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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5]

향기= 이해가 가네요. 너무 화가 났을 것 같아요. 거꾸로 그렇게 작은 것에도 감수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삶을 통합시킬 수 있는 게 콜라님의 능력이죠.

콜라= 전 여전히 아픈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려요.

향기= 전 제가 쓴 20자평을 까먹는데, 감독들은 그거 안 까먹어요. 무섭고 미안해요.

콜라= 그런 사람들 아주 밉죠. 그래서 여전히 가족이 힘드네요.

향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족 때문에 힘들어해요. 나이 50이 넘어도 얽힌 가족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봤어요.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향기= 콜라님은 일종의 우주여행을 다녀온 듯해요. 케빈 스페이시가 외계인과 지구인으로 분열된 건데,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그런 사람도 실제로 봤어요. 어떤 환자는 어린 시절을 하나도 기억 못해요. 본인은 기억력이 나쁜가보다 하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사람은 그렇게 상처에 취약해요.

콜라= 전 고등학교 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면 그 다음날 일어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나요.

사람= 희한하네, 편하겠다.

콜라= 처음에 얼마나 황당했는데요, 메멘토 같은 건데. 지금이야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향기= 편하면서 위험한 거죠.

콜라= 상처받기 싫은 거죠. 받는 게 싫으니까 주는 것도 싫어요. 너무 못되진다고 할까.

사람= 나랑 딱 반대로 변하네. 난 지금 뭐든지 퍼주고 싶은 게 극대치예요. 지금 여기서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최대한으로 돕고 싶어졌어요. 난 예전에 팬의 입장을 한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근데 지금은 달라져서 팬이라고 하면 설사 내가 상처받게 돼도 손잡고 싶고 그래요.

향기= 힘든 건데, 어떻게 그렇게 됐어요.

사람= 어떤 상처가 커서 전신마비가 온 적이 있어. 친구가 와서 주스 마실래 하는데 몸이 저리면서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저 친구가 내 몸을 좀 젖혀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언의 대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것, 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설사 내가 상처받아도 뭔가 나누고 싶어졌어요.

향기= 일종의 이타주의인데. 전신마비가 온 상황을 좀더 설명해주실래요.

사람= 딱 이런 거예요. 주위에선 그냥 지루하게 여길 만한 자세로 있는데 전 눈 하나 깜박거릴 수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거예요. 가위눌린 것과 또 다르게. 대화소리는 다 들리는데. 몇달 사이에 두번 정도 그랬어요.

향기=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는데.

바람= 아뇨,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높을 때였어요.

향기= 몸으로 스트레스의 반응이 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 글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심하게 앓았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을 앓았는데 머리 위에 이만한 큰 물집이 생겼어요. 친구가 그 물집이 터지면 너의 아픔과 고통이 다 빠져나갔을거야, 라고 위안을 주는데 도움이 됐어요. 아무것도 아닌 뻔한 영화도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래서죠.

향기= 뭔지 모르지만 사람님 안에 어떤 깊은 어려움이 느껴지고 왜 그게 몸으로 올까 하는 걸 좀더 생각해보고 다른 분들과 나누셔야 할 듯하네요.

사람= 근데 치유가 아주 잘됐어요. 주위 사람 덕분에. 오늘 만난 향기님의 눈빛도 치유가 되고. 옛날에는 이런 자리 정말 안 나왔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여기서 찌리릿찌리릿 신호가 돼서 또 만남이 지속될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향기= 제 눈빛이 사람님께 가 닿았다니 기쁘고 그건 제 마음에 돌을 던진 것이에요. 언제든 문이 열려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열고 들어오세요. 물님은 이런 자리가 힘드셨을 것 같아요.

물= 예. 이런 얘기하는 게 달갑지 않고, 얼마나 진심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저의 개인적 취향이라서.

향기= 딱딱한 외투를 입은 분들도 터지면 막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물=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못해요.

향기=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저도 물님이 그렇다는 것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말씀드리고 싶어요. 살다보면 너무 힘들어지고 많이 배운 사람말고 저 먼 어촌에 가서 꼬부랑 할머니와 이야기하다가 위안을 받을 수 있거든요.

