트랙> 어떻게 볼 것인가?

오늘날 스타트랙은 ‘인류의 꿈과 진취성을 대변하는 멋진 SF모험극’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그렇듯 순결(?)하고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스타트랙>과 그 문화적 위상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좀 상투적인 데가 있으므로(미국식 모험정신의 산물, 미래의 신화, 과학기술적 유토피아의 청사진 추구 등등), 여기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맥락들을 뒤져보기로 한다. 미국 러트거스대학의 미국학 석좌교수인 브루스 프랭클린은 베트남전 당시의 <스타트랙>을 꼼꼼히 고찰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영화나 만화의 형태로 숱하게 접할 수 있는 미국식 SF모험담들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할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의 방식들은 훨씬 더 세련되고 교묘해졌지만.

<스타트랙> 오리지널 TV시리즈의 방송기간인 1966년 9월부터 1969년 6월까지는 미국 역사상 매우 흥미로운 시기이다. 밖으로는 베트남전이 한창에다 안으로는 범죄율이 증가하는 한편 반전평화운동의 물결이 거셌고, 여성운동이 부상하는 등 전통적 가치의 붕괴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가계빚까지 늘어난 시기였다. 그러나 스타트랙의 23세기 미래세계는 사회갈등이 거의 없이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거대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와 승무원 집단은 그 자체로서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체화한 작은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베트남전 이후의 장밋빛 미래상을 <스타트랙>에서 미리 보여준 셈이다.

아무튼 당시의 <스타트랙>은 베트남전의 전황과 맞물리면서 미묘하게 비틀리는 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1967년 봄에서 1969년 1월 사이에 방송된 몇몇 에피소드들이 의미심장한데, 그 기간은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최악의 나날들을 보내던 때와 거의 일치한다.

은밀히 드러나는 베트남전에 대한 지지-<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

먼저 1967년 4월에 방송된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는 오늘날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팬들의 반응이 좋았던 에피소드이지만, 사실은 원작 극본이 심하게 훼손된 사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커크 선장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시간여행을 하여 1930년대의 뉴욕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에디스 키일러라는 천사와 같은 여성을 알게 된다. 그녀는 헌신적인 사회사업가이자 빈민들의 벗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만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개연성과 상관관계를 미리 알 수 있는 장치로 검색해본 결과, 그녀는 곧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죽지 않도록 도와줄 경우, 나중에는 커크 일행이 역사에서 사라져버리는 운명이 되고 만다. 에디스가 교통사고에서 살아나면 나중에 거대한 평화운동조직을 만들게 되는데,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초래하여 커크가 사는 23세기의 행복한 미래세계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자신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물줄기를 나쁜 쪽으로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원래 대본은 방송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 원작은 시간여행과 역사의 왜곡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멜로에 가까웠을 뿐, 에디스가 평화운동가라던가 반전운동 때문에 세상이 더 부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는 식의 설정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시청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전달되었다. 아무리 고상하고 숭고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라도 역사를 그르칠 수 있으며, 그걸 막기 위해 때로는 더럽고 내키지 않는 일도 불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베트남전에 뛰어든 미국의 입장을 은연중에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식 은유-<작은 전쟁>

그 다음에 방송된 <작은 전쟁>이라는 에피소드는 설정부터가 노골적으로 베트남전 구도를 미국식으로 해석하여 반영한 것이다.

엔터프라이즈호가 ‘뉴랄’이라는 행성을 방문한다. 예전에도 와본 적이 있었던 커크 선장의 기억으로는 비록 미개하지만 아주 평화로운 에덴동산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다시 와보니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평화가 사라진 상황이다. ‘촌사람들’로 불리는 부족들이 평화로운 ‘언덕사람들’ 부족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기는 매우 강력한 중화기로서 도저히 그들 스스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뛰어난 과학기술력의 산물이었다. 조사를 해보니 그 무기들은 어딘가에서 대량생산된 뒤 뉴랄 행성으로 밀반입된 것이었으며 그 배후는 바로 ‘클링곤’이라는 외계인들이었다.

이 설정에서 ‘촌사람들’은 북베트남, 그리고 ‘언덕사람들’은 남베트남을 의미하며 ‘클링곤’은 다름아닌 소련, 또는 중국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스타트랙>의 설정은 이들이 제국주의적 세력을 넓혀 인도차이나와 그 밖의 제3세계를 장악하려는 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식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사실은 어땠는가? 실제로 베트남을 지배했던 제국주의 세력은 바로 프랑스였고 1950년대 중반 들어서는 미국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하고 있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고 딘 디엠이 대통령이 되어 독재권력을 휘두르다가 그나마 축출된 뒤 암살까지 당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미국의 배후 사주에 의한 것이었음이 오늘날엔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뉴랄 행성의 상황에 직면한 커크 선장의 선택은, ‘언덕사람들’에게 신무기를 주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힘의 균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명분과 함께.

<스타트랙>은 그뒤의 에피소드들에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주제가 바뀌기도 했지만 그 역시 교착상태에 빠진 채 희생만 늘어가고 있던 베트남에서 이제 그만 미군을 철수시켰으면 하는 국민들의 정서가 투영된 것이었다.

오늘날은 <스타트랙>에서 수없이 구사되었던 SF적 설정들의 변주와 아류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대부분 겉으로는 시사성의 맥락이 없어 보이는 과학기술적 모험물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예외없이 정치적 함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도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따져보고 소화할 수 있는 통찰의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올해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어쩐지 <스타트랙>의 한 변주곡처럼 보이지는 않는지?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1]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2]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