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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4]

콜라= 케이 펙스라는 존재가 있으면서 없는 것 같아. 케빈 스페이시도 프롯이었다가 아니기도 하고.

향기=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죠.

콜라= 각자 선택의 문제죠. 제가 보기에 케이 펙스는 그 병동이에요. 가족은 없는데 관계는 있거든요. 전 자꾸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되네요. 전 관계를 일부러 끊을 정도로 가족과 상처가 많아요. 같은 일을 하는 형제와도 관심을 끊고 지내요. 아주 가끔의 전화통화로 생사만 확인하는 정도? 가족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아주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가족이란 살과 피로 나눈 게 아니라 관계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타인에게서 그 절실함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관계라는 것만 이뤄질 수 있다면 또 다른 케이 펙스가 내 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 동감입니다. (나무를 가리키며) 우리 둘이 섹스를 했어요. 그러면 부부의 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이 되는 거죠. 혈연이 아니라 같은 것을 나누면 가족이 되는 거 아닌가요.

향기= 그 병동이 일종의 유사가족이죠. 좀더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갈까요. 여러분의 파랑새는 뭔가요.(영화에서 케빈 스페이시는 동료 환자에게 파랑새를 찾으라고 권한다. 일종의 자가치료 과정으로)

콜라= 저는 영화요. 영화를 하기 때문에 꿈꿀 수 있고 영화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향기= 외롭군요.

콜라= 많이요. 고질이에요.

향기= 전 개인적으로 영화와 아이를 병행하는 게 상당히 힘들어요. 오늘은 집에서 아이와 있으면서 글 쓰는 날인데, 이렇게 늦게 들어가면 죄책감 들어요. 저에게 파랑새가 뭐냐고 묻는다면 정말 고민될 것 같아요. 영화인지 아이인지.

물= 파랑새가 뭐냐라고 했을 때 그게 어떤 종류의 희망이냐에 따라 다들 다를 것 같아요. 저에게 영화 일은 현실이고, 파랑새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종류의 것이라면 저는 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향기= 일도 100점, 아이 일도 100점을 받을 수 있나요.

물=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렇지만 죄책감은 없어요.

향기= 그런데 저한테는 실질적으로 일이 터져요. 아이가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다거나 하는 빵구가 나는거죠.

물= 저도 그래요. 다만 집에서 생기는 문제를 다른 데서 채워서 상쇄하는 거죠.

콜라= 부족한 걸 스스로 자위하는 건 아닌가요.

물= 아이도 저도 서로 독립된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그 아이도 커서 독립해 나갈 것이고.

콜라= 가족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만 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남편이 동의해야 할 문제 아닌가요.

물= 그렇지 않은데, 저와 딸의 문제이고 나아가 내 문제죠.

향기= 아이와 엄마 사이에 자아의 경계가 없다기보다 경계를 짓고 소통하는 쪽이 좋다고도 하죠. 그렇다면 아이가 불만이 없나요. 엄마가 바쁘다는 것에.

물= 어렸을 때는 불만스럽다는 말 많이 했는데, 지금은 현실적으로 많이 깨닫고 있어요. 엄마가 버는 돈으로 필요한 걸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더군요. 11살인데.

향기= 딸에게 자신이 파랑새라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죠.

물= 네가 책 읽는 거 보는 거, 플루트 부는 걸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자주 말해요. 네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고 너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는 걸 끊임없이 말해주죠. 어떤 형이상학적 대화를 하는 건 아니고. 솔직히 고백하면 아빠보다 네가 훨씬 더 좋아, 라고 해요.

향기= 아하, 그런 비법이 있군요.

바람= 한국의 엄마들이 다 그렇지 않나.

향기= 전 아니에요. 애보다 남편이 더 좋아요. 전 제가 다른 여자들과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남편도 그걸 알고 있어서 가끔 싸워요. 우리 둘만 여행을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우리끼리 가는 게 죄책감이 든다는 거죠. 좀 바뀐 거 같죠.

사람= 그러면 파랑새가 남편이네.

향기= 그것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할게요.

바람= 지금까지 저의 파랑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 저는 영화보다 엔딩 크레딧이 더 좋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환상이랄까. 그들에 대해 더 궁금했어요. 팸플릿보면 보통 배우소개만 있는데 감독이나 스탭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렸을 때 이그제큐티브(executive) 프로듀서 같은 영어가 있으면 형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보고. 그러다가 문화학교 서울 등에 영화보러 다니는 시네필로 전이가 됐죠. 단편영화도 찍고, 씹히기도 하고. 그런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충무로라는 케이 펙스에 너무 급박하게 동참하게 된 거 같아요. 그러고나니까 혼돈이 온 것 같아요. 단편 찍고 나서부터 더 모호해졌다고 할까. 영화를 찍으면서 행복해야 하는데 더 두렵고 힘들고. 파랑새를 찾는 재조정이 필요한 듯해요. 그런데 28살이라는 나이가 다른 일을 하기에 너무 걸리지 않나요? 저는 목수도 하고 싶은데. 고등학교 때까지 디자인했는데 그것도 영화를 위한 방편이었어요. 미술도 음악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방향이 너무 하나였다는. 지금은 파랑새를 날려버리고 초록새나 빨강새를 찾아보려고 해요.

향기= 아무런 준비가 안 됐는데 케이 펙스에 갔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이렇게 각자 파랑새가 다른데, 파랑새는 날아다니기 때문에, 새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 같아요. 늘 나무에 붙어 있는 박제된 거라면 그렇게 아름다워하지 않잖아요. 사실 그 새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주관적인 거죠.

콜라= 그렇죠. 영화에서 의사한테는 그냥 파란색 새였죠.

향기= 콜라님은 이 영화를 보고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는데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요.

콜라= 영화하고 싶었으나 집에서 반대해 국문과를 다니다가 군대 제대하고 다시 영화과에 들어갔어요. 그걸 들킨 뒤에 40만원만 주면 이제부터 혼자 하겠다고 했어요. 그거 가지고 부천의 아는 형 집에 얹혀살면서 서울까지 걸어다니고 그랬어요. 25∼26살 때 왜 지나가는 개도 안 물어가는 자존심이 그렇게 셌는지. 부모가 일찍 이혼하고, 아버지는 다시 재혼해서 살면서 뿔뿔이 흩어져 살았어요. 동생도 누이도 이혼해서 혼자 살게 됐고. 제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다 아프니까.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발 닦다가 푹 쓰러져 누나 이혼한다더라, 그러면 같이 우는 게 아니라 ‘그래도 잘살 거야 누이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웃으면서 말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게 안팎으로 막 겹쳐졌을 때 이틀 동안 방문 잠그고 내내 울다가 면도칼을 팔목에 댔어요. 얼마나 아픈지 시험 삼아 손등에 대보니까 너무 아픈 거야. (웃음) 웃기게도 그 순간 이틀 동안 아파한 걸 잠시 잊은 거예요. 시나리오 쓰다보면 그 상처가 나와서 주위에서 읽고 가슴 아파했는데, 이틀 아파한 뒤부터 말랑말랑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한번은 누나네 집에 가다가 “해가 너무 맑아” 하고 꺼이꺼이 운 적이 있어요. 그런 게 사는 이유가 되는 거 같아요. 충분히 살 만한 이유가 있다, 겪는 일은 다 극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1]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2]

▶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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