콜라= 저는 가족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10년 이상 사귄 친구들조차도 전혀 몰랐어요. 나중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면서 편해졌어요. 그래서 뻔뻔스럽게 내 이야기 막 하고 다녔어요. 지금도 가족의 화목함이나 유대감은 없지만 최소한 그것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아, 하고 방법을 찾는 거거든요. 글도 쓰다보면 아비는 빠지고 어미는 창녀고 하는 식으로 자꾸 그려지는데, 실컷 말하면서 다 털어보자, 그랬더니 그제야 밝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향기= 매듭이 생겼을 때 그걸 푸는 건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 내담자들은 한 50번은 반복해요. 시어머니 욕 만날 때마다 하다가도 50번 정도 하다보면 결국은 근데 그 시어머니도 이제 옛날 같지 않아 하는 거예요. 콜라님도 앞으로 저 만나면 서른번쯤 더 이야기하세요. 물님 같은 경우도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있을 테죠. 다른 방법으로 어려움을 처리하는. 만약 없다면 큰일이에요. 언젠가 터져버리거든요.

바람= 저는 이런 자리인지 몰랐는데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니까 좋네요. 최근에 학교를 새로 다니면서 목표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람을 피하자 하는 거였어요. 그동안 인복이 많아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부르면 가서 쏟아내고 그랬더니 별로 가진 것도 없는 게 너무 쏟아내며 살았던 거 같아서. 그래서 입닥치고 살자 하고 학교를 간 거죠. 말도 좀 줄이고, 이제 혼자 스스로 책임지자. 사람이 약한 거 같아요.

향기= 독립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있나요.

사람= 전 기독교인인데, 시간이 되시면 언제 묵언수행해보세요. 한번 해보니까 놀라운 경험이었거든요.

나무-나와 대화하는 건가요.

사람= 어떤 방법은 없어요. 말을 안 하는 게 중요하죠.

향기= 묵언수행은 집단상담 때 가끔 하는 기법이기도 해요.

콜라= 강릉으로 훌쩍 떠나 4년 살고, 속초 가서 1년 살고 서울 온 지 1년 정도밖에 안 돼요. 그 이후 결심을 잘 안 해요. 일을 열심히 해야지 등등. 그렇게 떨어져 있으면서 많이 굶주렸어요. 일부러 내 발로 멀어져 갔더니, 말이, 사람이, 일이 그런 것 같은 게 없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실컷 떠들고 실컷 일하고 실컷 술마시고 다녀요.

향기= 지금 나무님은 떠나가야 할 시기인가봐요. 언젠가 돌아오면 세상이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그게 어떤 식이든 간에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이거 그냥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영화 보고 얘기하는 게 어때요.

바람= 자기가 얘기할 거리가 있는 영화가 있고 아닌 게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톰 에고이얀의 <패밀리 블루>를 보고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거 같아요.

향기= 만약 제가 바깥에 나가면 <케이 펙스>를 고르지는 않을 거예요. 마침 개봉영화라서 고른 거죠. 폴 슈레이더의 <어플릭션>이나 <파니 핑크>를 골랐을 거예요. 물님은 어땠어요.

물= 일단 구체적 팁이 있으니까 쉽게 얘기가 되는 듯한데요.

향기= 한 가지 주의할 건, 이게 첫 세션이라는 거예요. 첫 세션이 이 정도면 굉장히 성공한 거죠. 보통 자기 얘기 잘 안 하거든요. 이건 아주 긴 여행이에요. 나무에 물 주는 것과 비슷해요. 안 크는 것 같은데 계속 물을 주다보면 언젠가 크죠.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소설에도 나오지만 치유로 사람이 바뀌는 건 3%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 각도가 나중에는 아주 커져요. 사람이 변해요, 하고 묻는다면, 사람은 아주 조금 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변화의 지렛대는, 아주 길어지면 지구도 들 수 있거든요. 그 지렛대의 씨앗을 뿌리는 게 제 일인 거죠. 오늘 그 씨앗의 백분의 일쯤 뿌린 거 같네요.정리 이성욱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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